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죽을 것 같아 도망쳐"...'12시간 감금폭행' 사건의 전말-취[재]중진담
입력 2023-03-24 19:18  | 수정 2023-03-25 09:37
'12시간 감금폭행 사건' CCTV
"저희를 가지고 놀면서 누가 더 잘 때리느니 마느니, 손가락을 자르느니 마느니..."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도망쳤어요."

MBN이 지난 21일 보도한 '12시간 감금폭행' 사건의 피해자가 취재진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입니다.

참고 // [단독] "12시간 감금폭행" 일당 1년 만에 송치…'15명의 조직폭력' (https://n.news.naver.com/article/057/0001730186)

이렇게 잔혹한 범행은 그 순간 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이번 기사를 통해 방송에서는 시간적 한계 때문에 다루지 못했던 사건의 내막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12시간 감금폭행'의 시작..."잠적한 직원을 찾게 도와달라"


지난해 2월, 코인 회사 대표 30대 남성 김 모 씨는 "회삿돈을 갖고 잠적한 직원을 찾는다"며 직원과 잠시 한 집에 살았던 남성 2명에게 직원을 찾을 수 있게 도와 달라고 말했습니다.

김 씨가 서울 강남구에 있는 회사 사무실로 그들을 데리고 온 순간, 김 씨의 태도는 돌변했습니다.

직원의 행방을 말하라며 잔혹한 폭행과 감금이 시작된 겁니다.
'감금폭행' 당시 피해자 중 1명의 얼굴11
흉기로 위협당한 손

김 씨 일당이 남성 2명을 흉기로 위협하다 못해 알루미늄 배트로 엉덩이를 수차례 폭행하고, 뺨까지 때렸습니다.

남성들은 얼굴, 엉덩이 등에 피멍이 들 정도로 두들겨 맞았고, 손가락에는 흉기로 입은 상처까지 남았습니다.

약 12시간 동안 감금과 폭행이 이뤄졌는데, 피해자 1명이 감시가 소홀해진 틈을 타 화장실을 가겠다며 빠져나왔습니다.

감금당한 건물에서 약 400m가량 떨어진 인근 파출소로 죽을힘을 다해 도망치면서 폭행은 결국 끝이 났습니다.
김 씨 일당은 또 다른 지인을 찾으려고 주거침입을 하다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사진1)
김 씨 일당은 또 다른 지인을 찾으려고 주거침입을 하다 경찰에 체포됐습니다. (사진2)


김 씨는 경찰 조사를 받고도 나와서, 직원의 또 다른 지인의 집에 들어가려다 현행범으로 체포됐습니다.

그런데 해당 사건은 김 씨가 저지른 범행 중 일부분에 불과했습니다.

직원은 사실 '상습공갈 피해자'...가족까지 협박

사건의 시작은 지난 2021년으로 올라갑니다.

김 씨는 당시 자신의 코인 사업을 도와줄 수 있는 다른 업체 대표 A 씨에게 투자를 맡긴 뒤 수익을 내지 못하자 A 씨를 폭행하고 돈을 뜯어내게 됩니다.


A 씨가 돈을 불려주기를 바랐지만, 당시 코인장이 하락세를 타면서 수익을 내지 못하게 되자 폭행과 공갈을 일삼은 겁니다.

상습 폭행은 물론, 심지어 가족과 주변 직원들을 건드리겠다는 협박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결국 그해 12월 말, 참다못한 A 씨는 김 씨를 피해 도망치게 됩니다.

A 씨가 도망치자 김 씨는 A 씨 회사의 직원인 B 씨를 볼모로 삼고, B 씨에게 강제로 20억 원의 차용증을 쓰라고 협박했습니다.

또, A 씨가 두고 간 컴퓨터를 통해 A 씨의 위치 정보를 알아내고 A 씨가 충북 청주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김 씨 일당은 곧바로 청주로 내려가 A 씨를 찾아다녔고, 이 과정에서 A 씨 지인들도 폭행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A 씨의 직원이었던 B 씨는 한 달 뒤, 가까스로 김 씨에게서 도망쳐 나왔고 A 씨와 주기적으로 연락하며 자신들의 회사 프로젝트를 비밀리에 진행하게 됩니다.

하지만, 김 씨도 프로젝트 진행 사실을 알게 되고 "내 돈을 A 씨가 가져가서 사업을 한다"며 격분해 A 씨를 찾는 데 속도를 붙입니다.

B 씨를 찾으면 A 씨를 찾을 수 있겠다는 생각에, 김 씨가 B 씨의 지인들을 찾아 나서게 되고 지난해 2월 위에 묘사한 '12시간 감금폭행' 사건이 발생하게 됩니다.

감금폭행 피해자들은 B 씨의 지인이라는 이유로 12시간 넘게 공포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결국, 김 씨가 '돈을 갖고 잠적한 직원'이라고 표현했던 A 씨 등도 실제로는 김 씨 회사의 직원도 아니었고 김 씨의 공갈과 협박에 당한 또 다른 피해자들이었던 겁니다.

구속영장 기각...피해자 "전관 변호사 썼다"

'12시간 감금폭행' 사건은 지난해 2월 MBN이 보도하면서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참고 // [단독] "잠적한 직원 행방 말해라"…지인들 감금하고 폭행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57/0001640623?sid=102)
지난해 2월 '감금폭행' 사건 첫 보도

김 씨 일당이 저지른 감금과 폭행은 심각했지만,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을 법원이 기각합니다.

피해자들은 취재진에게 김 씨가 "2억 원이 넘는 돈을 들여 전관 변호사를 썼다"고 주장했습니다.

법원은 1년이 지난 구속영장실질심사 결과에 대한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밝혔고, 심사 자체도 비공개가 원칙이라 피해자들도 왜 기각됐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습니다.

다만, 김 씨는 '자신이 한 회사의 대표라는 점'과 '피해자들과 채무 관계로 얽혀 있어 돈을 찾으러 갔다는 점' 등을 주장하며 이를 참작해 달라고 호소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영장이 기각되면서 피해자들은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피해자는 "2~3달 동안 집에서 나오지 않았고,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건 물론 경호원까지 뒀다"고 말했습니다.

수사는 지지부진했고, 피해자들은 "김 씨가 영장이 기각되고도 A 씨 지인을 찾으려고 시도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강수대 수사 확대...이태원 참사 뒤 검거

'12시간 감금폭행' 사건은 원래 서울 강남경찰서가 수사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서울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가 김 씨 일당의 조직 폭력 정황을 수사하던 중 해당 사건을 알게 되면서 이를 병합해 수사를 확대하기 시작합니다.

김 씨의 내부 조직원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피해자들에게 당시 CCTV를 제보하게 되고, 경찰도 이를 확보하면서 수사에 속도가 붙었습니다.

하지만, 경찰이 김 씨 일당을 체포하기 직전 이태원 참사가 발생합니다.

결국, 강수대 수사력이 전원 이태원 참사 특별수사본부로 가게 되면서 사건은 또 한 번 멈추게 됩니다.

특수본 수사가 마무리되고 올해 초, 경찰은 다시 김 씨 일당을 추적해 지난달 말 김 씨 등 주범 3명을 구속 송치했습니다.

추가로 구속된 주범 2명도 지난 22일 구속 상태로, 범행에 가담한 공범 4명은 불구속 상태로 검찰에 넘겨졌습니다.

경찰이 최근 검거한 주범 1명도 결국 구속됐습니다.

경찰은 김 씨 일당의 규모가 총 15명이라고 보고 공범에 대한 수사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공갈 금액만 100억 원...'범죄단체조직죄' 적용은 못해

지난 21일 MBN 보도화면

경찰은 김 씨가 공갈한 금액만 100억 원 넘게 보고 있고, 저지른 폭행도 수십 건에 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실제 피해 금액은 100억 원보다는 적은 금액이지만, 범죄 수익금은 기소 전 몰수·추징 보전할 수 없었습니다.

김 씨 일당이 사실상 조직폭력을 일삼았어도, 행동강령 등 통솔체계 없이 활동을 한 거라 경찰이 '범죄단체조직죄'를 적용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경찰도 이들을 범죄단체로 인지하고 수사에 착수했던 터라, 아쉬움이 남는 부분 중 하나일 겁니다.

취재 과정에서 김 씨는 '법대 출신'에다가, 주범 중 한 명은 공무원인 것으로도 파악됐습니다.

김 씨는 '법대 출신' 다운 면모를 보였습니다.

피해자들에게 강제로 차용증을 쓰게 해 수사기관에 본인과 피해자들은 '채무 관계'라고 주장하고, 감금폭행 사건 피해자들에게는 처벌 불원서까지 쓰게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렇게 극악무도한 김 씨 일당의 범행은 김 씨 등 주범이 1년 만에 검찰에 송치되며 끝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피해자들은 이제라도 김 씨가 법의 심판대에 올라가 제대로 된 죗값을 받길 원할 뿐입니다.

그들이 당시 겪은 끔찍한 공포와 불안이 이제는 조금이나마 씻겨 나가길 바라봅니다.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 김태형 기자 flash@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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