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체르노빌의 떠돌이 개' 37년 대 이어 생존...최초의 유전학 연구 성과
입력 2023-03-04 15:41  | 수정 2023-03-04 16:02
체르노빌의 개/사진=연합뉴스
체르노빌 원전사고에도 개들 15세대 걸쳐 생존 확인
순종 개과 구별되는 유전적 특성 보여
37년 전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 사고 후 버려진 땅에 살고 있는 떠돌이 개들에 대한 최초의 유전학 연구 성과가 나왔습니다.

과학저널 사이언스 어드밴시스는 '체르노빌의 개들: 핵 출입 금지구역(the nuclear exclusion zone) 내에 서식하는 개체군에 대한 인구학적 통찰'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3일(현지 시각) 실었습니다.

1986년 4월 26일, 옛 소련에 속했던 우크라이나 북부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에서 폭발과 화재가 발생하면서 주변에 방사성 물질이 다량으로 누출됐습니다. 사고 현장인 원전 부지 주변 2천 600㎢는 '체르노빌 출입 금지구역'(Chernobyl Exclusion Zone)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 지역에는 사람의 돌봄을 받지 않아 야생화된 개들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지역 주민이 키우던 개들의 후손인지, 다른 곳에서 새로운 개들이 유입된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들은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의 척박한 여건 속에서 여러 대에 걸쳐 살아왔습니다.

연구진은 이 구역에 서식하는 개들 중 302마리의 혈액 표본을 채취해 유전적 구조를 분석했습니다.

분석 대상이 된 '체르노빌의 개들'은 사고 현장인 체르노빌 원전 부지 안과 이로부터 남쪽으로 15km 떨어진 체르노빌 시티 등에 살고 있었습니다.


분석 결과, 체르노빌의 개들은 순종 개들이나 다른 자유 교배 집단과 구별되는 유전적 특성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친족 관계를 분석하자 이들 내에 15개의 '가족'이 있는 것을 발견했으며, 가장 규모가 큰 가족은 방사능 출입 금지구역 내의 모든 샘플 채취 장소에 걸쳐 발견됐습니다.

체르노빌의 개/사진=연합뉴스

또 원전 부지와 체르노빌 시티 사이에 개들의 이동이 있다는 점도 드러났습니다.

연구진은 "체르노빌에 사는 가축화된 생물종의 특성을 밝힌 최초의 연구"라며 "장기간에 걸친 저선량 전리방사선(ionizing radiation) 노출의 영향을 유전학적으로 연구하는 데에 중요하다"고 이번 연구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논문의 교신저자 겸 공동 주저자인 미국 국립보건원(NIH) 산하 국립인간게놈연구소(NHGRI) 소속 일레인 오스트랜더 박사는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15세대 동안 어떻게 생존할 수 있느냐?"라는 핵심적 질문에 답하기 위한 기초 작업이라고 AP통신에 설명했습니다.

AP에 따르면 공동 주저자인 티머시 무소 사우스캐롤라이나대 생명과학과 교수는 1990년대 말부터 체르노빌 주변 지역에서 현장 연구를 진행해 왔으며, 2017년쯤부터 이 지역 개들의 혈액 표본을 채취하기 시작했습니다.

연구진은 이번 연구를 바탕으로 유전적 변화를 분석하는 등 후속 연구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무소 교수는 체르노빌의 개들에 대해 "야생화되긴 했지만, 여전히 인간과의 교류를 즐거워한다"며 "특히 음식이 있으면 더욱 그렇다"고 덧붙였습니다.

[정혜원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whj428@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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