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박기자 어디가] 당신, 정원에 삽니까?
입력 2023-05-19 20:04  | 수정 2023-05-30 11:08
하늘에서 본 순천만국제정원 개울길광장의 모습(항공사진 트래블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를 가다
개장 40일 만에 관람객 300만 돌파
박람회 주제 ‘정원에 삽니다
도심까지 넓혀 확장...정원 도시를 꿈꾸는 순천
정원에서 자는 가든스테이 ‘쉴랑게 인기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가 오는 10월31일까지 7개월간의 대장정을 시작한 40일째인 지난 10일 박람회장을 찾은 국내외 관람객은 300만명을 넘어섰다. 이는 조직위원회가 설정한 목표 관람객 800만명의 37.5%에 해당하는 수치로, 이런 속도라면 목표치 돌파는 시간문제라는 것이 조직위 측의 판단이다. 압도적인 국가정원의 면모도 놀라웠지만 누구보다 ‘정원에 진심인 순천 시민들의 열정은 조그마한 마을 밭뙈기 한쪽에서도 느껴졌다.
지금 이곳에 공원을 만들지 않는다면, 100년 후에는 이 정도 넓이의 정신병원이 필요할 것이다. 공공정원은 도시에 사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젊은이와 노인, 포악한 사람과 고결한 사람 모두에게 건강한 휴식을 줄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다.”-프레드릭 로 옴스테드(센트럴파크 조경 설계자)
어리석은 사람은 서두르고, 영리한 사람은 기다리지만, 현명한 사람은 정원에 간다.”–타고르(시인)
순한 순천에서 마주한 봄꽃의 향연
정원박람회 개막을 앞두고 있었던 지난 봄, 순천을 찾았다. 순천으로 가는 기차가 구례구역을 지나자, 섬진강변 벚꽃이 한눈에 들어온다. 마치 순천만의 알록달록한 정원으로 가는 길목에 놓인 순백의 정거장 같은 벚꽃을 보자 사람들의 표정도 순해진다. ‘벌교는 주먹, 여수는 돈 자랑, 순천은 인물 자랑 하지 마라는 말이 있습니다. 순천은 인물만큼 아름답고 순한 꽃들이 많지요.” 문화해설사는 순응할 ‘순(順) 하늘 ‘천(天) 자를 쓰는 순천이 이름만큼 ‘순한 도시라고 말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곳곳의 전경. 가운데 사진은 욕실과 화장실을 갖춘 ‘가든스테이 쉴랑게.
그 순한 기운만큼 부드러운 곡선으로 바다를 조붓하게 안고 있는 순천만은 세계 5대 습지 중 하나로 손꼽힌다. 그 습지를 지켜온 ‘대한민국 제1호 국가정원(민간정원이나 생활정원 등과 다르게, 국가가 조성·운영하는 정원을 말한다(수목원정원법))인 순천만국가정원은 이제 도심 깊이 ‘정원의 개념을 넓힌 ‘정원 치유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는 한번에 다 돌아다니기 힘들 정도로 규모가 크다.
이번 박람회는 2013년 순천시가 국내에 최초로 국제정원박람회를 선보인 이후, 10년 만에 두 번째로 개최하는 AIPH(국제원예생산자협회) 공인 박람회로, 코로나19 팬데믹 이후로는 최장 기간 행사다. 간담회에서 노관규 순천 시장은 정원은 그 시대 과학기술과 문화예술의 총체”라며 정원박람회를 통해 미래도시의 새로운 이정표를 보여줄 것”이라고 밝혔다.
키즈가든과 노을정원
순천은 이제 벽, 옥상, 베란다, 사무실 한편, 심지어 집과 집 사이 한 뼘 공간에도 정원이 있는 ‘정원 도시를 꿈꾸고 있다. 박람회 주제를 ‘정원에 삽니다로 잡은 이유다. 독일의 젖줄 라인강이 흐르는 독일 만하임시에서는 150년 전통의 독일연방정원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세계3대 꽃축제 중 하나인 이 축제가 녹지공간을 도심 속으로 자연스럽게 확장한 것처럼 순천 역시 정원의 개념을 도심 깊이까지 넓혔다.
조식도 제공하는 숙박형 체험 ‘가든스테이 쉴랑게
10년 전엔 순천만습지 보존을 위한 에코벨트(35만 평(약 157㎡ 규모))를 만드는 것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국가정원과 습지권역, 도심권역과 경관정원까지 따지면 전체 규모만 165만 평(약 5454㎡)에 달한다. 맨발 걷기로 면역력을 높이는 *어싱(earthing)길을 도심과 정원 8개소에 12㎞로 조성했으며, 정원에서 1박을 할 수 있는 가든스테이 ‘쉴랑게도 신설했다. 새벽을 여는 맨발 걷기와 명상 요가로 아침을 시작, 낮에는 가드닝을 배우거나 나만의 정원을 만들어 보고, 저녁에는 가든 콘서트와 가든 시네마를 즐기며 숲 스테이가 가능한 곳이다.
잔디 위를 맨발로 걷는 어싱길. 국가정원에는 ‘잔디에 들어가지 마시오 팻말을 볼 수가 없다.
*어싱(earthing): 맨발 걷기로 지구와 우리 몸을 연결해 지구의 치유 에너지를 받아들여 면역력을 향상시키는 자연 치유법이다. 순천만국가정원 곳곳이 잔디나 고운 마사토 등의 길을 걷는 ‘어싱길로 조성돼 있다.

세계적인 생태수도를 향한 순천의 큰 그림
순천만국가정원에는 그 흔한 풀밭에 들어가지 마시오와 같은 팻말을 발견할 수가 없다. 해설사는 일부러 팻말을 만들지 않고, 잔디 위에서 바로 앉아서 쉴 수 있도록 시설물을 많이 없앴다”고 말했다. 그는 (해설을 위한)오디오 리시버를 빼고 개울물 소리를 들어보라”고 말했다. 졸졸졸, 도심 한복판에선 잘 들어볼 수 없는 개울물 소리를 들으니 절로 발을 담그고 싶어진다.
프랑스 정원 이미지와 스페인정원의 모습
투명 돔 형태의 국가정원식물원과 연결된 나선형 건물의 시크릿가든, 4계절 잔디가 뒤덮여 있어 맨발로 걷기 좋은 ‘어싱길을 따라가다 보면 튀르키예, 멕시코 등 12개국의 세계 정원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나라별 정원을 둘러보면 마이크로 세계여행을 즐기는 느낌이다.
네덜란드 정원 항공 사진(트래블팀)
서양인들이 한국 조경을 바라본 첫인상은 도시 경관과 그 주변을 둘러싼 야산들 사이에서 느껴지는 강렬한 대비다.”(찰스 젱스) 21세기 최고의 포스트모더니즘 건축 이론가이자 지형 디자이너, 조경가인 찰스 젱스가 11년 전인 2012년 3월, 순천시에서 열린 ‘정원박람회와 지역사회의 미래 국제심포지엄에서 던진 화두다. 삼고초려로 그를 부른 순천시를 향해 박람회를 위한 일회용이 아닌 영구적으로 보전되고 유지되는 정원”이라는 조건을 내세웠다.
찰스 젱스가 만든 호수정원(항공사진 순천시 제공)
그는 순천 시가지를 가로지르는 동천을 파란색 나무 데크로 형상화하고 도심 한복판에 자리한 봉화산을 순천의 상징으로 삼았다. 5개의 언덕은 순천을 둘러싼 산을, 데크길 끝부분의 빨간색 라인은 정원박람회장이자, 에코벨트를 뜻한다. 순천만을 지키기 위해 정원박람회장 아래로 더 이상 도시가 팽창하지 말라는 조경가의 뜻이다.
호수정원의 파란색 데크는 동천, 중심 봉화산은 순천을 상징한다. 맨 하단 사진은 전 세계 어린이들의 꿈을 타일에 적어놓은 강익중 작가의 ‘꿈의 다리.
아이들의 소원을 적어 둔 ‘꿈의 다리 를 건너자, 도로를 잔디밭으로 바꾼 그린아일랜드와 ‘물 위의 정원이 나타난다. 물 위 지속 가능한 생태정원과 메타정원, 치유정원, 지속 가능한 정원, 공동체 정원 등 5개 정원이 원형 브릿지로 연결된 ‘물 위의 정원에서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전 세계 196개국 국민들이 한 명씩 앉을 수 있는 긴 벤치를 나선형 구조로 엮어 올린 ‘Bench for 196 people이 바로 그것. 국가와 종교, 피부색, 신념에 관계없이 세계가 자연의 일부로 공존한다는 의미가 담겼다.
매주 주말 저녁 오천그린광장에서는 YB밴드 콘서트, 펭수 팬미팅, 트롯한마당, 강변가요제 등이 관객을 찾아간다. 요가·명상·태교 등의 웰니스 체험 콘텐츠와 이색 페스타(반려견, 치맥, 호러 등)도 열린다. 펫팸족이라면 국가정원 서문 입구의 ‘반려견 놀이터를 들르자. 전문가가 최대 세 시간까지 돌봄 서비스(반려동물 등록, 예방접종 완료, 1일 전까지 예약한 경우)를 제공한다.
박람회장에는 인파를 분산시키기 위해 입장객 수를 자동으로 체크할 수 있는 스마트 피플카운팅 시스템과 안전 드론 등을 도입했다. 폐막 후 박람회장을 비롯한 각종 시설들을 완벽하게 시민의 공간으로 돌려줄 예정이다.
10년 만의 정원 박람회, 달라진 10가지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 Big change 10
마을 전체가 개방정원…저전마을 이야기
‘집에 방치된 나뭇가지 있으면 수거합니다. 통장한테 알려주세요. 정원을 품은 비타민 저전골 드림 저전마을 전봇대에 붙은 종이 알림판이다. 종이를 만드는 닥종이(저(楮))가 많아 ‘저전(楮田)골로 불리는 저전마을에는 시민1호 기억정원, 닥나무정원, 마실길정원, 성당개방정원, 텃밭정원, 장독대마당정원, 골목안 모퉁이정원 등 모든 장소에 ‘정원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누구나 벽을 허물어 나무를 보이게 하고, 마당에 조약돌을 놓아 꽃밭을 만들고, 돌담의 빈틈엔 꽃을 심었다. 여행객들은 주민 도슨트와 정원을 산책하고 꽃차를 마시며 공예품을 만든 뒤, 한옥이나 정원 스테이 혹은 북스테이를 이용할 수 있다.

저전골 순천남초등학교 운동장 생태놀이터에는 ‘순천만을 형상화한 언덕이 미끄럼틀을 받치고 있다. 저전성당 앞 타일 사이에는 꽃 화분이 놓여 있으며, 숲먹거리 정원에는 인근 유치원생들이 고사리손으로 심은 상추가 고개를 내민다. 5년간 197억 원을 투자해 지난해 12월 준공한 후 마을 주민과 일반 관광객에게 개방된 순천시 저전동. 주민 협동으로 이뤄지는 저전골 마을관리 사회적협동조합은 도시재생 뉴딜사업으로 만들어진 비타민센터, 마을호텔, 청년임대주택, 저전마실터, 공유 정원을 관리하고, 발생한 수익을 마을 발전에 재투자한다.
정원이라고 해서 국가정원처럼 대규모 정원만 생각하는 이들에게, 순천시의 저전마을은 또 다른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빈집을 활용해 만든 마을호텔(3개소)과 셰어하우스(4개소), 거점 부근의 유휴지로 만든 테마포켓정원(5개소). 20년간 신도시 및 택지개발에 따른 인구 유출로 침체됐던 마을은 도시 재생으로 공간 혁신을 이뤄냈다.
주민 교육공간인 비타민 센터에서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고, 2022년 빈집활용 아이디어 공모전(활용사례형)에서 우수상을 받는 등 타 지자체의 지속적인 관심도 받고 있다. 국가가 관리하는 자연유산이든, 창문 밖에 올려둔 작은 화분이든, 누구나 자신만의 한 뼘짜리 나만의 미니정원을 만들 수 있는 순천. 그리고 남녀노소 정원사가 될 수 있는 이곳에선 ‘정원에 삽니까?라는 물음에 ‘정원에 삽니다는 대답을 자신 있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박찬은 기자(park.chaneun@mk.co.kr) 사진 박찬은, 순천시청, 트래블팀 일러스트 다랑어스토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0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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