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웰 다잉(Well-Dying)에 대하여…인간은 존엄하게 스스로 죽을 권리가 있는가?
입력 2023-05-19 16:16 
사진 픽사베이
인간이 죽는 것에는 그동안 자연사와 병사 혹은 사고사만 있었다. 수명대로 살다 죽거나, 불치의 병이나 불의의 사고로 죽는 경우 말이다. 하지만 현재 이 죽음의 종류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바로 ‘존엄사와 ‘안락사이다.
#지난 4월14일, 네덜란드 보건부는 안락사 적용대상을 현재의 12살 이상에서부터, 한 살에서 12살 미만 어린이에게도 허용하기로 했다. 물론 불치병을 앓는 아동의 경우다. 네덜란드는 이미 2002년 적극적 안락사를 세계 최초로 법적 허용한 국가이다. 연내 시행될 이 규정은 고통이 극심하고, 회복 가능성이 없으며 치료를 해도 완화 효과가 미미한 아동이 그 대상이다. 그동안에는 원칙적으로 당사자의 동의가 필요한 안락사에서 아동은 자기표현 능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제외됐었다. 이에 의료계는 ‘불치병이 있어도 12세 미만이라는 이유로 고통을 감수해야 하는 아동들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며 연령 제한 해제를 요구해왔다. 이번 네덜란드의 안락사 연령 제한이 해제되면 네덜란드는 벨기에에 이어 두 번째로 전 연령에서 안락사를 허용한 국가가 된다. 벨기에는 이미 2014년에 안락사 연령 제한을 해제했다.
이제는 ‘웰 다잉Well-Dying이 더 중요하다
꽤 오래 전 일이다. 필자의 큰아버지 이야기다. 큰아버지는 사회적으로 성공한 분이셨다. 돈도 명예도 있었고 자식들도 명석해 사회에서도 잘 자리 잡았다. 평소 심장과 고혈압에 문제가 있던 큰아버지는 은퇴 후에도 항상 몸 관리에 철저했다. 그러던 어느 일요일, 온 가족이 모여 식사를 하고 손주들의 재롱까지 보고 잠자리에 드신 큰아버지는 밤 사이에 편하게 돌아가셨다. 연세가 78세였다. 전화를 받고, 잠시 고개를 떨구신 아버지는 곧 이렇게 말씀하셨다. 평소 오래 안 아프고, 자식들한테도 폐 안 끼치고 주무시다 돌아가시고 싶다더니. 정말 형님은 복 많이 받으신 분이네요. 형님, 편안히 가세요.” 그때는 몰랐다. 이렇게 주무시다가 편안하게 돌아가신 큰아버지가 ‘잘 돌아가신 것이라는 것을. 큰아버지는 ‘웰빙Well-Being, 웰 다잉Well-Dying의 전형이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사진 픽사베이)
노인들이 가장 원하는 죽음은 깨끗한 죽음이다. 이 깨끗함은 자신의 몸도 해당되지만 무엇보다 오랜 투병 생활을 하며 가족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있다. 병석에 누운 부모에게 애틋한 마음 없는 자식은 없다. 하지만 이 병석이 몇 달, 몇 년이 간다면 그때부터는 자식의 효심을 바랄 수만 없는 처지가 된다. 다행히 자신의 병원비를 여유 있게 마련해 놓는다 해도 그저 마지막 순간을 중환실에서 보낼 뿐이다. 대다수는 며칠 반짝 아프고 죽는, 자식들도 애타고 부모에 대한 그리움도 생기는 죽음을 원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양병원마다 죽음을 앞두고 있는 노인들은 생각보다 많다. 그렇게 병원에서 생을 마치는 ‘의료기관 사망률에서 한국은 상위권이다. 한국 사망자의 약 75%가 의료기관 사망자이다. 이는 네덜란드 29%, 스웨덴 42%, 미국 43%, 영국 49%에 비해서도 현저히 높은 수치이고 더 늘고 있다. 물론 집에서 임종을 맞는 것은 불편한 것이 많다. 의사의 사망 확인도 받아야 하고 또 아파트 거주형태에서 오는 불편도 있다. 이제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자신의 마지막을 설계하는 가도 매우 중요한 시대이다.
장 뤽 고다르, 데이비드 구달 박사, 알랭 드롱, 모두 유명인이다. 장 뤽 고다르는 프랑스의 영화감독으로 이른바 ‘누벨바그의 선구자였고, 데이비드 구달 박사는 호주의 생태학자로 104세까지 장수했다. 프랑스의 국민 배우 알랭 드롱은 20세기 미남의 상징이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바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고, 실행했다는 점이다.
92세의 장 뤽 고다르는 2022년 9월13일 스위스에서 법이 허용하는 의학적 도움을 받아 자신의 죽음을 선택했다. 우리는 이를 ‘존엄사 혹은 ‘조력자살이라 부른다. 그리고 데이비드 구달 박사 역시 2018년 스위스 바젤의 비영리단체인 페가수스에서 존엄한 죽음을 선택했다. 그는 베토벤 교향곡 9번을 들으며 스스로 약물 밸브를 열었다. 당시 그의 나이는 104세로 크게 아프지는 않았지만 낙상 사고 후 거동이 불편해진 상황이었다. 알랭 드롱 역시 2019년 뇌졸중 수술 이후 안락사를 선택할 상황이 온다면 스위스에서 안락사를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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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잘 사는 것, 즉 웰빙이 화두였던 시대도 있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리는 웰다잉이라는 새로운 화두에 직면했다. 이는 모든 인간에게 분명히 다가오는 사실인 ‘죽음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이다. 더구나 한국 역시 본격적인 노인 사회로 접어들고 있다. 2025년이면 한국은 초고령사회로 진입한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이 20%인 사회이다. 그리고 2045년에는 37%, 2060년에는 43.9%로 인구의 절반이 노인인 세계 최고의 노인국가가 될 것이다. 초고령사회가 더욱 심화될수록 우리는 죽는 것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늘어나는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자
최근엔 죽음의 선택지가 넓어지고 있다. 그것이 바로 ‘존엄사와 ‘안락사이다. 존엄사death with dignity와 안락사는 분명 다르다. 존엄사는 ‘말 그대로 품위 있는 죽음을 의미한다.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최선의 의학 치료를 다 했음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이 임박했을 때 의학적으로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중단해 질병에 의한 자연적인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출처: 매경시사용어사전)이다. 죽음을 앞둔 환자가 더 이상의 연명 치료를 하지 않는 것으로 즉 중환자실에서 호스를 주렁주렁 달고 하루를 그저 기계의 힘으로 생명을 연장하는 것을 스스로 중단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소극적 안락사라 부르기도 한다.
안락사는 다르다. 안락사는 환자가 매우 고통스러운 질병과의 싸움에서 ‘이제 그만 두겠다고 결심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력자가 필요하다. 즉 약물 등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인위적으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다. 이 안락사는 존엄사에 비해 엄격한 기준이 있다. 안락사 역시 두 가지로 나눠진다. 즉 적극적 안락사는 약물 등 적극적 수단이 동반되는 것을 말하고 소극적 안락사는 생명 연장을 위한 연명 치료를 중단해 죽음을 맞아들이는 행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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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역시 2018년에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후 이른바 존엄사는 가능하지만 안락사 즉 조력 존엄사는 금지되어 있다. 물론 2022년 6월에 ‘조력 존엄사법이 국회에 발의되었지만 아직은 사회적 논의의 필요로 국회 계류 중이다. 그런데 이 법안에 60대 이상의 찬성률이 86%로 상당히 높게 나와 고령층으로 갈수록 존엄사, 안락사에 대한 관심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연명의료결정법에는 7가지의 연명의료행위의 중단과 유보를 결정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사전의료의향서, 연명의료계획서, 가족의 환자, 의사 추정이나 가족 전원합의 등 엄격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7가지 연명의료행위는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수혈, 체외생명유지술, 혈압상승제 투여 등이다. 이는 환자의 생명을 의학적, 기계적으로 연장하는 연명치료를 중단하고 자연적인 죽음을, 즉 환자의 권리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존엄사의 법적 근거는 2009년 5월21일 대법원 판결이다. 당시 대법원은 ‘의식의 회복 가능성을 상실하고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이르렀다면, 연명치료가 오히려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해하게 된다. 사망 단계에 진입한 환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에 기초하여 자기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되는 경우에는 연명치료 중단을 허용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안락사에 대한 의료계와 종교계의 반대 이유는 분명하다. 생명 경시 풍조의 확산, 자살에 대한 방조, 혹은 자살을 부추길 수 있다는 점, 안락사나 조력 존엄사보다 더 시급한 것은 우리나라의 호스피스와 요양 병원에 대한 체계를 갖추는 것이 먼저라는 지적이다. 반대로 안락사를 찬성하는 입장에서는 자살률 상승에 대해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선택할 수 있기에 자살을 방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안락사는 환자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인위적인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적극적 안락사는 허용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2018년 연명의료결정법이 시행된 후 지금까지 약 25만 명이 연명의료를 중단한 것으로 국립연명의료관리기관 통계에 나왔다. 물론 이 중 상당수는 거의 임종 직전에 이 결정을 내린 것이지만 그 숫자는 점점 늘고 있다. 이 같은 추세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하는 사람도 늘어 2022년까지 약 157만 명이 작성했다.
스위스행 편도 티켓을 아는가?
한 연구기관에서 의사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만약에 병에 걸려 죽는다면 어떤 병을 선택하겠는가?라는 질문이다. 대답은 의외로 ‘암이었다. 그 이유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으로 한순간에 돌연사하는 것보다 암은 그래도 환자가 주변을 정리할 얼마간의 시간을 주기 때문이란다. 그렇다. 인간에게 죽음을 앞두고 준비할 것은 많다. 보고 싶은 사람도 만나고, 가보고 싶은 곳도 구경하고, 마지막에는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도 꼭 하고 싶을 것이다. 이 임종의 순간을 스스로 결정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불치병, 마약성 진통제를 복용해도 멈추지 않는 극심한 고통, 신체적 장애로 더 이상은 자신의 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 등등의 환자들 가운데 일부는 스스로 마지막을 결정하고 싶어한다. 그래서, 그들은 스위스행 편도 비행기표를 예약한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사진입니다.(사진 픽사베이)
스위스는 의사의 조력을 받는 존엄사를 원칙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물론 네덜란드도 2002년 안락사를 허용했고, 벨기에는 2002년 적극적 안락사와 의사 조력 존엄사를 합법화했다. 캐나다 역시 2016년에 안락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미국과 호주의 경우에는 일부 주에서 의사의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이 중 네덜란드에서는 매년 약 5000명 이상의 사람이 안락사를 선택한다고 한다. 물론 그 기준은 엄격하다. 치료 불가능한 병, 혹은 통증을 약으로 통제할 수 없을 때, 물론 이때도 유가족과 환자의 합리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스위스는 조력 존엄사 즉 안락사가 가장 오래전부터 합법화된 국가이다. 스위스는 1942년부터 스위스 국민은 물론 외국인의 조력 자살, 즉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고 있다. 명분은 당연히 ‘존엄 있는 삶과 죽음을 위해이다. 스위스에는 비영리단체로 조력 존엄사를 돕는 기관들이 있다. 디그니타스, 엑시트 인터내셔널, 페가수스 등이다. 그중 ‘디그니타스Dignitas는 1998년 인권변호사이자 기자 출신인 루디비히 미넬 리가 설립했다. 이 단체의 이름 디그니타스는 라틴어로 ‘존엄이다. 이 단체에는 2022년까지 한국인 117명이 가입되어 있고 그중 몇 명은 조력 존엄사를 선택했다고 한다. 여기에 일본인 50명, 대만인 49명, 중국인 58명이 가입되어 있어 한국인의 숫자가 비교적 많은 편이다. 이 단체에서는 불치병, 견딜 수 없을 정도의 신체적, 정신적 장애, 약으로는 통제가 불가능한 고통과 통증을 가진 환자들이 주로 찾는다. 비용은 가입비, 연회비 등이 있지만 조력 존엄사 시 약 1만 유로, 한화로 1,450만 원 정도라고 한다. 이 단체에서는 여러 가지 방법 중 최근에는 이른바 ‘조력 자살 캡슐을 쓴다고 한다. 미생물에 자연 분해되는 이 캡슐은 관이 되기도 하고 화장할 때 그대로 쓰기도 한다. 환자의 동의 하에 질소를 주입하는 방식이다. 스위스 바젤에 있는 안락사 단체 ‘페가수스Pegasos는 앞서 말했듯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조력 존엄사를 한 곳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방식을 ‘조력 자살assistance suicide이 아닌 ‘자발적 조력 사망voluntary assisted dying (VAD)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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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런 용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존엄사, ‘존엄한 죽음, ‘자의적 안락사, ‘의사 조력 사망 등 많은 용어를 구분해 부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가 스스로 자신의 마지막을 결정하고 의사나 가족은 그 결정을 존중하고 환자가 인간으로서 존엄과 가치를 갖고 마지막을 맞는 것이다. 연명의료동의서를 작성하고 본인의 삶을 스스로 끝내는 존엄사나 더 이상의 고통을 불허하고 마지막 존엄을 지키기 위해 의사를 조력을 받는 안락사, 이 두 가지 모두 법의 허용과 불허를 떠나 의학적, 종교적으로 쉽지 않는 문제이다. 다만 링거를 주렁주렁 달고, 기관지 삽관 인공호흡에 의존하고, 혈압강화제와 기타 기계의 힘으로 생명을 하루하루 연장해 나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환자의 존엄과는 거리가 있다. 설사 그가 생에 강한 집착과 불타는 의지, 거기에 최신 의료기술과 천운까지 겹쳐 어느 날 깨어난다면 그건 기적이지만 그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기에 우리는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다. 태어남이 자의적 선택은 아니었지만 죽는 것은 내 의지로 선택하겠다는 말 역시 조금은 억지스럽다.
여기 통계가 있다. 2021년 서울대학교 가정의학고 윤영호 교수팀이 실시한 ‘안락사 혹은 조력 존엄사에 대한 태도 설문에서 76.3%의 응답자가 입법화를 찬성했다. 그 이유는 ‘남은 삶의 무의미가 30.8%,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 26%, ‘고통의 경감 20.6%, ‘가족 고통과 부담감 14.8%였다. 물론 반대도 있다. ‘생명존중이 44.4%, ‘자기결정권 침해가 15.6%에 달했다.
이제 한국 사회도 존엄사, 안락사에 대한 심도 있는 논의가 필요하다. 인간의 수명은 점점 연장되고 또 의료 치료의 발달과 확대로 ‘환자로 살아가는 사람 역시 늘고 있다. 더 이상, 누군가의 죽음은 자식의 불효와 무관심의 결과도, 또 의료진의 치료 실패도 아니다. 무엇보다 인간은 존엄한 존재이다.
[글 권이현(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80호(23.5.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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