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문화 덕후 순례] 새로운 창작의 세계 ‘문구 덕후’ 여행
입력 2023-03-27 13:36  | 수정 2023-03-27 13:37
여행길에서 만난 종이 편집숍(사진 이승연 기자)
펜 한 자루, 가위 하나에 취향을 담다
일본어 ‘오타쿠를 한국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 ‘덕후. 이는 어떤 분야에 몰두해 전문가 이상의 열정과 흥미를 가지고 있는 이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앞으로 ‘문화 덕후 순례에서는 2030세대가 지역별 빵 맛집을 맛보고 탐험하는 ‘빵집순례를 하듯, 덕후들의 화제의 문화 아이템을 탐구해보고자 한다. 그 첫 시간은 바로 ‘문구 덕후를 위한 아이템이다.

속초 여행 때의 일이다. 서점에서 책을 골라 계산 줄에 서 있는데 사장님이 손님 겸 여행자들에게 몇 가지 추천 장소를 알려주고 계셨다. 기자 역시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시간이 남아 사장님이 추천한 장소들을 찾기로 했다. 그중 한 곳은 서점 옆에 위치한 2~3평 남짓한 공간의 가게. 본래 서점의 작은 계단 자리를 하나의 가게로 꾸몄다고 한다. 이곳은 ‘창작자에게 영감을 주는 도구와 오브제를 소개하는 문구점이라고 밝히고 있었다. 입구에서부터 공간을 가득 채운 연필과 색연필, 볼펜, 만년필과 펜촉, 잉크, 가위, 지우개 등의 문구들. 이곳에선 문구 하나도 크기와 브랜드별, 쓰임 등에 따라 구분하고 있었다. 가위 하나, 종이 클립 하나만 하더라도 색깔, 크기, 용도별로 물건을 배치해 매대 하나를 멋스럽게 채운다. 대형 서점 안의 아케이드에서도, 유명 문구점에서도 볼 수 없었던 모습에 신기한 마음에 이곳 저곳 살피며 지름신과 신경전을 이어가기 충분했다.
그 다음 추천 장소는 오래된 주택가 골목 끝자락에 위치한 소품숍이었다. 종이 원지(각종 엠보스지와 마분지 등)부터 종이에서 비롯된 생활용품들을 소개하는 곳으로, 편지봉투와 편지지를 비롯해 특히 마늘껍질이나 허브 생잎, 단풍잎, 갈대 등을 활용해 만든 수작업 한지 등이 기억에 남는 곳이다.

칼럼을 여행지의 추억으로 시작한 이유는, 우리는 언제 어디서 새로운 취향과 취미를 발견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처럼 여행길에서, 또는 평소 익숙한 동네 골목길에서 우연히 들른 가게가 그러하듯 말이다. 특히 문구라는 분야를 우리의 생각 이상으로 전문적이면서도 집중적으로 파고들 수 있다는 지점 역시 흥미롭다. 디지털과 무엇이든 빠르고 짧게 축약된 것이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아날로그의 총수인 문구가 때론 오랜 추억을 남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팬데믹, 새로운 취향 ‘다꾸를 생성하다

세계적인 연필 브랜드와, 포장지의 리본 역시도 하나의 문구 상품이 된다. 사진은 문구점 ‘포인트 오브 뷰.(사진 이승연 기자)

‘문구라는 주제 안에서도, 다양하게 즐길 수 있는 분야가 많다. 무엇보다 문구는 비싼 돈이 아니더라도 대중적인 아이템부터, 고급 문구 브랜드의 아이템까지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 역시 문구 덕후들이 꼽는 장점 중 하나이다. 문구에 대한 취향이 다양화되고 세분화된 계기는 최근 2~3년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의 트렌드 변화다.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가 확산되자 타인과 거리를 두고, 스스로에게 집중하고 즐길 수 있는 취미 활동을 찾아갔다. (커피와 설탕을 혼합해 400번을 저어야 완성한다는 달고나 커피를 한번쯤 만들어봤을 것이고, 3명 중 1명은 베란다 한 편에 콩나물 키우기 키트가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다꾸(다이어리 꾸미기) 문화는 1030세대들에게 손쉽게 해볼 수 있는 입문용 취미 중 하나로 꼽힌다. 코로나가 심각했던 2020년, 디자인전문쇼핑몰 브랜드 텐바이텐의 발표 자료에 따르면, 다이어리 카테고리(다이어리, 플래너, 캘린더 등 포함)에서 취급한 상품 종류는 2019년 대비 30% 증가한 2만4000여 개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스마트폰에 익숙한 세대들에게 문구 취미는 경제적으로 저렴하면서도, 아날로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아이템으로 작용했던 것이다.

최근까지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을 통해 ‘다꾸 관련 채널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해외에서는 ‘스크랩북킹으로, 국내에서도 ‘스크랩북킹 혹은 ‘다꾸를 주제로 하는 콘텐츠 영상이 쏟아졌다. 영상들은 대체로 빈 수첩의 양쪽을 집게로 고정한 뒤, 각종 스티커와 종이, 레이스, 마스킹테이프 등을 이용해 다이어리를 꾸미는 내용을 담는다. 핀셋으로 스티커를 떼어 수첩에 붙이고, 손으로 자른 들쭉날쭉한 종이도 때때론 클래식한 감성 효과를 낳는다. 별다른 시각 효과나 음향 효과? 없다. 수첩을 꾸미는 동안 들려오는 종이의 부스럭거리는 소리, 가위질을 할 때의 사각거림만 들릴 뿐이다. 그래도 해당 영상엔 ‘색다른 느낌의 취미를 알게 됐다, ‘편하게 봤다, ‘영상 소리로 잠을 청하기도 한다는 시청자들의 반응들이 줄을 잇곤 한다.
직접 산 스티커로 다이어리를 꾸며 보았다.(사진 이승연 기자)

문구 덕후의 여행기

‘문구에 대한 일반 소비자들의 관심이 늘어나며 관련 시장 역시 점차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전문 숍부터, 대형 서점 내 문구 코너, 다이소 등의 생활용품점, 편의점 등에서도 ‘문구, ‘다꾸 전용 코너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더현대서울과 성수동에 위치한 ‘포인트 오브 뷰는 도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브랜드로, 뭇 힙스터들의 발길을 끌어당기는 핫 플레이스다. ‘포인트 오브 뷰 서울(성수점)의 경우 1층 툴(Tool), 2층 신(Scene), 3층 아카이브(Archive) 등 세 가지 관점으로 분류해, 해당 장소에 어울리는 콘셉트로 문구류를 소개하고 있다. 주말에는 웨이팅까지 감수해야 한다는 이곳은, 평일에 찾았을 때도 적지 않은 손님들이 있었다.
‘포인트 오브 뷰의 색이 드러나는 층별 안내(사진 이승연 기자)

‘포인트 오브 뷰는 ‘문구점 하면 대개 떠올리던 이미지와는 상당이 판이하다. 유럽의 작은 박물관, 또는 주택을 개조한 오래된 서점에 온 듯한 분위기다. 매대 곳곳은 물론, 벽에 전시해놓은 액자에선 ‘연필계의 에르메스로 불린다는 블랙윙의 다양한 에디션부터, 검은색과 오랜지색이 반복되는 디자인으로 오랫동안 사랑받은 스테들러 노리스의 연필, 비너스 연필 등 다양한 브랜드의 필기구를 만나볼 수 있다. 물론 필기구 덕후가 아니어도 호기심에 이곳을 찾아도 충분하다. 상품 옆 작은 메모지에 간략한 설명을 덧붙여 읽다 보면 필기구 하나에 담긴 오래된 역사를 알아가는 재미 또한 있게 마련이다. 일례로 연필 브랜드 ‘LYRA리라 색연필 옆에 놓여 있던 설명문을 간략히 옮겨본다. ‘독일을 대표하는 연필 브랜드 중 하나로, 과거 유럽 연필의 전성기를 이끌어온 세계적인 문구 브랜드이다. 예술가부터 어린 아이들까지 여러 창작자들을 위한 고품질 드로잉 도구를 제작하고 있다. 이 밖에도 포인트 오브 뷰 홈페이지나 공식 SNS에서도 다양한 문구류 정보를 알 수 있다(기자는 3월30일이 ‘세계 연필의 날인 것을 새롭게 알게 됐다!).

더불어 을지로에 위치한 ‘마인띵스 역시 MZ세대들에게 주목받는 인테리어 소품숍이다. 최근 ‘감성 소품숍으로 잘 알려진 이곳에선 라이프스타일 용품을 비롯 편지지와 마스킹테이프, 떡메모지, 스티커 등의 각종 문구 아이템 등을 판매 중이다.
여행지에서 사는 엽서나 사진 등도 문구 덕후들에겐 일종의 놀이 아이템이 된다. 최근 1020세대 사이에서는 스마트폰 케이스, 포토카드, 폴라로이드 사진에 스티커를 붙이고, 도장을 찍어서 꾸미는 ‘스꾸(스마트폰 꾸미기), ‘폴꾸(폴라로이드 사진 꾸미기) 등 신조어가 생기기도 했다. 예쁜 스티커, 메모지, 마스킹테이프 등으로 자신의 취향과 개성을 적극 드러내고, SNS에서 자랑하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은 것이다. 최근 이마트24는 이 같은 MZ세대의 ‘꾸미기 트렌드를 반영해, 일러스트레이터, 크리에이터와 손잡고 오프라인 홍보관 역할을 하는 팝업스토어를 오픈했다. 이마트24 삼청동점 2층 공간에 일러스트레이터 3인의 작업실을 콘셉트로 한 ‘크리에이터 작업실 팝업스토어를 조성한 것. 이 공간에선 일러스트레이터, 크리에이터와 협업해 일러스트레이터의 노트, 엽서, 마스킹테이프, 메모지, 스티커, 그립톡 등 13종의 다양한 꾸미기 용품을 구입할 수 있다(4월9일까지).
이마트24 팝업스토어(사진 이마트24)

도서 『오늘도 문구점에 갑니다』(하야테노 고지 저 / 김다미 옮김 / 비채 펴냄). 문구 마니아 일러스트레이터가 추천하는 도쿄 여행, 일본 도쿄 거리 곳곳에 있는 문구점 80곳에 대한 ‘덕심 가득한 탐방기다.

‘문방사우(文房四友)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글과 그림을 배우는 문인들의 친구 4가지(붓, 먹, 종이, 벼루), 즉 곁에 두는 문구를 뜻하는 말이다. 현대인에게 연필보다는 키보드가, 종이보다는 스마트폰이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문구는 살아 남아 ‘취향의 세계로, 창작이란 기회를 열어주는 도구로, 나른한 시간의 미학을 알려주는 새로운 친구가 되어주고 있다.

사진 포토파크, 이승연, 비채, 이마트24
[글 시티라이프부 이승연 기자(lee.seungyeon@mk.co.kr)]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2호(23.3.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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