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비밀누설' vs '공익제보'…김태우 당선무효에 적용된 '법의 잣대' [법원 앞 카페]
입력 2023-05-20 09:00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 (사진=연합뉴스)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익신고자를 처벌하는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지난 18일 대법원 선고로 구청장직을 잃은 김태우 전 서울 강서구청장의 항변입니다.

이날 대법원 1부(주심 박정화 대법관)은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로 기소된 김 전 구청장에게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습니다.

김 전 구청장은 재판 내내 줄곧 '정당한 공익제보'였다고 주장한 반면 법원은 '불법 비밀누설'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김 전 구청장은 "김명수 대법원장의 어용법원이 검찰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했다"며 원색적인 어조로 반발하긴 했지만, 1·2·3심 세 번의 재판 동안 법원이 모두 같은 결론을 낸 데에는 나름의 법리가 있었을 겁니다.


'비밀누설'과 '공익제보'의 경계를 가른 법리가 무엇이었는지 한 번 따져보겠습니다.

지켜야할 비밀이었나?

우리 형법에 공무상 비밀누설죄는 이렇게 적혀있습니다.

형법 127조 공무상 비밀의 누설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한 때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김 전 구청장이 비밀을 누설했다며 범죄가 인정 된건 총 4건입니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원 시절 수집해 보고한 건들인데 특감반을 나온 뒤 모두 언론사에 제보한 점을 검찰은 공무상 비밀누설로 보고 기소했습니다.

▶ 우윤근 주러시아 대사 내정자 금품수수 관련 동향 보고서
▶ 김상균 한국도시철도공단 이사장 후보자 금품수수 관련 보고서
▶ 기타 첩보보고서 107건 목록이 찍힌 사진
▶ 주식회사 공항철도 비리 관련 문건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가운데) (사진=연합뉴스)

법원이 '공무상 비밀누설'로 인정할지 판단한 기준은 3가지입니다. ▶ 공무상 비밀에 해당되느냐 ▶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것이냐(비공지성) ▶ 보호할 가치가 있는 비밀이냐 입니다.

일단 법원은 첫번째 '공무상 비밀에 해당되느냐'의 기준으로 '보고 절차'와 같은 특감반의 업무 방식 자체가 비밀에 해당된다고 봤습니다.

특별감찰반이 수집하거나 사실관계를 확인한 고위공직자 등의 비리에 대한 첩보는 ‘첩보내용 그 자체, 당해 고위공직자 등의 비리첩보가 특감반에 의해 수집되거나 확인되고 있다는 사실, 나아가 당해 특별감찰관이 비리 첩보를 수집하고 사실 확인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와 같이 수집된 첩보가 보고라인을 따라 임명권자에게 보고된다는 사실 등도 모두 직무상 비밀에 포함된다고 봄이 타당하다.

- 2심 법원

김 전 구청장은 자신이 만든 첩보보고서가 당시 이인걸 특감반장 → 박형철 반부패비서관 → 조국 민정수석 → 임종석 비서실장 순으로 보고됐다는 절차와 같은 부분도 공개했는데 이런 내부적인 절차는 국가의 기능을 보호하기 위한 비밀에 해당한다는 겁니다.

또 법원은 우 내정자 관련 첩보 등이 과거에 언론 보도로 나온 적은 있어도 익명이었기 때문에 알려지지 않았던 만큼 '비공지성'이 인정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마지막으로 '비밀로서의 가치가 있는가' 이 부분에 대해 1·2심 법원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김 전 구청장의 첩보보고 내용이 수사 등을 통해 사실로 확인되지 않았을 뿐더러 이런 확인되지 않은 내용이 알려지면서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비롯한 국가기능을 위협하는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비위사실이 실제로 인정되는지는 수사절차나 징계절차 등을 거치기 전에는 확인되기 어려운 것임에도 그와 같은 첩보보고가 있었음이 공개됨으로써 대상자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이 공정하고 적정하게 행사되었는지 및 대상자의 직무수행이 적절한지에 대한 일반의 의심을 야기하게 되고, 이러한 의심은 대통령의 국정수행 및 대상자의 공무수행에 의한 국가의 기능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 1심 법원

우윤근·김상균의 비위 여부는 객관적으로 확인되었다고 할 수 없다. 피고인의 첩보방식은 정보수집 상대방 등의 주장을 기재하고 그가 제출하는 증거를 첨부하는 방식으로 수집되고 또한 임의적 방식으로 수집되어 정보의 진위 여부를 확정하는데 제한적이다. 나아가 원심의 판단에서 보듯이 대통령 비서실에서 우윤근·김상균에 대한 인사검증을 의도적으로 소홀히 했다고 볼만한 자료도 없다.

- 2심 법원

이런 판단은 대법원까지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결국 김 전 구청장의 폭로 내용은 ▶ 보고 라인 같은 내부 절차를 공개했으니 비밀에 속하고 ▶ 기존에 알려지지 않은 내용이었으며 ▶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공개해 국가기능을 위협했으므로 '공무상 비밀누설'이 맞다고 판단한 겁니다.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사진=연합뉴스)

김 전 구청장과 비교되는 사례로는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이 있습니다. 김 전 구청장의 폭로와 같은해인 지난 2018년 '청와대가 KT&G 인사에 개입했다', '청와대가 정무적인 이유로 기재부에 국채발행을 강요했다'고 주장하며 관련 문건들을 공개했었죠.

이에 기재부는 신 전 사무관을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 등으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신 전 사무관을 불기소했습니다. "기재부 문건 및 정책결정 과정 공개로 인해 기재부의 담배사업 관리, 국채 발행 등 국가기능에 대한 위협이 발생했다고 보기 어렵다"라는 이유였는데 즉 김 전 구청장과 달리 신 전 사무관의 폭로내용은 국가기능에 위협을 발생시킬 만한 '비밀로서의 가치'가 없는 만큼 공무상 비밀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였습니다.

정당한 공익 제보는 아닌가?

김 전 구청장은 1심 재판 당시 자신의 행위가 공무상 비밀누설에 맞다고 하더라도 국민권익위원회에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았고, 또 청와대의 위법·부정행위를 고발·공개했으니 이는 공직자의 공익신고 의무와 공무원의 범죄 고말의무를 행한 것으로 위법성을 무너뜨리는(조각) 정당행위라고 주장했습니다. 최고기관인 청와대를 상대로 내부고발을 하는데 어찌 수사기관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언론 제보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거죠.
청와대 특별감찰반의 민간인 사찰 의혹을 제기한 김태우 당시 수사관이 지난 2019년 1월 21일 오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식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법원의 판단은 어땠을까요? 일단 절차적으로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른 행위가 인정되려면 '공익침해행위'를 신고해야 인정되지만 김 전 구청장이 고발하고자 한 청와대의 직권남용 또는 직무유기의 범죄사실은 '형법'의 적용대상이고 '형법'은 '공익침해행위 대상 법률'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김 전 구청장의 행위는 공익신고자 보호법상 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김 전 구청장이 '부패방지권익위법에 따른 신고를 한 것'이라고 주장한 것에 대해서도 "권익위 신고보다 언론 제보가 한 달 빨랐기 때문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는 절차적인 부분이고 가장 중요한 부분, '언론 제보로 공익 목적의 고발을 했다면 공무상 비밀누설의 위법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부분에 대한 판단은 어땠을까요?

법원은 정당한 행위를 인정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 대법원 판례를 거론했습니다.

어떤 행위가 사회상규에 위배되지 않는 행위로서 정당행위로 인정되기 위하여는 행위의 동기나 목적의 정당성,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보호법익과 침해법익과의 법익균형성, 긴급성, 그 행위 이외의 다른 수단이나 방법이 없다는 보충성의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

- 2004. 3. 26. 대법원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김 전 구청장의 행위가 정당성을 얻으려면 폭로의 ▶동기 ▶목적 ▶수단 ▶법적 이익의 균형 ▶긴급성 ▶대안이 없다는 점 등 '모든 조건'을 다 갖춰야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기준으로 볼 때 법원은 김 전 구청장의 동기와 목적의 순수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공익 목적의 폭로를 한 게 아니라 자신에 대한 감찰이 진행되자 이에 맞서는 차원으로 폭로를 했다는 겁니다

피고인이 1년 4개월 동안 특감반 활동을 할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를 제기하지 않고 있다가 피고인에 대한 감찰절차가 진행되자 각종 폭로를 시작한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폭로의 동기나 목적에 관한 피고인의 주장에 대하여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고….

-1심 법원

또, 언론 폭로 외에 합법적인 대안이 있었다는 점을 거론했고,

피고인으로서는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하고 수사기관에 고발함으로써 피고인 주장에 대한 객관적인 검증을 거쳐 피고인이 주장하는 청와대의 잘못을 시정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음에도 이러한 신고와 고발에 앞서 언론에 먼저 제보한 점….

-1심 법원

폭로의 방법과 긴급성도 모두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더구나 피고인은 감찰대상자의 실명과 첩보보고서의 내용을 그대로 공개하였을 뿐만 아니라 거기에 피고인의 추측과 과장을 더하여 그 전체가 마치 객관적인 사실인 듯이 제보함으로써 논란을 증폭시킨 점 등에 비추어 보면, 피고인이 취한 수단이나 방법이 상당하지도 않고 긴급성과 보충성도 인정되지 않는다.

-1심 법원

김 전 구청장은 1심 판결에 대해 앞서 언급한 '공무상 비밀누설' 여부에 대해서만 항소했기 때문에 '공익제보의 정당성'은 더이상 다투지 않고, 1심 판단이 그대로 인정됐습니다.

"너무 가혹한 잣대"

김 전 구청장의 폭로는 ▶ 내부 보고 절차까지 누설했고 ▶ 확인되지 않은 사실을 공개해 국가기능을 위협했으므로 '공무상 비밀누설이 맞다', 반면 폭로 동기와 목적, 수단 등이 정당하지 않으므로 '공익 제보는 아니다' 라는게 법원의 최종 판단입니다.

현행법을 법리에 맞게 해석해 적용한 것이니 법원의 판단을 마냥 '정치판결'로 몰아가는 건 불합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김 전 구청장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을 겁니다. 김 전 구청장의 폭로가 준 영향도 분명히 있기 때문입니다.

일례로 김 전 구청장의 폭로에서 시작된 '문재인 정부 환경부 블랙리스트'는 법원에서 실체가 인정됐고 그 결과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과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이 유죄가 확정됐습니다. 비슷한 사례로 산업통상자원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서도 블랙리스트 의혹이 불거져 현재 재판이 진행되고 있죠.

또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으로 유재수 전 부산시 경제부시장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1심에서 유죄가 인정됐고,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도 재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자녀 입시비리와 감찰 무마 혐의로 기소된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지난 2월 3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에서 징역 2년을 선고받은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유죄를 이끌어낸 공익적 영향을 고려한다면 김 전 구청장에게 적용된 '정당한 공익제보의 잣대'가 너무 엄격하다는 지적도 나올 수 있습니다.

송주용 변호사는 지난해 서강대학교 법학연구소에 기고한 '공무상비밀누설죄에서 누설행위의 의미'에서 "위법성 조각사유 인정이 실무상 거의 인정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공무상비밀누설죄의 구성요건해당성을 인정하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해석일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공무상 비밀누설의 예외를 인정하는 정당한 공익제보를 인정하는 요건이 너무 엄격해 사실상 인정되는 경우가 거의 없는 만큼 이를 바꿀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송 변호사는 "정당한 언론 제보 행위를 공무상 비밀누설로 인정하게 되면 사회적 해악을 드러내는 내부고발행위에 상당한 제약을 가져올 수 있다""위법성을 조각시킬 게 아니라 정당한 내부고발행위라는 점이 입증됐다면 누설 자체가 아니라고 보는 해석이 필요하다"고도 밝혔습니다.

김 전 구청장의 폭로 행위를 판단할 때 1) 공무상 비밀누설 판단을 먼저하고 2) 언론 제보가 예외적인 정당한 행위인지 판단하는 순서가 아니라 먼저 1) 정당한 내부고발인지를 먼저 판단 한뒤 2) 정당한 내부고발이 맞다면 공무상 비밀누설이 아니라고 인정하는 식의 법률 해석이 필요하다는 지적입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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