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Travel] 느릿느릿 깊은 여운...시간이 멈춘 섬, 교동
입력 2023-09-08 12:10 
일인당 경작 면적이 전국에서 가장 넓은 교동평야
시간이 멈춘 섬에 힐링 테마파크 ‘화개정원 문 열어
MZ세대 부르는 레트로풍 대룡시장
<오징어게임> 촬영지 교동초교, 바이크족 부르는 강만장 카페 인기

강화도에서 다리 하나만 건너면 닿는 국토의 최서북단 교동도. 섬이되 섬이 아닌 그곳에 새로운 랜드마크가 생겼다. 교동의 주산인 화개산 자락의 힐링 테마파크 ‘화개정원이다. 교동에 찾아온 변화가 살짝 두렵기도 하지만 아직 그곳은 정겹다. 곱기도 하고 의연하기도 한 섬, 교동도를 산책했다.
잘 정비된 도로와 섬을 잇는 연륙교 덕분에 교동은 훨씬 가까워졌다. 배를 타고 건너가던 시절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낡고 비루한 길이 고작이었던 때에 비하면 지금은 쉽고 편하게 다녀올 수 있는 곳이 됐다. 그러나 분위기는 특별하다. 과거 어느 한 순간에 멈춰버린 듯한 세계로 시간여행을 떠나온 것만 같은 느낌도 여전하다.
교동은 섬이지만, 화개산과 율두산, 수정산 등 세 개의 산이 웅장하고, 누렇게 벼가 익어가는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다. 어선이 드나드는 바다와 포구의 풍경 대신 논밭 농사가 주를 이루는 여느 농촌의 모습과 같다.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교동평야 덕분에 일인당 경작 면적이 전국에서 가장 넓은 곳이라니 농촌임이 분명이다.
교동대교
‘키 큰(僑) 오동나무(桐)란 뜻의 교동은 신라 경덕왕 때부터 이어져온 유서 깊은 이름이다. 고려시대에는 벽란도로 가는 중국의 사신들이 머물던 곳이었고, 조선 인조 때는 삼도수군통어영을 설치해 경기도와 충청도, 황해도까지 전함을 배치하는 해상의 요충지였다. 또 연산군과 광해군, 안평대군 등 수많은 이들이 유배를 갔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런 이유로 오랜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으로 편입되었고, 2023년 6월 기준 2,766명의 인구가 거주하고 있는 교동은 오랫동안 ‘시간이 멈춘 섬으로 알려져 왔지만, 지난 5월 교동의 주산인 화개산에 힐링 테마파크 ‘화개정원이 문을 열면서 다시금 세간에 회자되고 있다. 오랜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주요한 여행 콘텐츠였던 곳에 첨단의 테마파크가 조성되면서 교동의 분위기도 달라지는 듯 보인다.
화개정원
화개정원, 교동도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되다
교동 땅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반드시 민간인통제검문소를 거쳐야 한다. 그곳에서 임시출입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며, 일출 30분 전부터 일몰 30분 후까지만 통행이 가능하다. 출입신청서를 작성하는 형식이 수기 대신 QR 코드로 바뀌긴 했지만, 분단 현실의 팽팽한 긴장감은 여전하다. 보통의 사람들이 겪게 되는 교동 여행의 첫 걸음은 생경하지만 설렘이 동반된 낯섦이고, 신기한 경험이다.
웅장하면서도 우아한 자태의 교동대교를 지나 교동 땅으로 들어간다. 이번 여행의 첫 번째 행선지는 교동의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는 화개정원이다. 지난 5월 문을 연 화개정원은 개관 전부터 떠들썩한 화제를 뿌렸다. 화개정원은 대룡시장에서 걸어서 20분 정도면 갈 수 있다. 화개산 북쪽면 21만3,251㎡의 면적에 조성한 대규모 힐링 테마파크로 정상의 스카이워크 전망대까지 지그재그로 운행하는 모노레일이 있고, 다섯 개의 테마 정원을 꾸며 놓았다.
강화의 군조인 저어새를 형상화한 화개산 전망대(위), 화개산 북쪽면에 조성된 힐링 테마파크 화개정원(아래)
왕골과 꽃잔디, 섬도라지, 상사화, 사자밭약쑥 등을 식재한 정원 곳곳에는 물멍, 놀멍쉬멍, 북한멍, 논멍 등 멍 때리기 존(Zone)도 만들어 놓았다. ‘불 화(火), 덮을 개(蓋) 자를 쓰는 화개산을 상징하는 솥뚜껑 조형물을 스탬프투어길 곳곳에 만들어 놓고 이것을 인증하면 선물을 준다.
여행자들이 좋아하는 화개정원의 시그니처는 단연 모노레일. 정원 입구에서부터 화개산 정상 전망대까지, 20여 분을 오르는 모노레일은 느리게 운행한다. 그러나 급경사 구간에서는 제법 스릴도 느낄 수 있다. 강화의 상징새인 저어새를 형상화한 전망대는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교동도의 풍광이 한눈에 펼쳐진다. 날씨가 좋으면 봉재산 너머로 북녘땅 황해남도 연안군과 배천군이 손에 닿을 듯 하고 멀리 예성강까지도 보인다.
화개정원 모노레일
노란색 모노레일은 보기만 해도 앙증맞고 정겹지만 그걸 타기는 만만치 않다. 아직 개관 초기의 이름값일 수도 있지만 탑승을 위해 한두 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것이 보통이다. 시간 여유가 있다면 모노레일을 기다리는 시간에 테마 정원을 따라 천천히 걸어서 전망대까지 올라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시간이 멈춘 듯한 대룡시장
교동 여행의 즐거움은 역시 대룡시장이다. 오래 곰삭아 더욱 정겨운 풍경, 대룡시장의 진면목이다. 한국전쟁 당시, 이곳으로 피란을 내려왔다 돌아가지 못하고 정착한 황해도 연백군 주민들이 생계를 위해 삶의 터전이었던 연백장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 지금의 대룡시장이다. 시끌벅적한 시장 골목으로 들어서자 세상은 완전 딴판이다. 마치 1960~70년대에 그대로 멈춘 듯한 장면들이 눈길을 잡아 끈다. 그리 크지 않은 시장이지만 보는 것 하나하나가 신기해 걸음은 자꾸 더뎌지기만 한다.
대룡시장
영화 세트장을 닮은 대룡시장의 존재는 분단의 현실에서 비롯됐다. 전쟁 이후 교동도는 군사지역으로 묶여 오랫동안 외지인들의 출입이 통제됐고 덕분에 과거의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대룡시장이 관광지로 알려지게 된 건 지난 2014년, 교동대교가 개통된 후 <1박2일>이나 <알쓸신잡>과 같은 TV 프로그램의 촬영지로 소개되면서부터다. 여행자들의 발길이 강화를 넘어 교동으로 향하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좌로부터 시계방향)대룡시장, 황해도식 물냉면, 교동초등학교, 시장 맛집 풍경
대룡시장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 20분이면 돌아볼 수 있다. 하지만 가게 하나하나, 물건 하나하나에 시선을 빼앗기고, 그 안을 흐르는 수많은 이야기들과 사람에 빠지게 되면 한나절도 모자랄 만큼 흥미로운 곳이다. 교동 여행이 처음이라면 ‘교동제비집을 먼저 들러보는 게 좋다. 교동제비집은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교동도 관광안내소로 여행자들을 위한 관광 콘텐츠를 제공한다.
교동시장
교동제비집 옆에 있는 파머스마켓은 농기구 수리창고를 개조해 만든 지역 특산품 매장이다. 주민들이 직접 운영하는 곳으로, 기름병 밀크티로 알려진 ‘교동 밀크티를 비롯해 지역 농산물을 구입할 수 있다. 파머스마켓 옆에서는 주말마다 플리마켓도 펼쳐진다.
대룡시장 위쪽에 자리한 교동초등학교도 여행지에 반열에 올라 있다. 1913년에 첫 졸업생을 배출한 유서 깊은 학교지만 <오징어 게임>의 촬영지로 유명해졌다.
(위)<오징어게임> 촬영지 교동초등학교(좌)대풍식당 (우)교동제비집
맛집을 찾는다면 황해도식 냉면과 반반국밥으로 유명한 대풍식당을 찾아가면 되고, 힙한 트렌드를 원하면 대풍식당 바로 옆 강만장 카페가 제격이다. 마치 영화 <매드맥스>를 연상케 하는, 대룡시장의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곳은 교동을 찾는 바이크 라이더들의 성지로 음식 맛으로도 한몫하는 곳이다.
대룡시장에는 유독 어르신들의 출입이 잦은 곳이 있다. 교복을 입고 학창 시절의 추억을 소환해볼 수 있는 사진관 교통스튜디오다. 젊은 세대들에겐 한물 간 추억놀이 같지만 대룡시장을 찾는 중장년 여행자들 사이에선 한참을 기다렸다 한 컷 추억을 남기고야 마는 핫 스폿이다. 교복도 빌려주고 사진 인화까지 저렴한 가격에 해준다.
바이커들의 성지, 강만장 카페(위), 교동스튜디오(아래)
꽃의 섬 교동의 화양연화
‘고구저수지는 교동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여행 명소다. 특히 드넓게 펼쳐진 저수지 한편은 매년 여름 연꽃이 장관을 이룬다. 연꽃의 화양연화는 살짝 지났지만 연꽃이 만개한 고구저수지의 풍광은 아직 볼 만하다. 꼭 꽃이 피지 않더라도 연잎으로 뒤덮인 저수지의 풍경 또한 충분히 아름답다.
교동에는 고구저수지와 함께 ‘난정저수지도 있다. 섬이지만 간척사업으로 드넓은 평야가 생겨났고 그 때문에 농업이 발달한 교동이지만 당초 농사를 짓기엔 물이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만든 저수지가 이 두 곳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저수지들이 유명해진 건 사실상 꽃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고구저수지엔 연꽃이, 난정저수지엔 해바라기가 장관을 이룬다. 교동이 꽃의 섬으로 불리게 된 것도 매년 찾아오는 두 저수지의 멋진 풍경 때문이다.
고구저수지의 연꽃은 매년 6월경 만개해 9월초까지 피어 있고, 난정저수지의 해바라기는 9월에 절정의 시기를 맞는다. 지금은 하나의 꽃이 지고 또 다른 꽃 하나가 피어나는 시기, 머지않아 해바라기로 뒤덮인 난정저수지에서 축제가 펼쳐지게 된다. 그리고 해바라기가 지면 그 자리에 청보리를 심어 또 다시 봄에는 초록 파도로 일렁이는 청보리밭의 장관을 보게 될 것이다.
역사로 남은 교동의 흔적들
교동에서 섬의 풍광을 느껴볼 수 있는 곳이 있다. 바로 남산포와 월선포다. 남산포는 고려시대부터 중국 사신들이 왕래하던 곳으로 사신 선이 바람을 기다리는 동안 머물렀던 ‘사신관과 뱃길의 안전을 기원하던 ‘사신당이 있던 곳이다. 수군의 훈련장이 있던 곳이라 훈련장 터와 정박선을 묶어두었던 함선 계류석 하나가 아직까지 남아 있다. 사신당이 있었던 곳이기 때문일까. 야트막한 산속에서 굿을 하는 듯한 소음이 빈 포구에 떠다닌다.

월선포는 교동도의 유일한 출입구 역할을 했던 선착장이다. 교동대교가 개통되기 전까지 교동도에서 강화도를 가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배를 타야 했다. 포구에는 당시에 배를 타기 위해 선착장에 줄을 선 사람들과 강화도에서 온 배에서 내리는 사진이 걸려 있다. 썰렁한 분위기의 남산포와는 달리 여행자들의 모습도 보이고 식당과 카페도 여럿 있다.
남산포에서 화개산 쪽으로 조금만 가면 교동읍성이 있다. 조선 인조 7년(1629년)에 축조된 교동읍성은 둘레가 800m, 제법 큰 규모다. 축조 당시에는 동, 남, 북 3개의 문이 있었지만 지금은 남문만 남아 있다. 이렇게 작은 교동 땅에 과연 성이 필요했던 것일까.
고려시대 수도 개경과 지척이었던 교동은 교역과 교통의 중심이었고, 그런 이유로 왜구가 빈번히 출몰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교동은 군사 요충지가 되었다. 마침내 인조가 이곳을 삼도수군통어영으로 승격시키고 성을 쌓았다.
교동읍성에서 화개산 자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교동향교가 있다. 고려 충렬왕 12년에 문신이었던 안향이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공자의 초상화를 가지고 돌아와 이곳에 모셨다. 지금은 교육 공간이었던 명륜당을 비롯, 동재와 서재, 제사를 지내던 대성전, 동무, 서무가 남아 있다. 홍살문을 지나 향교까지 가는 길은 짙푸른 나무가 우거져 있고 그 사이로 보이는 향교의 모습이 꽤나 운치 있다.
평소에는 잠겨 있지만 문화해설사와 동반하면 들어갈 수 있다. 조상을 모시고 후학을 교육시키던 교동향교의 전통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매년 후손들에 의해 석전대제와 분양례가 행해지고, 아이들에게 서예와 예절교육 등을 시키고 있다.
교동향교 인근에 있는 화개사도 찾아볼 만하다. 고려 말 목은 이색이 14세 때인 1341년 친구 2명과 함께 바다를 건너와 수학을 했다고 전해지는 유서 깊은 곳이다. 「동국여지승람」에 목은 이색과 화개사의 인연이 기록되어 있다.
실로 오랜만에 다시 찾은 교동은 역시나 특별했다. 그곳에 머문 시간마저 여느 때와는 다르게 흐르는 듯했다. 느리면서도 잔잔하고, 수수하지만 깊은 느낌. 새로운 랜드마크가 섬을 뒤바꿔놓을 듯 소란스러웠지만 시간이 멈춘 듯한 특유의 멋과 낭만까지 흐트러뜨리진 못했다. 작지만 곱고, 당당하고 의연한 섬 교동의 매력에 푹 빠져버린 하루 여행이다.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96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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