사회
병원에서 죽음 앞둔 환자 수천 명의 '마지막 이야기' 들어준 한국계 목사
입력 2023-09-20 08:09  | 수정 2023-09-20 08:14
미국 플로리다 탬파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원목 준 박(41) / 사진=연합뉴스
"어린 시절 학대 상처 딛고 원목의 길"

미국의 한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며 임종을 앞둔 환자 수천 명의 이야기를 들어준 한국계 목사 준 박(Joon Park, 41)의 사연이 CNN 방송에 보도됐습니다.

CNN은 "그는 환자들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여전히 그들을 생각한다"며 박 목사가 그동안 병원에서 해온 일을 자세히 소개했습니다.

암에 걸리기 전 음악가가 되기를 꿈꾸며 길거리에서 지내던 한 청년은 임종 직전 박 목사에게 "꿈을 이루지 못해 안타깝다"며 생전 한 번도 갖지 못했던 집에 대한 노래를 마지막으로 들려줬습니다.

갓 태어난 세쌍둥이를 한꺼번에 잃은 엄마는 박 목사 앞에서 애끊는 비명을 내질렀습니다.


죽음 앞에서 겁에 질린 10대 소녀는 자신이 죽지 않게 기도해 달라고 그에게 부탁했습니다.

박 목사는 지난 8년간 플로리다주에 있는 1040병상 규모의 탬파 종합병원에서 원목을 맡아 죽어가는 이들의 곁을 지켰습니다.

그는 자신이 만난 환자들의 삶에 깊이 빠져들면서 "마치 다른 인생을 사는 것 같았다"고 지난날을 돌아봤습니다.

그가 병원에서 목사로 일하게 된 데는 어린 시절의 상처가 큰 영향을 줬습니다.

한인 이민자 2세인 그는 플로리다 라르고에서 자랐습니다.

어른의 권위를 중시하는 부모 밑에서 그는 어린 시절 언어적·신체적 학대를 당했다고 회고했습니다.

성인이 된 뒤에는 내면의 상처를 치유하고 트라우마를 극복하기 위해 애썼고, 영성에서 위안을 찾았습니다.

그는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지쳐 있었고 우울했다"며 "어떤 것에 몰입하는 능력에 영향을 주는 심각한 트라우마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상담 치료와 깊은 성찰을 통해 자신의 상처가 아름다움을 향해 나아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특히 자신이 어린 시절 갖고 싶었던 '롤모델' 역할을 누군가에게 해주고 싶다는 바람으로 목사의 길을 택했습니다.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신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나처럼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으로 병원에 발을 내디뎠습니다.

미국 플로리다 탬파 종합병원에서 일하는 원목 준 박(41) / 사진=연합뉴스

그는 자신이 삶에서 겪어온 일들을 통해 환자나 그 가족들과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됐다면서 "원목으로 일하면서 어떤 목적도 없이 오로지 완전한 연민과 이해로 상대를 보고, 듣고, 그 사람이 되는 법을 배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자신이 성직자(priest)와 치료사(therapist)의 중간 성격인 '치료 목사'(therapriest)라면서 종교적인 목적보다는 환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들을 위로하는 것이 자신의 존재 이유라고 밝혔습니다.

그는 "환자가 원한다면 종교적인 대화를 나눌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화는 정신 건강에서 슬픔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며 "우리는 신앙과 죽음 사이의 어떤 공간에 있고, 환자들이 대화를 원할 때 어떤 형태로든 그들을 위해 존재한다"고 말했습니다.

[정다진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azeen9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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