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 가능성 높이려면?…'디아스포라'에 몰린 상 [김기자의 문화이야기]
입력 2023-06-19 11:53  | 수정 2023-06-21 12:53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 '미래의 실험실'에서 소개된 아프리카 소재 건축물 중 하나 [사진=MBN]
브라질관의 '지구',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의 '의도'와 명확히 부합
한국관 '2086: 우리는 어떻게?'…기발했지만 낮았던 '수상 가능성'
여러 국가관이 주목한 단골 주제는 '기후 위기'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건축전이 개막한 지 오늘(19일)로써 한 달째가 됩니다. 베니스 비엔날레의 최고 영예인 황금사자상은 지난달 20일 비식민지화와 탈탄소를 주제로 자국 이미지를 지구로 표현한 브라질관의 작품 '지구(Terra)'가 받았는데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와 함께 베니스 비엔날레 현지를 취재한 기자단의 일원으로서 올해 수상 결과를 보면 어떤 시사점을 얻을 수 있는지, 올해 여러 국가관들의 전시는 어떤 것들로 준비되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돌아보고자 합니다.

본전시 의도 명확히 파악해야…'디아스포라'가 핵심

올해 총감독 레슬리 로코가 미리 드러낸 주제 의식은 명확했습니다. 그녀가 제시한 올해 본전시의 주제는 '미래의 실험실'. 얼핏 단어만 보면 모호해 보일 수 있지만, 명백한 사전 설명이 있었습니다. 로코는 "'미래의 실험실'에 89명의 참가자가 포함되어 있으며, 그중 절반 이상이 아프리카 또는 아프리카 디아스포라 출신"이라며 "'미래의 실험실'은 두 가지 주제인 탈식민화와 탈탄소화와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고 말했습니다.

즉, 로코가 제시한 주제 속에 함의된 것은 '디아스포라의 미래'라고 봐야 마땅합니다. 디아스포라는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로 흩어진 유대인을 지칭하죠. 여기에서는 보다 넓게 본토를 떠나 타지에서 자신들의 규범과 관습을 유지한 채 살아가는 여러 민족 집단들과 그 거주지를 가리켰다고 봐야 하겠죠. 로코는 그동안의 건축은 주류의 목소리만 들었기 때문에 틀렸다기보다는 불완전하다고도 주장했습니다.

로코는 심지어 "전시장에는 젊은 아프리카와 디아스포라의 실무자들, 우리의 미래의 손님들이 있다, 우리는 참가자들을 건축가나 도시계획 전문가가 아닌 '실천가'로 프레임화하기로 선택했다"고까지 말하며 예술감독으로서의 의도를 명확히 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재단의 로베르토 시쿠토 회장은 "소외된 인류의 일부분에 주의를 기울이고, 다양한 목소리에 열리는 시작점이 되길 기대한다"고 화답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브라질관의 '지구(Terra)'의 수상 소식은 납득 가능합니다. 다수의 수상 이력이 있는 국가관이 아니기 때문에 수상을 점치는 분위기는 커녕 둘러보는 관람객도 많지 않았지만, 로코가 언급한 두 가지의 주제 의식은 그대로 담아낸 브라질관이었습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브라질관의 전시 '지구(Terra)' [사진=베니스비엔날레2023]

브라질관의 전시는 브라질의 수도인 브라질리아의 땅은 사실 브라질의 토착민과 퀼롬볼라족(quilombola)이 살던 곳이며, 퀼롬볼라족은 플랜테이션(단일 작물을 재배하는 거대 농업 체제로, '흑인 노예'를 식민 지배에 이용)을 피해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흑인 노예들의 후예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관람객들이 전통 의식인 칸돔볼레(Candomblé)를 체험할 수 있게끔 했는데요. 무엇보다 인상 깊은 것은 토지 문제를 언급한 만큼 전시장의 전체 면적을 흙으로 채워넣으면서, 브라질 자체가 지구로 형상화 되게끔 했다는 점입니다.

한국관 '2086: 우리는 어떻게?'…기발하지만 수상 가능성은 낮아

황금사자상이 아닌 다른 상들도 올해는 '디아스포라'와 연관 있는 참가자들이 모두 거머쥐게 되었습니다. 평생공로상을 받은 디마사(Demas Nwoko)가 시상식에서 "운명과 같이 여겨진다"며 "1961년 프랑스에서 저는 극장 디자인을 공부했고, 저의 고국인 나이지리아에 가서 선구자가 되어서 제가 본 걸 짓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감사함을 전했고요.

특별 언급된 국가관인 영국관의 한 예술가 역시 영국관 '달 앞에서 춤추기(dancing before the moon)' 전시와 관련해 시상식에서 "우리는 달을 식민지화하려 하지만, 식민지화와 춤은 반대"라며 "우리는 춤을 추며 자유로워지고, 지구의 공기 속에서 함께 공명하고 싶었다"며 '탈식민지화' 메시지를 역시 명확히 했습니다.

반면, 한국관의 '2086: 우리는 어떻게?'는 참신하지만, 레슬리 로코의 본전시 주제와는 동떨어진 전시였습니다. 한국관은 전 세계 인구가 정점을 맞이할 2086년의 미래 모습을 예측하기 위해 직접 게임에 참여하도록 하는 참여형(interactive) 전시를 꾸렸는데요.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 국가관을 찾은 관람객의 모습 [사진=MBN]

관람객은 노랑색, 초록색, 파랑색 부저 중에 하나를 선택하며 난도 높은 14개의 질문에 대답해야 합니다. 그중에 하나는 이와 같습니다.

"어떤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노랑> 대재앙 앞에 국가는 무의미하다. 국경을 없애고 다 같이 생존한다. <초록> 모든 난민은 어디에서든 거주할 권리가 있다. <파랑> 국경을 강화하여 기후 난민으로부터 우리를 지켜야 한다."

이같은 질문을 던져 관람객들의 누적된 선택에 따라 2086년의 GDP, 지니계수 및 기후 변화 전망치를 전시 기획자들은 전망해 봅니다. 전시 기간 3일의 누적 값을 1년으로 계산해, 전시가 끝나는 11월 26일이면 2086년의 값을 예측하기로 한 겁니다.

이뿐 아니라, 군산, 동인천, 경기도의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를 통해 제각기 기후 위기와 함께 인구가 감소하는 한국의 상황을 보여주고, 이러한 때 재개발은 필요할 것인지, 경기 침체가 계속되면 이주민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받아들일지 의문을 던지는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장소 특정적 프로젝트가 군산, 인천, 경기도로 한정된 이유는 올해 한국관의 전시가 첫 공동 예술감독 체제로 꾸려졌기 때문입니다. 박경 공동감독과 정소익 공공감독의 인연이 시작된 안양예술공공프로젝트의 사전 리서치 경험을 그대로 살리려다보니 의미 있지만 다소 산발적인 주제의 전시가 이뤄지게 된 것입니다.


여러 중대한 질문을 던지는 한국관의 전시를 본 방문객들은 호평을 남겼습니다. 다만, 국가관의 주제를 자율적으로 정한다지만, 그 해의 전체 주제에 맞는 전시를 구성하는 것이 수상에는 직‧간접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전시 구성에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한 예로, 만일 이주민 문제를 다룬 경기도 프로젝트는 본전시와 연관이 있으니 유지하더라도, 그외 프로젝트 및 전시는 과감하게 빼고 한국에 사는 아프리카인들과 그들의 2세의 삶에 주목하는 최원준 등 여타 작가와 협업했더라면 수상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역대 수상작도 '본전시와의 연계'가 중요

그렇다면 베니스 비엔날레 역대 수상작은 어땠을까요? 최근 2개년도를 분석해 보아도 역시 '본전시' 주제와의 연계가 중요했습니다.

베니스 비엔날레 전시는 크게 본전시(국제전)와 국가관 전시, 별관 전시(Venice Pavilion), 병행전시 (Collateral Events) 및 기타 전시로 이뤄집니다. 이중 그해의 총감독이 크게 관여하고 주제도 정하는 것이 바로 이 '본전시'인데요. 국가관 전시 주제는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다지만, 그 주제가 총감독이 주목한 주제와 다르다면 수상 가능성이 낮아지는 것은 당연한 이치일 것입니다.
2022년 황금사자상 수상작 영국관 '그녀의 방식대로 느끼기(Feeling Her Way)' [사진=2022 영국 국가관]

지난해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을 살펴볼까요. 본전시 주제는 '꿈의 우유(the Milk of Dreams)'로, 당시 '꿈의 우유'로 주제를 정한 총감독 세실리아 알레마니는 "이 직책을 맡은 최초의 이탈리아 여성으로서 나에게 주어진 책임과 기회를 이해하며, 이를 통해 예술가들의 비전과 우리 사회를 반영하는 특별한 전시를 만들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남성이라고 배제하진 않겠지만, 여성 아티스트의 눈부신 약진을 주목하겠다는 비전을 확실히 선언한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 최고의 영광을 얻게 된 수상작은 영국관의 '그녀의 방식대로 느끼기(Feeling Her Way)'이었습니다. 영국의 음악사에 대한 5명의 흑인 여성 뮤지션의 영향을 매핑했고, 그 목소리를 전시장에서 직접 들려주며 침묵되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식을 택한 전시가 황금사자상을 탄 것입니다.

재작년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전 본전시 주제는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HOW WILL WE LIVE TOGETHER?)'였으며, 당시 하심 사르키스 감독은 정치가 못 푸는 문제를 건축가들이 푸는 공간을 만들어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수상작은 아랍에미리트관의 '습지(Wetland)'로 결정되었습니다. 아랍에미리트관은 탄소배출원인 건축 재료 시멘트의 대안으로, 아랍에미리트의 소금지대 사브카스(Sabkhas)의 생태계를 제시했습니다. 특유의 결정화 작용을 발견하고, 재생 가능한 건축 재료를 직접 제시한 아이디어가 심사위원단의 눈길을 사로잡은 겁니다.

북유럽관도 '토착민'에 주목…캐나다관 "집은 판매용이 아니다"

올해 수상을 하지 못했지만, 본전시와 다소 맞닿은 전시를 한 국가관으로는 북유럽관과 캐나다관 이 있습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북유럽관 전시장의 모습 [사진=MBN]

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의 공동 국가관인 북유럽관은 지금은 북유럽에 10만 명가량 남아있는 토착민의 삶을 되돌아보는 전시를 기획했습니다. 북유럽관의 큐레이터는 MBN에 "토착민인 서밋족(Sámi)은 4000년 동안 지속가능하게 살았다"고 강조했습니다. 토착민은 사슴의 개체수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7년 이상 산 사슴 고기만 먹었고, 나이 든 서밋족은 지금도 해당 모피만을 입고 지내는데, 자연에 해로울 것이 없도록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들이 산 북유럽 곳곳의 거주지인 서밋(Sápmi) 지역을 연결해보는 이벤트를 진행했습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북유럽관 전시장의 모습 [사진=MBN]

캐나다관은 집은 거주의 공간이지, 사고 팔기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고 강조하는 전시를 열었습니다. 전시 '판매용 아님(Not for Sale!)'에서 캐나다관의 작가들은 주거지의 금융화는 지양하며, 현재 캐나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합리적인 가격에 거주할 만한 집을 찾을 수 없는 '거주 위기'가 발생한 근본 원인에는 자본가들의 강탈, 그리고 '식민지화 세력'의 강탈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캐나다관 전시장의 모습 [사진=MBN]

이어 캐나다관은 토착민들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를 부르고 관람객들과 함께 춤을 추는 이벤트를 보여줬습니다. 토착민들의 땅이 도용당해 집이 상품이 되었고, 깊은 문화적 유대관계를 갖는 커뮤니티 대신 부동산 전망만이 남게 됐다고 비판하며, 대안을 고민하는 전시를 기획한 겁니다. 전시 큐레이터는 '주거소외문제에반대하는건축가(Architects Against Housing Alienation (AAHA))' 소속이었습니다.

덴마크 '인어의 슬픔' 언급…지난해 전시 '재활용'한 독일

그외 다수의 국가관들은 기후 위기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는 데 집중했습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덴마크관 전시장의 모습 [사진=MBN]

덴마크관은 3D 극장을 만들어 기후 위기로 변해갈 덴마크 해안가의 모습을 표현했습니다. 덴마크가 동화 속 '인어의 나라'로 유명한 만큼 인어의 시선에서 준비했다고 설명한 큐레이터는 해일과 홍수 등을 연기로 표현한 몰입형 전시관으로 안내해줬습니다. 과학적인 리서치를 기반으로 코펜하겐에서 습지로 변할 지역을 분홍색으로 표시한 지도가 전시됐으며. 상황별로 어떤 때는 후퇴하고, 어떤 때는 물 위에 집을 지은 베니스와 같은 주거지를 지어 살거나, 토지를 더 쌓아 섬을 만들어야 할지 등 구체적인 시나리오도 제시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독일관 전시장의 모습 [사진=MBN]

독일은 아예 지난해의 전시품을 그대로 가져왔습니다. 지난해에 전시한 목록들이 어느 곳에 보관되었다가 다시 비엔날레의 전시장으로 오게 되었는지 품목별로 일일이 인덱스를 달았습니다. 전시물로 사용된 가죽을 활용해 자신의 가방을 직접 제작해 가져갈 수 있도록 하는 자리도 마련해 두어, 여성 관람객 일부가 둘러 앉아 끈과 망치 등을 이용해 DIY(do it yourself) 제작을 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습니다.

스페인은 '음식 탈출(Food Scapes)' 전시를 열었습니다. 가축을 기르거나, 와인을 만들고, 해산물과 농산물을 만드는 데 얼마나 환경이 오염되는지 방대한 양의 리서치를 한 자료를 내보이는 전시를 기획한 것인데요. 스페인관 큐레이터인 에두아르도 까스띠요는 MBN에 "스페인은 세계 음식의 엔진"이라며 "그만큼 기후 위기에도 노출돼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일본은 '향' 전시…러시아관은 '폐쇄'

한편, 일본관은 본전시나 기후 위기와 모두 연관 없는 독특한 전시를 마련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일본관은 "건축도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보여질 때 사랑받는 곳이 될 수 있다"며 낙옆을 따와 즉석에서 증류해, 관람객에게 향을 선사하는 전시를 준비했습니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러시아관 모습 [사진=MBN]

러시아관은 올해도 폐쇄돼 있었습니다. 앞서 지난해 러시아관의 큐레이터와 예술가들이 자국의 우크라이나 침략을 반대한다며 "민간인이 미사일의 포화 속에 죽어가는데 예술이 설 자리는 없다"는 목소리를 내고, 사임과 불참의 뜻을 베니스 비엔날레 측에 전했죠. 당시 비엔날레 측은 "숭고한 용기이며 그러한 결정을 지지한다"며 홈페이지를 통해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 김문영 기자 kim.moonyoung@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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