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Travel]상상 그 이상의 논산
입력 2023-06-30 13:18 
탑정호 출렁다리
오래 곰삭은 도시의 멋과 낭만
넓은 곡창지대, 호수와 숲의 도시

‘상상이상. 기대 이상으로 볼 게 많다는 의미로 정한 논산의 관광 슬로건이다. 예부터 곡창지대와 교통의 중심지로 유명했던 논산. 과거에 누렸던 번영이 쇠락한 대신 지금은 새로운 콘텐츠들로 도시를 채워가고 있다. 세월이 흘러 빛이 바랜 풍경들은 보존과 재생의 과정을 거쳐 새 감성으로, 천혜의 자연과 어울려 수많은 여행자들을 끌어들인다. 지금 논산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이 되어 있다.
논산은 드넓은 평야가 펼쳐진 곡창지대로 더 유명했다. 거기에 금강 유역의 거점으로 물길과 철도가 발달하면서 사람과 물자가 모이고 흩어지던 교통과 교역의 중심지였다. 세월이 흘러 육군 훈련소와 딸기가 먼저 떠오르는 도시로 변모했지만, 논산은 오랜 역사와 새로운 변화의 물결을 조화롭게 이어 현재가 더욱 빛나는 도시가 되고 있다.
강경, 옛 풍경 속을 걷다
머리를 짧게 깎은 청년들과 짠한 표정으로 그들을 배웅하는 부모들의 모습이 먼저 떠오르는 논산으로 떠나며 머릿속을 하얗게 비워야겠다고 생각했다. 무려 20여 년 만에 다시 찾는 논산은 그때의 논산과는 확연히 다를 거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논산에서도 강경을 먼저 찾은 이유도 그것이었다. 강경읍으로 들어선 순간, 잠시 모든 게 멈춰선 듯한 느낌이었다. 강경은 논산의 옛 얼굴이다. 논산의 흥망성쇠가 고스란히 남은 역사의 흔적이자, 지금은 논산의 미래 가치를 높여주는 문화유산으로 기능한다. 과거에서 미래를 찾다니, 세상이 변해도 참 많이 변했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논산 7경의 하나인 옥녀봉에서 바라본 금강
먼저 옥녀봉으로 향한다. 강경을 한눈에 보려면 옥녀봉에 오르면 된다. 해발 44m. 해발이란 표현을 쓰기도 민망한 높이지만 그곳에 오르면 강경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유유히 흐르는 금강과 드넓은 평야는 눈부시게 아름답고, 교회의 첨탑이 뾰족뾰족 올라선 도심에는 시대의 흔적들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금강과 논산천이 만나는 지점과 그 뒤로 드넓은 평야는 이곳이 과거 원산항과 함께 조선의 양대 포구로 발전했던 이유를 설명해준다. 풍부한 물과 기름진 땅은 곡창지대를 형성했고, 부여와 공주로 이어지며 흐르는 금강은 곡식과 물자를 옮기는 훌륭한 뱃길이 되었을 터다. 옥녀봉 아래 강경포구가 거대한 시장이 된 것도 당연했다.
1900년대 초부터 일본인들이 들어오면서 상업이 발달했고 한때 인구가 3만 명에 이를 정도로 번성했다. 충청남도에서 전기가 가장 먼저 들어온 곳도 강경이었고, 1910년에는 한일은행이 강경읍내에 문을 열었다. 경찰서와 법원 같은 기관들이 현재까지도 논산 시내가 아닌 강경읍에 있는 것도 당시 강경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준다. 사람과 물자가 드나드는 곳으로 기독교와 천주교 등 일찍이 종교 문화가 꽃을 피웠다. 강경에 유독 십자가가 많이 보이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위로부터)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강경역사관으로 쓰이는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뒤에 재조성된 강경구락부
강경에는 한국 기독교와 천주교의 시작을 함께 한 성전도 많다. 옥녀봉 기슭에는 한국침례회 최초의 예배당이자 한국침례회가 태동된 지병석 집사의 초가집이 있고, 읍내에는 금강 연안에 기독교를 전파했던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이 있다. 한옥 목조양식으로 지어진 교회로 국가등록문화재이다. 강경성당은 천주교 대표 건축물이다. 건축에 조예가 깊었던 보드뱅 신부가 설계한 뾰족한 아치형 얼개(짜임새)가 독특해 건축애호가들의 주목을 받는 건물이다. 또 읍내에는 김대건 신부의 첫 사목지도 조성되어 있다.
옥녀봉에서 금강을 내려다보면 강가에 두 척의 고깃배가 놓여 있어 아마도 그곳이 과거 고깃배가 드나들던 강경포구가 아니었을까 짐작케 한다. 강경포는 한때 100여 척의 배가 드나들었을 만큼 번성했다. 눈부셨던 과거의 영화는 이제 추억으로 남았지만 포구는 젓갈이라는 강경의 특산물을 후대에게 선물로 남겼다. 강경 읍내에는 많은 젓갈 집들이 있다. 한결같이 100년, 200년 전통을 자랑할 정도로 강경 젓갈의 품질과 명성 또한 뛰어나다. 우리나라 젓갈 유통의 70%를 차지하며, 양질의 발효젓갈로 소비자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위로부터)금강과 만나는 논산천, 강경의 새로운 포토존이 되고 있는 미내다리, 강경포구, 강경 젓갈거리
옥녀봉 아래에는 근대역사문화거리가 있다. 한국전쟁 때 대부분의 건물이 무너졌지만 당시의 건축양식 그대로 다시 세운 건물들이 남아 있고 지금도 ‘논산 근대역사문화촌 사업을 통해 근대 거리를 조성하고 있다. 강경근대역사문화거리는 반경 1km 안에 시대와 종교, 삶을 아우르는 다양한 문화재가 밀집돼 있어 산책하듯 거리를 걷는 것만으로도 시간여행을 누릴 수 있다.
1911년 만들어져 지금은 강경역사관으로 쓰이는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뒤편. 이곳에 조성된 강경구락부로 들어가면 개화기 시대로 들어간 듯한 기분에 빠지게 된다. 커피숍과 호텔, 식당 등이 당시의 그 모습대로 영업 중이다. 100년 전의 바로 그 호텔에서 잠을 자고, 당시 신메뉴 돈까스를 맛보고, 커피 하우스에서 우아하게 커피 한 잔 한다면 모두가 모던보이, 모던걸이 될 수 있다.”
(좌)강경구락부 (우)강경구락부 내 커피하우스
논산의 오래된 미래, 연산
지금도 여전히 기차가 정차하는 연산역은 논산의 오랜 역사를 몸소 증명하고 있다. 반면 인근의 연산문화창고는 곡물창고가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 미래의 가치를 이야기한다. 연산역은 논산역과 대전역 사이에 있는 역으로 과거 대전을 오가는 사람들로 붐비던 곳이다. 지금도 무궁화호가 서긴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대신 ‘철도문화체험이란 이름으로 여행자들을 불러들인다. 선로전환기체험, 수신호체험 등과 기차를 활용한 다양한 시설들과 포토존 등 놀거리가 많다.
역사 출입문으로 다가서면 우측으로 원통 모양의 급수탑이 보인다. 1911년에 설치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급수탑이다.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한 시설로, 디젤기관차가 등장하기 전인 1970년대까지 60여 년간 사용되었다. 높이 16.2m의 급수탑에는 약 30톤의 물을 채울 수 있는데, 충남지역에는 서대전역과 강경역 등 3곳에 급수탑이 있었지만 지금은 연산역에만 남아 있다. 연산역의 급수탑은 보존 상태가 좋고 화강석으로 쌓아 올린 몸체의 예술적 가치도 높다. 연산역이 철도문화체험역으로 선정된 데도 이 급수탑의 역할이 컸다.
(좌로부터)급수탑, 연산역, 연산문화창고
연산역은 기차를 타고 내리는 승객보다, 철도문화를 체험하려는 여행자들이 오간다. 2007년부터 운영한 철도 체험 프로그램이 입소문이 나면서 논산여행의 빼놓을 수 없는 코스가 됐다. 특히 기차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즐겁다. 몇 량의 기차를 길게 연결해 휴게실과 놀이터, 체험시설을 만들어놨고 포토존과 토끼농장도 즐거움을 준다.
연산문화창고는 논산여행의 핫 플레이스로 용도 폐기된 곡물창고 다섯 동을 감성 넘치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곳이다. 1970년대를 전후해 지은 네 동의 창고와 2003년에 건축한 한 동에, 역사 문화적 가치와 현대적 기능을 녹여 리모델링한 주인공은 도시 재생의 모범으로 꼽히는 인천아트플랫폼을 창조한 황순우 건축가. 논산시와 황순우 기획자의 주도로 연산문화창고는 곡식 대신 문화와 예술로 창고를 채우고, 특별한 이야기들로 사람들과 소통하고 있다.
연산문화창고
1동 담쟁이예술학교에서는 다양한 문화 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2동은 공유주방인 연산부엌과 술 공방, 3동은 카페를 배치했다. 4동은 전시와 공연, 문화 이벤트가 펼쳐지는 다목적홀로 꾸몄고, 5동은 자연과 예술이 결합된 ‘기찻길 옆 예술놀이터로 조성했다.
연산문화창고는 연산의 쇠락한 과거를 문화의 힘으로 재건해낸 로컬리즘의 성공 사례로 보인다. 100여 가구가 사는 호젓한 마을에 하나둘 도시 여행자들이 드나들면서 연산만의 특별한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딱히 무엇을 목적하지 않아도, 그저 커피 한 잔에 소박한 전시회 정도여도 연산에서의 시간은 평화롭고 행복하게 흐른다.”
(위)연산역 기차문화 체험관 (아래)연산문화창고
그림 같은 풍경, 탑정호와 온빛자연휴양림
논산의 랜드마크는 누가 뭐래도 탑정호다. 탑정호는 충남에서 두 번째로 넓은 호수. 부적면과 가야곡면 등 4개의 면과 접해 있을 만큼 넓고 다채로운 풍경을 만들어낸다. 따라서 출렁다리나 수변생태공원을 찾아갈 경우와 음악분수, 일몰의 경관을 감상할 경우에 따라 찾아가는 길을 달리하는 게 좋다. 물론 거대한 호수 둘레를 천천히 걷고 싶을 경우 어느 지점에서든 수변 데크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된다. 대둔산의 맑은 물줄기를 담아내기 때문에 낚시뿐만 아니라 윈드서핑, 수상스키 등 수상 레포츠를 즐기기에도 제격이다.
600m 길이의 탑정호 출렁다리
탑정호에는 지난 2020년 말에 600m 길이의, 동양에서 가장 긴 출렁다리가 생겨났다. ‘내륙의 바다로 불리는 광활한 호수 위를 걷는 느낌은 짜릿하고 황홀하다. 붉게 물들어가는 석양의 아름다움을 호수 위에서 감상하는 기분은 몇 마디 말로 형언할 수 없을 정도다. 출렁다리에서 보는 낮의 호수는 고요하고, 밤의 호수는 눈부시다.
부적면 신풍리 제1주차장 가까이에 수변생태공원이 있다. 호수의 한 쪽을 생태공원으로 조성한 이곳은 데크길을 따라 걷기 좋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수변 데크길을 따라 북문까지 걸어가 출렁다리까지 즐기고 오면 탑정호의 아름다운 풍광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다.
탑정호 수변생태공원
사람들을 논산으로 불러 들이는 기막히게 아름다운 풍경 하면 이곳을 빼놓을 수 없다. 바로 넷플릭스 드라마의 촬영지로, 또 발 빠른 인증샷 고수들의 수고로 ‘SNS 풍경맛집에 등극한 논산 최고의 자연 경관 온빛자연휴양림이다. 메타세쿼이아 숲길과 그림 같은 호수 위의 집이 어우러진 이국적 풍경으로 유명해진 이곳은 휴양림이란 이름을 달고 있지만 입장료도 숙박 시설도 없는 그냥 개인 소유의 숲이다.
그런 곳이 졸지에 사람들이 줄줄이 찾아오는 여행 명소가 되었으니 귀찮고 부담스러울 만도 한데 고맙게도 주인은 몇 가지 당부의 안내문만을 적어놓은 채 모습을 드러내지도, 이렇다 할 참견도 하지도 않는다. 여행자로선 그저 고마울 수밖에 없는 곳이다.
휴양림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다. 그림 같은 숲속의 호수와 별장 같은 집 그리고 하늘을 찌를 듯 높게 솟은 메타세쿼이아 숲길이 볼거리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다. 거기에 과연 주인이 직접 조성해 놓았는지 모를 모녀상 조각과 공룡 모형 정도가 사람의 손길이 닿은 듯하다. 나머지는 그냥 손때 묻지 않은 나무와 숲이고, 그래서 더 자연스럽고 정감이 간다. 호수 위에 지은 집은 드라마 촬영을 위해 지은 가건물로 오는 9월 중 철거한다는 얘기도 있다.
논산의 역사에 눈을 맞추다
논산에 와서 돈암서원을 빠뜨린다면 그건 ‘배반이다. 아무리 고전적 여행지에 식상해 있더라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을 보고 가지 않을 순 없다. 돈암서원은 이후 송시열과 송준길 등 뛰어난 학자들을 배출하면서 기호학파를 대표하는 서원이 됐다. 돈암서원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건 한국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이자, 성리학 개념이 한국의 여건에 맞게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돈암서원 경내에는 보물 제1569호인 응도당과 기숙사 격인 거경재와 정의재, 내삼문, 사당인 숭례사 등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응도당은 김장생이 『가례집람』에서 고증한 중국 고대의 예법에 따라 지었다고 알려진다. 일반적인 서원의 강당과 달리 좌우 처마에 덧지붕을 달고 동서에 작은 방을 배치한 것도 그런 까닭이다. 숭례사의 꽃담도 다른 서원에선 찾아보기 어려운, 놓쳐선 안 될 볼거리다.
‘논산11경 가운데 제1경은 관촉사 은진미륵이다. 아주 오래 전, 보통 수학여행지로 처음 만나게 된 사찰로는 불국사나 현충사 정도였고, 사찰에 있는 불상 가운데 제일 유명했던 게 ‘은진미륵이었다. 자연스럽게 은진미륵이 있던 관촉사도 유명 사찰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논산도 관촉사도 또 은진미륵도 젊은 세대들의 관심에선 자연스럽게 잊힌 존재가 되었다.
반야산 기슭에 자리한 관촉사는 고려 광종 19년(968)에 승려 혜명이 지었다. 이곳에 모셔진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다소 기이한 비율의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자비로운 미륵불의 표정이 압권이다. 과거 논산이 지금처럼 발전하지 않았던 시절에 비해 반야산 일대가 건양대학교 캠퍼스로 개발돼 관촉사는 마치 도심 속 사찰과 같은 모양새다.
그래도 국보인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비로운 여행길이 되겠거니 했는데, 아뿔사! 지금 관촉사는 공사가 한창이다. 특히 ‘보존 처리를 이유로 석조미륵보살입상을 대형 가림막으로 막아놓아 실물을 볼 수 없었다. 할 수 없이 가림막에 사진으로 새겨진 미륵불에 합장을 하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인연이란 게 그런 것일까. 순리와 인연을 중히 여기는 불가의 가르침을 되새기며 관촉사 일주문을 나서며 논산 여행을 마무리해본다.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6호 기사입니다]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