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Issue Pick] ‘피안성’ 몰리고 ‘내외산소’ 인력난
입력 2023-03-27 11:53  | 수정 2023-03-27 11:57
사진 픽사베이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는 인기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는 조용
지금, 의료 현장에서는 ‘의사가 없다고 하소연이다. 여기서 말하는 의사는 필수의료 전문의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 담당 의사를 말한다. 이 전문의들은 바로 ‘내외산소, 즉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진료의사들이다.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는 넘쳐 나는 대신, ‘내외산소 진료과의 인력난은 심각하다. 상급 병원과 지방 소재 대형급 병원들이 더욱 심각하다.


#1. 지난 2월22일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대학교 어린이병원을 찾아 아이들의 건강을 챙기는 것은 국가의 최우선 책무”라며 소아청소년 전문의 부족으로 소아 진료 공백이 이어지는 상황에 대해 부처의 종합적인 대책을 당부했다. 아울러 의사가 소아과를 기피하는 것은 의사가 아니라 정부 정책의 잘못이다. 건강보험이 모자라면 관련부처는 필요한 어떤 재원도 아끼지 말고 지원하라”고 밝혔다.

#2. 강원 속초의료원이 공석인 응급실 전문의 3명을 뽑기 위해 1차 채용 공고를 냈다. 하지만 지난 2월6일까지 진행된 1차 채용에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그러자 의료원은 2차 채용 공고를 내고 연봉 상한선을 4억2000만 원으로 올렸다. 속초의료원 응급실은 전문의 5명이 근무하는데 이 중 2명이 이미 퇴사했고 1명도 퇴사 예정이다.

#3. 공공의료 책임기관인 국립중앙의료원. 2월23일 의료원 전문의로 구성된 ‘국립중앙의료원 전문의협의회는 ‘2023년에 4명의 젊은 의사가 퇴사했다. 인력 부족으로 필수의료 붕괴는 이미 현실화됐다며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의료원은 현재 급성 위장관 출혈 등 응급색전술이 필요한 환자를 단 1명의 의사가 24시간, 365일 응급진료하고 있으며, 신생아 전문 의사와 신생아 중환자실이 없어 조산모, 미숙아의 입원 치료도 불가능하고 소아 전문 외과의사가 없어 맹장 수술은 물론이고 소아심장 의사, 소아영상 의사 등 소아전문 의사가 없다고 현실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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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경상남도 산청군보건의료원이 전문의 채용을 위해 4차 모집공고를 냈다. 산청군보건의료원은 지난해 11월 이후 내과 전문의가 없어 후임을 찾는 공고를 냈지만 아직 채용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산청군이 내건 전문의 처우는 연봉 3억6000만 원에 계약기간 2년, 업무 시간은 주5일, 하루 8시간 근무이다.

#5. 2023년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즉 SKY에 합격하고도 최종 등록을 포기한 수험생이 정원의 28.8%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000명이 넘는 숫자이다. 이 등록 포기 수험생 중 서울대 합격자는 의대로 이탈했으며, 연세대, 고려대 합격자의 대부분은 서울대 진학이나 타 대학 의대로 진로를 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6. 지난해 7월 서울아산병원에서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간호사가 숨졌다. 뇌동맥류 결찰술을 받으면 살 수 있었다. 이 수술을 할 수 있는 전문의는 이 병원에 단 두 명. 하지만 2명 모두 출장 중이었다. 다른 병원으로 이송된 간호사는 숨지고 말았다. 이 사건은 우리에게 충격이었다. 다른 병원도 아닌 서울아산병원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실은 더 무겁다. 현재 전국에서 이 수술이 가능한 숙련된 의사는 133명뿐이며, 이 중 상당수가 은퇴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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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안성에 몰리고 ‘내외산소는 기피

지금의 ‘대한민국에는 의사가 없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이들이라면 이 같은 현실이 믿기지도 않고 잘 이해되지 않을 것이다. 강남구 압구정동, 신사동, 청담동은 물론 서초구 강남역 일대만 가도 병원이 도처에 그야말로 천지다. 건물 하나가 모두 병원인, 즉 병원 빌딩이 줄지어 있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으니까. 물론 2급 종합병원도 많고 강남3구에는 상급 병원만해도 카톨릭대학 성모병원, 강남세브란스병원, 서울삼성병원, 서울아산병원이 자리하고 있다. 하지만 이 상급 병원을 제외하고 강남에서 볼 수 있고, 쉽게 찾을 수 있는 병원의 대부분은 이른바 ‘피안성이다. ‘피안성은 피부과, 안과, 성형외과를 말한다. 그 외에 수십 년 전통의 산부인과, 동네에 터줏대감처럼 자리한 내과, 관절과 디스크 치료 전문 정형외과, 기업화 된 치과 등이 대부분이다.

필수의료 전문의로 국민의 생명과 직결되는 진료를 담당하는 ‘내외산소 진료과의 인력난이 특히 심각한 곳은 상급 병원과 지방 소재 대형급 병원으로, 우리가 흔히 대학병원이라 부르는 병원들이다. 이 진료과의 전공의 충원율은 평균 77%라고 한다. 이 중에서 소아청소년과는 충원율이 25.5%이며 이를 수도권을 제외한 지방만 비율을 따지면 7%로 지방에서는 소아청소년과 전공의를 찾을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의 힘 이종성 의원실에서 올해 17개 시도별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전공의 충원율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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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자료를 보면 ‘의사 없다는 말이 실감 난다. 먼저 소아청소년과. 서울의 경우 101명 정원에 44명이 충원되어 충원율 43.6%로 제일 높았다. 경기도는 27명 정원에 4명, 충북은 3명 정원에 1명, 울산은 2명 정원에 1명, 전북은 8명 정원에 1명, 광주 9명 정원에 2명이 충원되었다. 그 외 인천, 대구, 부산 경남, 충남은 총 46명 정원에 단 한 명도 지원하지 않았다. 산부인과를 보자. 서울 104명 정원에 94명으로 90.4%로 충원율이 제일 높았고 경기는 20명 정원에 17명, 강원은 5명 정원에 4명, 대전은 7명 정원에 6명, 대구는 12명 정원에 7명, 부산은 13명 6명, 전북은 3명 모집에 1명이었고 충남과 충북은 충원율 0%이다.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 ↓

의사가 되는 과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수능 시험에서 거의 만점대를 기록해야 의대를 갈 수 있다. 확률적으로 고등학교 3학년 한 반에서 1명 정도 수치이다. 그렇게 의대에 입학하면 예과 2년, 본과 4년으로 6년 만에 의과대학을 졸업한다. 물론 의사국가시험을 통과해야 의사 면허가 주어진다. 여기서 의사들의 진로가 갈라진다. 의대 6년을 졸업하고 바로 개원할 수도 있다. 이들을 우리는 일반의라 부른다. 이 일반의들은 개원을 하거나 기존 개원 병원의 페이 닥터로 일하게 된다. 이들이 개원한 병원은 ‘○○○의원–진료과목 내과 등으로 표기하게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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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원을 하지 않고 수련의 과정에 들어가는 선택도 있다. 우리가 의학 드라마에서 많이 보는 의사들의 모습이다. 이 수련의들이 인턴이다. 인턴 과정은 1년이다. 그러면 전공의 시험을 보고 레지던트, 즉 전공의가 된다. 이 전공의들이 바로 대학병원, 종합병원의 핵심인력이다. 잠 못 자고, 세수 못하고, 밥 못 먹는, 그야말로 ‘극한 직업인 힘든 레지던트 과정은 보통 3, 4년이다. 이 과정을 마치며 전문의자격시험을 본다. 여기서 합격하면 전문의가 되는 것이다. 또 전임의, 펠로우, 임상강사 1~3년 과정을 더하게 되면 세부 분과 전문의시험을 보고 다시 세부 분과 전문의가 된다.

여기서 전문의가 병원을 개원하면 ‘○○○피부과라고 전문 진료과목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다. 이렇게 군의관 과정까지 포함하면 의대에 입학해 전문의가 되기까지는 짧게는 10년, 길게는 13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 황금기인 20대와 30대 초반을 알코올 냄새와 환자의 신음를 들으며 보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무엇보다 귀중한 인간의 생명을 다루는 의사 면허를 나름의 공부와 자격을 보지 않고 내줄 수는 없다. 그럼에도 한 명의 전문의가 탄생하는 과정은 무척이나 지난한 시간과 의사들 표현으로 ‘뼈를 갈아 넣은 고통을 거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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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난의 행군 과정을 거친 수련의, 전공의들은 전문의 시험을 준비하면서 자연스럽게 ‘내외산소를 기피하게 되는 것이 문제이다. 그것은 ‘과도할 정도의 업무 강도 때문이다. 특히 레지던트 전공의들의 혹사는 옛날부터 유명했다. 해서 2016년 전공의가 주당 80시간 이상을 근무할 수 없다는 법을 제정했지만 현장에서 이 법은 사실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대한전공의협의회가 2022년 전공의 근무 현황에 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를 보면 전공의 2명 중 1명이 주당 80시간을 초과해 일을 한다고 답했다. 그 비율은 흉부외과 100%, 외과 82%, 신경외과 77.4%로 높게 나타났고 이에 비해 피부과 15.2%, 마취통증의학과는 22.2%로 나타났다. 해서 전공의들이 기피하는 진료과로 소아청소년과, 흉부외과, 산부인과가 1∼3순위에 올랐다. 문제는 이 진료과들이 필수의료과라는 점에 있다. 이런 상황이 개선과 보완책 없이 지속되면 언젠가는 상급 병원을 찾아도 긴급 수술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올 수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가 지난 2월6~7일 이틀에 걸쳐 의대생 246명을 대상으로 ‘의대생이 꼽은 기피 전공 순위와 ‘의대생이 필수 의료를 지망하지 않는 이유를 조사했다. 첫 번째 의대생이 꼽은 기피 전공 순위 1위는 소아청소년과로 50.4%이다. 2위 흉부외과 47.2%, 3위는 산부인과 34.6%, 4위 기초의학 18.3%, 5위 병리과와 정형외과가 15.4% 등으로 나타났다. ‘의대생이 필수의료과를 지망하지 않는 이유에서 가장 높게 나타난 응답은 ‘전문의가 된 후 삶의 질을 기대하기 어려워서가 67.1%이고 두 번째는 ‘의료사고에 대해 과도한 책임을 질 우려 때문이 64.4%였다. 다음은 ‘전공의 시절 업무 강도가 지나치게 높아서로 61.1%, ‘적성에 맞지 않을 것 같아서가 51.9%로 나타났다.(기사 인용–동아일보, 2월17일, 조유라 기자 / ‘ 격일로 26시간 당직에 꿈꾸던 외과 의사 접어”… 커지는 필수의료 공백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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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러한 대답 외에도 의사의 숭고한 소명을 돈으로 계산하는 것이 맞지는 않겠지만 현실적으로 ‘내외산소 의원급 의사들의 평균 연봉은 ‘피안성에 못 미친다. 2020년 기준 소아청소년과의 개원의 연평균 소득은 1억875만 원으로 의사 전체 평균 2억3070만 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피안성 개원의들의 평균 소득 약 3~4억 원대와 비교할 수도 없는 수치이다. 이런 현실에서 심지어 가설이지만 몇 년 후 전쟁이라도 벌어지면 당장 부상자들을 치료할 의사가 없는 상황에 놓일 수도 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의료수가체계와 필수의료 의사 처우↑

그럼 대책은 없는 것일까. 2020년 당시 정부에서는 의대 정원을 확대하고 지방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의대생들의 국가고시 거부, 전공의 파업 등 의료계의 강력한 반대와 코로나19 확산으로 이 논의는 중단되었다. 물론 사회 각계에서는 18년째 동결된 3058명이라는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리자는 의견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결코 녹록치 않다. 단순히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보다 의학계에서는 ‘건강보험 수가가 필수의료 분야 진료나 수술에 대해서 낮게, 검사는 높게 책정되어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또한 필수의료 분야 의사의 주거, 아이들 교육 등 근무환경 마련과 처우에 대한 개선 없이 의대 정원만 늘리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라고 말한다. 필수의료과에 대한 수가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현재 수가 체계는 환자를 보면 볼수록, 수술을 하면 할수록 이익이 나지 않는 구조라고 한다. 해서 의대 정원의 확대와 수가 체계의 개선, 필수의료과 의사에 대한 처우 개선, 지방의료원 근무에 필요한 환경과 여건 마련 등이 같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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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의사들이 필수의료과를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고위험 진료나 수술에 따른 의료 소송에 대한 부담감이다. 이를 위해 ‘필수의료 사고처리 특례법 제정을 요청하고 있다. 이 특례법에는 고위험 수술, 응급환자 치료, 분만 등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진료 중 의료사고가 발생해도 의사의 중대 과실이 아니라면 형사처벌을 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현재 의료인이 의료와 관계된 범죄뿐 아니라 교통사고 등 모든 범죄에 대해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으면 면허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에 대해서 모든 의료계가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현행 의료법은 의사가 ‘의료 관련 범죄에 한해 금고형 이상을 선고받을 때만 면허가 취소되고 그 외 영역 범죄는 의사 면허와 상관없다고 되어 있다. 이 현행 의료법을 변호사 등과 형평이 맞지 않다고 ‘범죄 의사 면허 취소법의 국회 상정이 논의 중인 것이다.

이 세상에서 무엇보다 가장 소중한 것은 인간의 생명이다. 꺼져가는 생명을 되살리기 위해 오늘도 피땀 흘리는 의사들은 많다. 그들 역시 의사라는 숭고한 직업을 가졌지만 생활인인 건 분명하다. 무조건적인 소명 의식, 책임감만을 그들에게 강요하면서 메스를 들게 할 수는 없다. 여기 의사의 선서가 있다. 바로 히포크라테스 선서이다. 그 일부를 한 번 읽어본다. ‘나는 나의 능력과 판단에 따라 환자를 이롭게 하기 위해 섭생법을 쓰는 반면, 환자가 해를 입거나 올바르지 못한 일을 겪게 하기 위해 그것을 쓰는 것은 금할 것이다. 나는 나의 삶과 나의 의술을 순수하고 경건하게 유지할 것이다.

[글 권이현(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72호(23.3.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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