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기대에 부응 못한다며 고립 자처하는 한국 청년 늘어"...BBC 본 한국의 그림자
입력 2023-05-28 10:53  | 수정 2023-05-28 11:10
은둔형 외톨이들에게 도움을… / 사진=유승규씨가 운영하는 '안 무서운 회사' 홈페이지 사진 갈무리
한국의 은둔형 외톨이 조명한 BBC…"심각한 문제"
"공부 강요하는 획일적인 사회…청년에게 좋아하고 잘하는 것 찾을 자유 줘야"


5년간의 은둔 생활을 마치고 지난 2019년 처음으로 집 밖을 나선 30대 유 모 씨.

비영리 단체를 통해 만난 다른 '은둔형 외톨이'들과 바다낚시를 떠난 유 씨는 "바다에 가니 기분이 묘했지만, 동시에 은둔 생활을 끝냈다는 게 매우 상쾌했다."고 말했습니다.

세상에 다시 나온 유 씨는 이제 자신과 같은 은둔형 외톨이를 돕는 회사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영국 BBC는 지난 26일 한 방송에서 사회의 높은 기대치에 압박받아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길을 택하는 유 씨와 같은 젊은이들이 늘어나고 있다며 한국에서 은둔형 외톨이가 많아지는 현상에 대해 분석했습니다. 그러면서 세계 최저 출생률과 생산성 저하 문제를 가진 한국에서 은둔형 외톨이 증가라는 심각한 문제가 동시에 떠오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만 19∼39세 인구의 3% 정도를 차지하는 약 34만 명이 외로움을 느끼거나 고립돼 있으며, 1인 가구 비율도 점점 증가해 지난해에는 전체 가구의 약 3분의 1을 차지했습니다.

이에 정부는 일정 소득 기준을 넘는 청소년 은둔형 외톨이에게 최대 65만 원의 생활비와 치료비, 학업 비용 등을 달마다 지원하면서 이들이 사회에 다시 진입할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기존에는 청소년복지 지원법에 따라 만 9세 이상 24세 이하 위기 청소년에게 경제적 지원을 해왔는데, 지난달 시행령을 일부 개정하면서 은둔형 청소년들도 '위기 청소년' 범주에 포함돼 지원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은둔형 외톨이들은 돈 때문에 고립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며, 정부가 돈을 들인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합니다.

은둔형 외톨이 / 사진=연합뉴스


유 씨처럼 은둔형 생활을 해왔던 34세 A씨는 BBC에 "그들은 다양한 경제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며 "정부가 왜 은둔 생활을 재정 상태와 연결 짓는지 궁금하다. 모든 은둔형 외톨이가 경제적 어려움을 겪지는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유 씨와 A씨 모두 은둔 생활을 할 때 부모의 재정적 지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BBC는 대체로 은둔형 외톨이들은 사회나 가족의 성공 기준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고 전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진로를 따라가지 않아 사회 부적응자 취급을 받거나 학업 성적이 좋지 않아 비난받기도 한다고 BBC는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아버지가 원해서 진학한 대학을 한 달 만에 그만둔 유 씨는 "학교에 다니면서 부끄러웠다. 왜 내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는 건가. 정말 비참했다"며 부모에게 이런 이야기를 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어느 순간 자기 삶이 잘못됐다는 결론을 내린 유 씨는 그 뒤로 고립 생활에 들어갔다며 "한때는 가족을 만나기 싫어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고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A씨는 가족과의 관계가 소원해지면서 사회적으로 더 큰 압박을 받게 된 경우였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이 자주 싸웠고 학교생활에도 영향을 줬다"며 "너무 힘들어 저 자신을 돌볼 수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28세가 되던 지난 2018년부터 치료를 시작한 그는 이제는 사회생활을 조금씩 시작하고 있습니다.

은둔형 외톨이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인 한 비영리 사단법인의 김수진 선임 매니저는 "한국 젊은이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나는 실패했다', '나는 너무 늦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그들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고 그들을 사회와 단절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은둔형 외톨이들은 '나도 이 정도는 할 수 있구나, 그렇게 어렵지 않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직장을 원한다"며 더 다양한 직업과 교육 기회를 찾을 수 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A씨는 "지금 사회는 아이들에게 공부만 강요하는 너무 획일적인 사회"라며 "젊은이들이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것을 찾을 수 있도록 자유를 줘야 한다"고 덧붙였습니다.

[주나연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juliet31225@gmail.com]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