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Cover Story] 파리 패션 위크에서 직접 목격한 K-팝의 열기
입력 2023-02-23 16:45  | 수정 2023-02-24 11:07
콩코르드 광장에서 지민을 기다리는 팬들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 K-팝 스타를 탐내다
여기저기 K-팝이 난리다. 패션 산업 역시 예외는 아니다. 마침 1월 중순에 열린 파리 멘즈 패션 위크를 다녀왔다. 가보니 역시 대단했다. 뭐가? K-팝의 기세가.


K-팝의 세계화는 다양한 산업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이돌 멤버들을 각각의 산업이 광고 모델로 낙점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이 그 영향의 단면이다. 패션 산업, 특히 도도하기로 소문난 명품 브랜드(이들을 보통 ‘하우스 브랜드라 칭한다) 역시 그 치열한 전투에 나섰다. 과거부터 하우스 브랜드가 유명 K-팝 스타를 파리, 밀란에서 개최되는 컬렉션 런웨이에 초청하는 사례는 꽤 있었다. 샤넬에서 지드래곤을 초청하며 화제가 되었던 과거를 떠올리면 된다.

그때만 하더라도 한국 아이돌 그룹의 멤버가 브랜드의 광고 모델(최근에는 이를 ‘앰배서더라 표기하곤 한다)로 기용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세상이 변했다. BTS가 빌보드 핫 100 차트를 휩쓸고, 블랙핑크가 남성뿐만이 아닌 여성 팬덤을 견고히 하며 가파르게 인지도를 쌓아가면서부터 그 변화는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셀린 쇼 폭파시킨 뷔와 리사

해외 유수 브랜드들이 한국의 잘 나가는 아이돌 멤버를 자신들의 얼굴로 계약하고 기용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일단 1년에 총 4번(남성 봄/여름, 가을/겨울, 여성 봄/여름, 가을/겨울)의 패션위크를 성대하게 열고 있는 파리와 밀라노의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면 그 이유를 충분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물론 나 역시 그에 대해 반신반의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K-팝 스타가 패션쇼에 참석하는 현장에서 놀라운 광경을 목도하게 되었다. 그건 바로 2022년 6월, ‘파리 패션 위크 2023 S/S 중 하우스 브랜드 셀린의 컬렉션 현장이었다. 이전까지 한국 셀러브리티 한 명이 참석해도 국내에서는 화제가 되기 일쑤였지만, 해외의 그곳에서 반응은 그리 뜨겁지 않았던 것 역시 사실이다.
루이 비통 쇼가 열린 루브르 박물관11

하지만 그때는 정말 달랐다. 유명 디자이너 에디 슬리먼이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는 셀린의 남성 컬렉션 쇼에 블랙핑크의 리사(그녀는 셀린의 글로벌 앰배서더다), 배우 박보검(그는 최근 셀린의 글로벌 앰배서더로 계약했다) 그리고 BTS의 뷔(그 역시 그때는 아니었지만 지금은 앰배서더로 계약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성하다)에 참석했다. 심지어 이들을 위해 셀린에서 전용기를 준비했다는 소식도 있었다. 아무튼 K-팝 중 세계적으로 제일 잘 나가는 블랙핑크와 BTS의 멤버가 동시에 그곳을 방문한다는 소식 때문인지, 셀린 쇼가 열리는 파리의 팔레 드 도쿄 앞은 함성으로 가득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마침내 리사, 박보검, 뷔가 얼굴을 비치자, 시쳇말로 난리가 났다.

나 역시 모바일 카메라를 얼른 열고 그 현장을 영상과 사진으로 담았다. 그리고 SNS에 업로드했다. 와우. 현장도 난리였었는데 내 인스타그램도 폭발했다. 보잘것없는 매거진 종사자가 올린 그 하나의 피드에 무려 ‘좋아요가 13만여 개, 댓글이 1400여 개를 기록했다. 도달율은 무려 160만 명에 달했다. 이 말은 현장에 참석한 내가 직접 찍은 콘텐츠 하나를 160만 명에 달하는 인스타그램 이용자가 보았다는 거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무튼 당시 팔레 드 도쿄 앞은 콘서트 장을 방불케 했다. 경찰차는 물론 구급차도 미리 대기하고 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 당시 일주일 전쯤 먼저 열린 이탈리아 밀라노 패션 위크 중 프라다 패션쇼에는 NCT127의 재현이 앰배서더로 참석했다. 거기도 이와 유사한 현상이 있었다. 프라다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어차피 런웨이는 초대장을 받은 사람들만 입장할 수 있다) 재현을 보기 위해 팬들이 운집했던 것이다.
지방시 쇼장 전경

강렬한 K-팝 팬덤의 힘에 매혹된 패션 브랜드

하우스 브랜드가 이처럼 패션쇼에 K-팝 스타를 초청하고 쇼 자리에 앉히기 위해 애 쓰는 건 무엇 때문일까? 가장 먼저 한국에서 시작된 음악 산업의 위용을 각기 다른 산업 분야가 체험했기에 그렇다. 일반적으로 해외 패션 위크에 할리우드 스타 및 각국의 셀러브리티들이 초청되고 참석하는 건 일종의 관례였다. 아주 오래 전부터 샤넬 쇼에 초청된 누구, 루이 비통 런웨이에 초청된 누구 등으로 미디어들이 보도를 했고, 또 그것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브랜딩 소재였다. 일본과 아시아를 넘어선 글로벌 한류 붐은 그것을 단순한 마케팅 차원이 아닌 일종의 현상으로 전환시켰다. 작년 셀린 쇼 현장에 당신이 있어 보았다면 이게 언론 플레이가 아님을 명확히 깨달았을 것인데 아쉽다. K-팝 스타가 참석하는 하우스 브랜드의 패션쇼 장소 앞은 콘서트 장을 방불케 할 만큼 인파로 뒤덮인다. 그들이 등장하는 때면 인파의 함성은 우렁차게 그 주변을 휘감는다.

바로 이 지점이다. 아니 ‘이 맛이라고 표현해야 할 것 같다. 하우스 브랜드들은 언젠가부터 이 맛을 봐 버렸다. K-팝을 계급화하고 계층화했을 때 BTS와 블랙핑크는 최상위층에 포진된다. 그런 그룹의 뷔와 리사가 동시에 참석한 작년의 셀린 쇼는 리사와 뷔의 팬들이 수없이 모였고, 각자의 대상에게 뜨거운 환호를 보냈다. 두 명에게 보내는 찬사가 겹쳐지니 그건 정말 천둥과 같은 갈채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 하우스 브랜드 경영진은 이 맛을 알아버렸다. 수십 년의 패션 위크 역사 속에서 이 같은 맛은 미처 느껴보지 못한 희열을 전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그 어떤 할리우드 셀러브리티도 이끌어내지 못한 굉장한 팬덤의 강렬한 힘. 그게 전달하는 황홀한 맛 말이다.
취재진에 둘러싸인 지방시 쇼 태양

나는 올해도 파리 패션 위크를 다녀왔다. 정확히 2023년 1월17일부터 22일 사이에 개최된 ‘파리 멘즈 패션 위크 2023 F/W에 참석했다. 올해와 내년 초 사이 가을 겨울 옷을 미리 선보이는 자리다. 2022년 6월의 봄 여름 패션 위크는 ‘밀라노 프라다의 재현, ‘파리 셀린의 리사, 뷔로 귀결되는 K-팝의 뜨거운 맛이었다. 2023년 1월의 패션 위크는 K-팝 스타의 범주가 더욱 확장되었다. 아마도 하우스 브랜드의 코리아 지사장들에게 미션이 주어진 것만 같았다. 이번 패션 위크 쇼에 아이돌 그룹 멤버 누구라도 데려오시오!”라는, 본사로부터의 지령이 있었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다.

아이돌 그룹 세븐틴의 멤버 정한이 그 첫 테이프를 끊었다. 파리 패션 위크의 첫 번째 K-팝 스타가 된 셈이다. 디자이너 안토니오 바카렐로가 이끌고 있는 생로랑 쇼가 열리는 장소에 근접하자 함성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정한을 초청했고, 생로랑의 또 다른 아시아 지부에서는 NCT의 텐을 초청했다고 했다. 일단 두 명의 K-팝 스타가 참석하는 행사가 된 셈이다. 광장을 에워싼 많은 인파는 이 쇼에 참석하는 해외 셀러브리티에게 환호를 보내다, 세븐틴과 NCT의 멤버가 도착하자 함성을 내지르기 시작했다. 파리 패션 위크에 참석한 두 번째 스타는 빅뱅의 태양이었다. 그는 하우스 브랜드 지방시의 앰배서더가 되었고, 디자이너 매튜 M. 윌리엄스의 지방시 쇼에 참석했다. 그가 쇼 장 안에 들어서자 세계 각국의 기자들은 카메라를 챙겨 들고 그를 쫓느라 여념이 없었다.
(좌)디올 쇼에 착석한 BTS 지민 (우)에르메스 쇼를 찾은 BTS 제이홉

대부분의 브랜드 쇼 이끄는 K-팝 스타

누가 뭐래도 K-팝 스타의 (현재까지도) 아이콘은 BTS다. 올해 1월의 파리 패션 위크에는 BTS 멤버 2명이 참석했다. 그 포문을 연 건 루이 비통의 가을 겨울 컬렉션이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루이 비통은 루브르 박물관을 런웨이 장소로 정했다. 말 그대로 인산인해였다. BTS의 제이홉이 참석한다는 것 때문이었다. 제이홉을 보기 위해 아미를 비롯한 수많은 군중이 루브르 박물관 앞을 가로막았다. 초청장을 들고 입구까지 도착하는 데 한참 걸렸을 정도였으니까.

2023년 1월 파리 남성 패션 위크의 하이라이트는 디올이었다. 디자이너 킴 존스가 전개하는 디올 남성복 패션 쇼에는 최근 디올과 앰배서더 계약을 한 BTS 지민이 참석한다고 익히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디올은 콩코르드 광장에 거대한 구조물을 새롭게 설치했다. 파리에 거주하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패션 위크 1주일 전부터 그 구조물이 세워지고 있었다고 한다.
콩코르드 광장을 가득 메우고 지민을 기다리는 팬들

3시에 시작될 패션 쇼에 맞춰 나는 2시 즈음 콩코르드 광장 입구 앞에 도착했다.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인파가 이미 가드 라인 건너편으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디올 쇼에는 할리우드 스타 로버트 패틴슨, 영국 축구의 스타였던 데이비드 베컴을 비롯한 많은 셀러브리티가 참석했다. 하지만 광장을 가득 메운 팬덤은 단 한 사람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바로 지민이었다. 그를 태운 리무진이 입구에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환호가 터져 나왔다. 현장의 모든 카메라가 그에게 집중되었고, 쇼가 열릴 실내에서도 모든 사람이 그만을 쫓았다. 디올의 패션쇼도 멋졌지만 그 시작 전까지는 지민의 콘서트 장 같은 분위기였다. 아, 한 가지 더 추가하자면 디올 쇼에는 지민과 더불어 그의 동료 제이홉이 함께 참석했다. 어땠을지 충분히 가늠할 수 있지 않은가?

디올 쇼가 아니라 ‘BTS 지민이 오는 디올 쇼

올해는 K-팝 스타가 대부분의 브랜드 쇼를 이끈 주역들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위에서 언급한 인물들 이 외에도 디자이너 알레산드로 마티우시의 브랜드 아미 쇼에는 세븐틴의 호시가 참석했다. 또 JW 앤더슨이 이끄는 로에베 쇼에는 SF9의 멤버이자 배우로도 활동 중인 로운이 자리를 빛냈다. 패션 위크에 처음이었던 BTS의 제이홉은 루이 비통, 디올뿐만 아니라 럭셔리 브랜드 에르메스의 컬렉션에도 참석하여 화제 몰이를 이어나갔다.
(좌로부터)아미 쇼장에서의 세븐틴 호시, 아미리 쇼에서의 래퍼 재미나이, 로에베 쇼의 SF9 로운

꼭 아이돌 그룹 멤버가 아니어도 미국 출신의 디자이너 마이크 아미리의 브랜드 아미리 쇼에는 래퍼 재미나이가 등장했고, 일본 출신 디자이너 니고가 이끄는 겐조 쇼에는 래퍼 식케이가 자리하기도 했다. 정말 이번 파리 멘즈 패션위크 23 FW는 한국 아티스트들로 가득 채워진 축제로 보일 법했다. 내가 참석하지 않은 행사였지만 파리보다 며칠 전 먼저 개최된 밀라노 패션 위크에는 프라다와 함께 아이돌 그룹 엔하이픈이 등장했다. 대략 7000여 명의 팬이 운집했다고 했다. 이 놀라운 소식은 이탈리아 뉴스 프로그램에 보도까지 됐다고 했다.

한국에 거주하는 사람으로서 이 같은 현상이 참 신기하기도 하고 새롭다. 정말 그들이 해외에서 인기가 많아?” 이런 질문을 내게 던지는 이들이 있다. 직접 가봐야 한다. 진짜 인기가 많다. 그렇다면 내가 던질 질문은 이것이다. ‘그럼 과연 K-팝 스타들이 패션 산업에서 실질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가?라는 것. 최근 나는 루이 비통, 불가리, 디올 등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패션 기업 LVMH 산하의 모 브랜드 PR 디렉터와 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그때도 이 같은 주제가 대화의 중심이었다. 영향력에 앞서 많은 하우스 브랜드들이 K-팝 스타 모시기에 혈안이 되어 있는 듯하다,라는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그 업무들로 인해 시쳇말로 ‘죽겠다고 했다.

그 이유는 명확했다. 세계적으로 K-콘텐츠가 열망과 욕망의 스타덤에 올라 있지만, 그중에서도 상업적 힘을 가진 아티스트는 손에 꼽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몇 안 되는 셀러브리티를 낚아채기 위해서는 대단한 정보력, 브랜드 파워, 자금이 필요하다. 동시에 그는 아시아 시장에서 K-팝 아티스트는 분명한 영향력을 가진다”고 했다. 만일 블랙핑크의 멤버 중 하나를 앰배서더로 하면 진짜로 제품들이 팔리나? 이런 질문도 던졌다. 중국을 위시한 아시아 시장에서 그들의 힘은 예상보다 훨씬 강력하다고 했다. 그건 제품이 잘 팔린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디올 쇼에 도착한 앰배서더 지민

그렇다면 당분간 K-팝 스타를 둘러싼 해외 하우스 브랜드들의 각축전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국 지사장들은 꽤나 힘들 거다. 한국 시장에서 매출이 잘 나와서 좋겠지만, 역으로 타 브랜드에 뒤지지 않기 위해 좋은 아티스트와 계약을 성사시키는 것 또한 스트레스일 테니까. 이번 파리 멘즈 패션 위크에 다녀오면서 이를 더 실감하게 됐다. 어떤 브랜드는 BTS를 데려왔는데, 또 어떤 브랜드는 아예 한 명도 초청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글로벌 본사에서 날아오는 당근과 채찍은 분명할 것이다.

또한 이들을 초청함으로써 브랜드들은 패션 쇼에 대한 관심을 집중시킬 수 있는 이득도 챙겼다. 그냥 디올 쇼가 아니라 ‘BTS 지민이 오는 디올 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품 디자인을 선보이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당분간 패션 쇼의 흥행을 위한 치열한 각축전은 꽤나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정말 요지경 같은 세상이고, 오래 살고 볼 일이다. 전 세계가 패션 산업에서 한국 아티스트를 탐내다니 말이다.

[글과 사진 이주영(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8호(23.2.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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