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건강
[Overseas Trip] 지금 당장 무작정 일본
입력 2023-02-24 14:21  | 수정 2023-02-24 14:36
미야자기현 아오시마섬의 모래사장과 야자수
미야자키 바닷가 마을과 오이타 온천 여행
즉흥적으로 해외여행을 계획하고 곧장 실천에 옮기던 때를 기억하는가? 코로나19로 막혔던 해외여행 길이 하나둘 재개되면서 국내외 저비용 항공사의 노선 확대 등이 활발히 추진되는 분위기다. 코로나19 이전처럼 주말을 이용해 무계획으로 무작정 떠나기 좋은 가까운 나라, 일본 미야자키, 오이타로 떠난다.


‘위드 코로나로의 전환을 시작한 건 2021년 하반기부터다. 당시 코로나19 여파로 막혀 있던 하늘길이 드디어 뚫리는가 싶어 잔뜩 기대에 부풀었는데 그것도 잠시였다. 매일같이 눈 뜨자마자 전 세계 최저가 항공권을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 화면을 검색하고 또 검색했지만 눈 앞에 보이는 건 ‘최고가 항공권뿐이었다. 어쩌면 당연했다. 이제 막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었을 뿐인데, 잃고 지내온 일상을 한순간에 되찾기란 커도 너무 큰 욕심이었다. 기대보단 기다림을 택한 채 그로부터 잠자코 흘러가는 시간을 떠안은 지 1년, 이제 기대를 내보여도 될 만큼 여행과 항공업계에 여러 변화가 생겨났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하늘길이 차츰 열리는 분위긴가 싶더니 올해는 해외여행 수요가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훨씬 뛰어넘게 될 것이란 낙관론이 지배적이다.

누구나 반드시 되찾고 싶은 코로나19 이전의 일상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비단 하나뿐이겠나. 그중에서 굳이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저가 항공권의 풍년이 일상이던 때를 꼽고 싶다. 몇 달 전부터 미리 휴가날짜를 조정하고 철두철미하게 여행계획을 세우고 온갖 여행정보를 섭렵하지 않아도 되는, 그냥 가까운 나라로 무계획으로 무작정 떠나는 그런 여행이 가능했던 때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런 여행이 가능했던 건 비행기로 1~2시간이면 닿는 가까운 위치와 왕복 10~20만 원대의 저가 항공권을 쉽게 손에 넣을 수 있어서였다.
아오시마섬의 모래사장

풍년일 땐 고마움을 모르고 산다. 잃고 나면 세상이 바뀐 것 같지만 결국 바뀐 건 나 자신이다. 이를 깨닫고 나면 결국 잃음이 얻음으로 바뀐다. 전 세계 최저가 항공권을 찾아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서서히 제 기능을 회복하는 추세다. 다음달 또는 이번 주말에라도 가까운 시기 언제든 무작정 떠나기 좋은 그런 여행이 도래했다.

미야자키의 명물 치킨난반

비행기가 활주로에 부드럽게 상륙한다. 일본 본토 최남단에 위치한 곳, 규슈 남동부 미야자키 도심에 발을 들였다. 도착하자마자 허기진 배부터 채운다. 이 지역 대표 음식으로 꼽히는 치킨난반 맛집을 지도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지도 위 파란 불빛을 굳이 따라가지 않아도 골목 안쪽에 들어서자 건물 앞에 줄지어 선 사람들이 ‘맛집의 위용을 알린다. 맨 뒤 자리에 서서 기다린 지 불과 몇 분 만에 후다닥 식당 문에 닿을 듯 순서를 빠르게 갈아치운다. 빠른 회전율에 믿음이 간다. 아니나 다를까. 식당 직원의 안내에 따라 테이블 의자에 엉덩이가 닿은 후부터 주문한 음식을 받기까지 숨 돌릴 틈 없이 빠른 전개가 이 식당의 자랑 같았다.
미야자키 시내에 자리한 치킨난반 맛집(위)미야자키 대표 요리 치킨난반(아래)11

큰 접시 위에 다이내믹하게 자리잡은 음식 차림새가 어째 숨가쁘게 돌아가는 주방 사정을 고스란히 표현해 놓은 모양새다. 양배추 샐러드와 토마토 스파게티, 간장 소스에 조린 것 같은 튀긴 닭고기, 그리고 그 위에 꽤 많은 양의 타르타르 소스가 올려져 화룡점정을 이룬다. 돈가스처럼 기름에 튀긴 바삭바삭한 닭고기를 그냥 먹어도 될 걸 왜 굳이 간장에 조렸을까 싶었는데, 치킨난반의 매력이 바로 여기에 있다. 미야자키에서 흔한 서민음식으로 대표되는 치킨난반은 튀김요리를 못하는 누구라도 쉽게 조리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러니 기름 온도 조절에 실패해 바삭바삭함을 살리지 못한 치킨도 절대 포기하기 말 것. 치킨난반으로 새로 태어나면 그만이다. 한데 막상 맛을 보니 닭고기 튀김이 메인이 아니라 타르타르 소스가 주인공이었다. 흥미롭게도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담백한 타르타르 소스가 서민 음식을 경양식 요리로 둔갑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작은 바닷가마을 아오시마

미야자키 여행의 여장은 아오시마에 풀었다. 잠깐 번잡한 서울을 벗어난 여행인데, 굳이 도심을 택할 리 없지 않은가. 미야자키역에서 니치난선을 타고 남쪽으로 아오시마역까지는 고작 30분 거리다. 간이역처럼 생긴 단출한 아오시마역의 첫인상이 잠깐의 휴식에 불을 지핀다. 일본 규슈 남부 북태평양에 자리한 섬, 외딴섬이 따로 없다. 역에서 숙소로, 해변공원과 야요이다리 등의 관광지까지는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다. 그냥 걷기만 해도 바닷가 마을과 섬이 한눈에 들어온다. 육지와 연결된 다리를 건너 섬을 한 바퀴 둘러보는데도 고작 30분 정도 소요되는, 지도에서 본 것보다 훨씬 자그마한 섬이다. 그래서 곱절로 반갑다. 그것으로 여행의 이유가 분명해졌다.
1 자연에 의해 형성된 암석, 도깨비 빨래판
2 섬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된 아오시마섬

일본 건국 신화의 무대로 전해 내려오는 유서 깊은 땅, 아오시마는 섬 전체가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섬 주변을 둘러싼 ‘도깨비 빨래판이 방문객의 흥미를 돋운다. 수천 년 동안 파도가 지나간 자리에 생겨난 파도 모양의 암석은 시간의 변화에 따라 겹겹이 층을 이루며 마치 케이크처럼 쌓여 있다. 해안 전체에 걸쳐 생성된 암석은 흡사 사람의 손으로 일부러 만들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라 더 놀라움을 준다. 100% 자연에 의해 형성되어 과학자들도 쉬이 그 속성을 설명할 수 없다고 하니, 그래서 도깨비라 이름 붙여진 것일까? 이토록 작지만 신비로운 섬은 최근 들어 서핑과 해양스포츠가 활발한 장소로도 주목받고 있다. 모래사장과 야자수를 배경으로 느긋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전통과 현대가 적절히 조화를 이루는 외딴 바닷가 마을에서 도깨비와 함께 잠을 청한다.

미야자키 유명 신사와 수호신

아오시마 호스텔 버스정류장에서 965번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향했다. 1시간 정도 달리면 칠레 이스터섬에 있는 모아이 석상을 만날 수 있다고 해서 오전 일찍 버스를 잡아탔다.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는 버스는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한가로운 풍경은 한가로운 마음에 닿고, 분주한 여행은 금세 또 목적지에 닿는다. 미야자키에선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다. 물론 좋은 의미에서. 여행의 시간은 언제나 쏜살같이 흐른다. 그렇게 모아이 석상이 코앞이다.
(위로부터)미야자키 유명 신사인 우도 신궁, 태평양이 바라다 보이는 해안 언덕에 자리한 ‘선멧세 니치난 공원, 미야자키의 수호신 모아이 석상

'선멧세 니치난은 태평양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니치난 해안 언덕에 자리한 일종의 테마파크다. 1996년 마을 활성화 운동과 평화를 바라며 설립돼 현재에 이른다.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데다 칠레 이스터섬의 정식 허가를 받은 세계문화유산인 모아이 석상 10구가 이곳의 최대 볼거리로 꼽힌다. 칠레 원주민들 사이에 벌어진 부족 간의 항쟁, 지진 등의 자연재해 여파로 파괴되고 훼손된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을 일본의 한 기업이 적극 복원하겠다고 나선 것이 이곳의 모아이 석상 복각으로 이어졌다고 전해진다. 10구 중 7구는 해안에 나란히 세워져 있으며, 나머지 3구는 이스터섬을 연상시키듯 경사 위에 자리해 볼거리를 더한다.

미야자키 여행의 마지막 목적지로 향한다. 선멧세 니치난에서 남쪽으로 6km 떨어진 거리에 미야자키시 남부에서 가장 유명한 신사이자 일본에서 유일하게 동굴 속에 자리한 신사가 있다. 태평양에 돌출된 우도자키 곶 끝자락, 바로 동굴 안에 지어진 우도신궁이다. 발 아래 펼쳐진 근사한 바다 풍경을 벗삼아 둘러보기에 좋은 장소다. 곶의 주위에는 기암, 괴기한 암초가 줄지어 있는 데다 태평양의 거친 파도 소리가 배경음악이 되는 곳.

아주 먼 옛날부터 일본 현지인들은 제각기 간절한 소망을 품고 신사를 찾았다는 썰이 있다. 행운을 비는 커다란 거북바위 위에 방문객이 던지고 간 수많은 돌멩이가 그 썰을 뒷받침한다. 거북바위의 존재를 차치하고서라도 태평양 바다의 낭만적인 풍경만으로 행운은 나의 것, 그것에서 위안을 얻고 막바지 여행의 아쉬움을 달랜다.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벳푸 온천여행

벳푸 여행의 시작은 후쿠오카다. 서울에서 비행기를 타고 후쿠오카까지는 1시간20분 거리다. 오이타 공항을 이용하기보단 후쿠오카에서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벳푸로 이동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다. 하카타역에서 출발한 기차는 2시간 가까이 달려 벳푸역에 닿았다. 시내를 둘러볼 새도 없이 곧장 숙소로 갔다. 온천탕이 여행자를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숙소에 수건과 함께 가지런히 놓여 있는 유카타를 후다닥 걸치고 발걸음을 옥상으로 옮겼다. 온천탕에 몸을 담그니 벳푸가 온전히 내 세상 같다. 시내 탐방은 숙소 최상층 노천온천에서 내려다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위)지옥온천에서 만나는 동물농장
(아래)100도에 가까운 지옥온천수가 선사하는 진귀한 광경

벳푸하면 온천, 온천하면 벳푸다. 일본에서 1위로 꼽는 온천 도시다. 원천수 약 3000곳에서 하루 분출되는 온천 양만 13만7000톤에 달한다. 벳푸는 일본에서 가장 온천수량이 풍부한 곳으로 일본 전체의 온천지 중 10% 이상을 차지한다. 이곳은 8세기 들어 처음 온천수를 이용했다고 전해지며, 12세기말 몸에 상처를 입은 사무라이가 빠른 회복을 위해 벳푸 온천에 몸을 담가 치유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통과 현대적 설비가 갖춰진 ‘벳푸8탕이라 불리는 온천 마을 8곳이 지역의 중심을 이룬다. 온천수는 염화물 농도가 높은 물부터 중조 함유량이 많은 알카리성 물까지 그 특성도 다양하다. 사무라이의 회복을 도왔던 온천수의 효험은 현재에도 이어져 방문객 대다수는 벳푸에서 심신의 치유를 기대한다.
1. 벳푸 호텔 야외 온천탕 2. 지옥 온천 3. 진흙으로 이루어진 스님 지옥 온천 4. 벳푸 시내가 보이는 온천 호텔

‘벳푸8탕 중 하나인 칸나와온천 마을에서 지옥순례를 경험했다. 벳푸 시내에서 북쪽으로 약 6km 떨어진 곳에 연기가 끓어오르는 7곳의 지옥 온천이 테마파크처럼 자리한다. 펄펄 끓는 물과 가스가 세차게 부글부글 피어 오르는 진귀한 광경은 신비로우면서 아찔한 ‘지옥 이름 그대로다. 100도에 가까운 고온의 온천수 앞에는 ‘입욕금지, 관람용이라는 사인이 지옥에서 벗어나 현실세계임을 자각하게 만든다. 7곳 지옥 온천마다 ‘바다, ‘도깨비 대머리, ‘산, ‘가마솥, ‘흰 연못 등의 재미난 이름이 붙어 있다.

5곳은 가나와 지구에, 2곳은 시바세키 지구에 자리한다. 가나와 지구에 있는 5곳은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지만 시바세키 지구에 위치한 나머지 2곳은 투어 버스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 지옥온천은 특이하게도 야생 동물의 서식지로도 유명하다. 하마가 방문객을 맞이하고 ‘악어지옥이라 부르는 동물보호구역에선 대략 80마리의 악어가 터를 잡고 살아간다. 고온의 온천수 열로 익힌 삶은 달걀과 푸딩이 지옥에서 맛보는 최고의 음식이다.

유후인 온천마을에서의 하룻밤

료칸에서의 하룻밤은 유후인에서 청한다. 벳푸에서 기차를 타고 서쪽으로 1시간 남짓 달리면 일본에서 두 번째로 많은 온천량을 자랑하는 유후인 온천마을에 닿는다. 유후인 온천마을은 작은 분지에 위치해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데, 초록빛 유후산을 배경으로 자리한 중심가는 방문객을 위한 카페와 식당, 기념품 숍이 마치 영화 세트장처럼 조성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도심을 벗어나면 곧장 논과 밭 풍경이 펼쳐지는 시골 특유의 분위기가 금세 벳푸의 기억을 지운다.
3 료칸에 자리한 노천온천탕
4 전통 료칸에서의 하룻밤

온천탕이 딸린 일본 전통 가옥은 사진에서 보는 것보다 실물이 훨씬 멋스럽다. 료칸 주인의 안내에 따라 세월이 켜켜이 쌓인 가옥 곳곳을 둘러보는 것만으로 이미 쉼을 얻는다. 유후인은 벳푸에 비하면 개발이나 발전이 덜 된 작은 온천마을이지만 중심가 인근에 자리한 많은 수의 전통 료칸이 방문객을 끌어 모으는 이유가 된다. 시골 특유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젖어 천천히 흐르는 이곳 시간에 몸을 맡기고 나면 온천탕에 몸을 담그기도 전에 후끈 달아오른 몸을 느낀다. 지친 마음의 보상까지도.
해리포터 테마를 녹여낸 유노츠보 거리

료칸에서의 비움을, 다음날 유후인 산책 코스로는 채움을 맞았다. 유후인역에서 킨린호수까지 1㎞ 남짓 조성된 유노츠보 거리를 걷는다. 이곳은 ‘해리포터 촬영지로 유명한 영국 코츠월드 지역의 거리를 재현한 테마거리다. 작고 좁은 동화 같은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좁다란 골목길에는 상점과 카페, 미술관, 공예점, 잡화점 등이 조성되어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일본 특유의 아기자기한 감성이 가득 들어찬 유노츠보 거리를 지나 그 끝자락에서 킨린호수를 만난다. 아침 안개로 유명한 그림 같은 호수를 오전시간이 다 지나고서야 맞닥뜨렸다. 아쉬워야 또 찾는다. 지금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또다시, 여행의 끝은 반드시 시작과 만난다.
1 유후인 중심가
2 아침 안개로 유명한 킨린호수


[글과 사진 추효정(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8호(23.2.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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