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단독] "승진 날 전화 받으면 의심 사잖아"…청탁 의심 피하려던 '해경왕'
입력 2023-05-22 16:38  | 수정 2023-05-22 16:52
13일 오전 청주시 청주지방검찰청 중회의실에서 이영림 차장검사가 소방청 인사 및 비리와 관련해 브리핑하고 있다. / 출처=연합뉴스
공소장 단독 입수…인사 청탁 정황 담겨
"전화 일부러 안 받아…받으면 의심사잖아"
법조계 관계자 "지난 정권 청와대 인사검증 난맥상 드러내"

최병일 전 소방청 차장의 인사 청탁에 대한 대가로 뇌물을 받은 전 청와대 행정관 A 씨가 의심을 피하기 위해 최 전 차장의 승진 날 전화를 일부러 안 받고 다음날 전화를 피한 상황을 설명한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지난 달 13일 청주지검은 신열우 전 소방청장이 최 전 차장의 인사 청탁을 받아 당시 소방 인사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A 씨에게 최 전 차장을 소개하고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부정청탁및금품등수수의금지에관한법률위반 등) A 씨와 함께 기소했습니다.

MBN이 조수진 국민의힘 의원실로부터 입수한 공소장 내용에 따르면 최 전 차장은 지난 2021년 2월 19일, 종로구의 한 식당에서 A 씨를 만나 직전 소방정감 승진 인사에서, ‘박사 학위 취득에 필요한 대학원 수업 출석 일수를 채우지 못한 것이 청와대 인사 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되어 탈락했다. 이를 해결해 소방정감으로 승진할 수 있게 해 달라”고 청탁했습니다.

A 씨는 최 전 차장(당시 중앙119구조본부장)에게 본부장님 고생한 것 잘 알고 있다. 청와대 인사검증 문제를 풀어주겠다”라며 청탁을 받아들인 뒤 현금 300만 원을 건네받았습니다.


이후 A 씨는 신 전 청장과 최 전 차장에게 청와대 인사 검증 진행 상황을 알려줬고 신 전 차장은 그해 6월 24일 인사검증을 통과해 소방정감으로 승진했습니다.

이날 신 전 차장은 A 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A 씨는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다음날 A 씨는 신 전 차장과의 통화에서 어제 같은 날 내가 전화 일부러 안 받았어요. 받으면 의심사잖아. 하여튼 나는 내가 할 거 다 했습니다”라며 전화를 피한 정황을 설명하며 인사 검증을 무마시킨 자신의 역할을 강조했습니다.

A 씨의 영향력을 확인한 신 전 차장은 두 달 뒤인 8월 17일 저녁, 종로구의 한 중식당에서 A 씨와 만나 소방청장 승진을 위한 청탁과 함께 현금 200만 원을 추가로 건네 총 500만 원의 현금을 건네줬습니다.

A 씨는 문재인 정부 청와대 민정비서관실에서 인사검증 업무를 담당했는데 해경과 소방 인사에 큰 영향력을 행사해 당시 ‘해경왕으로 불렸습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A 전 행정관의 사례가 지난 정권 청와대 인사검증 시스템의 난맥상을 상징적으로 드러난 것 아니겠냐"고 비판했습니다.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고(故) 이대준씨의 형 이래진씨와 법률대리인 김기윤 변호사가 2022년 6월 28일 오전 서초구 서울중앙지검 앞에서 해경왕 A 씨 등 4명을 공무집행 방해와 직권남용, 허위공문서작성 등의 혐의로 고발했다. / 출처=연합뉴스

또한 A 씨는 지난 2020년 9월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진 씨가 서해에서 북한군의 총격으로 사망했을 당시 해경에게 '월북에 방점을 두고 수사하라'는 청와대 지침을 전달해 미리 수사 결론을 정해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현재 A 씨는 더불어민주당 재선 의원의 보좌관으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이상협 기자 lee.sanghyub@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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