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김주하의 '그런데'] 한글 사교육 받는 아이들
입력 2023-03-20 20:11  | 수정 2023-03-20 20:15
"나한테 글 좀 가르쳐주면 안 되겠나?"

불미스러운 일로 시골 분교로 좌천돼 서울로 다시 돌아갈 날만 기다리는 교사 김봉두. 그런데 괴팍스러운 노인네 한 명이 한글을 가르쳐달라며 졸라댑니다.

이렇게 학교에 다니지 못해 뒤늦게 한글을 깨친 어르신들이 꽤 있죠.

이분들은 어린 시절 학교만 다녔어도 글을 배웠을텐데라며 아쉬워하는데 그럼 지금 학교에 가면 한글을 배울 수 있을까요?

"교문에 걸린 현수막을 다 함께 읽어보자." 어느 초등학교 입학식 날 운동장에 선 1학년 아이들에게 교장 선생님이 했다는 말입니다.

이걸 듣고 한 학부모는 그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다고 하죠. 입학하자마자 담임교사가 누가 제일 잘 쓰나 보자며 받아쓰기를 시켜 한글을 미리 배우지 않은 아이는 울어 버렸다는 사연도 있습니다.

정부는 이른 시기에 문자를 학습하면 아이들의 고른 두뇌 발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육과정에서 한글 교육을 배제하고 있습니다.

한글은 초등학교에 가서 배우라 이거죠. 그런데 실상은 저러니 결론은 하납니다. 사교육을 해서 한글을 미리 배우는 수밖에요.

그래서 학부모 10명 중 9명은 입학 전 한글 공부를 시키는데 아이가 남들보다 뛰어나길 바라서가 아니라 수업 시간에 자신감을 잃고 뒤처질까 가르치는 거라고 합니다.


요즘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사설학원에서 운영하는 의대 입시반에 들어간다죠.

사교육 열풍이 문제라고요? 그렇다면 한글조차 사교육을 거치도록 만드는 시스템부터 바꿔야 하지 않을까요.

초등학교에서 한글 교육을 확실하게 할 테니 미리 가르쳐 보내지 말라고 하든가. 그게 아니라면 초등학교 입학 전 몇 개월이라도 유치원에서 한글 교육을 허용하든가 말이지요.

사교육을 부추기면서 아니 사교육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놓고는 사교육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요?

'한글 책임 교육'이라는 무책임한 구호에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학부모들은 난감하기만 합니다.

김주하의 그런데 오늘은 '한글 사교육 받는 아이들'이었습니다.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