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휘발유 들고 지하철로…20년 전 비극 '대구지하철 참사'
입력 2023-02-18 13:46  | 수정 2023-02-18 13:59
참사 당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상하행선 열차가 모두 불에 타 있는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2003년 2월 18일 대구지하철 1호선 중앙로역 화재
가연성 소재·기관사 실수가 참사 규모 키워
방화범 김대한 "혼자 죽기 억울해서 분신자살 기도"
전국 참사 피해 가족들 "제2의 2·18 막아야"

오늘은 343명의 사상자를 낸 대구지하철 참사가 발생한 지 20년이 되는 날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고는 한 남성에 의해 시작됐습니다.

끔찍했던 그날의 기억

2003년 2월 18일 오전 9시 30분 경. 지적장애 2급 판정을 받고 우울증으로 자신의 삶을 비관하던 김대한(당시 56세)은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역에서 1079열차 지하철에 올라탑니다.

당시 그의 손에는 근처 주유소에서 구입한 휘발유가 들려 있던 상태. 그 때는 위험 물질을 열차에 소지하고 탑승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이 없었기 때문에 김대한은 아무런 제지 없이 열차에 탑승할 수 있었습니다.


오전 9시 52분, 1079 열차는 중구 중앙대로에 있는 중앙로역에 진입합니다. 라이터를 만지작거리던 김대한은 열차가 정차하는 순간 들고 있던 휘발유 통을 바닥에 던지고 불을 붙였습니다.

불은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당시 열차 내부는 전부 불이 잘 옮겨 붙는 가연성 소재였기 때문에 불이 번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1079열차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됩니다.
참사 당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 폐쇄회로(CC)TV 화면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참사 규모 키운 미숙한 대처

참사 당일 대구지하철 중앙로역에서 검은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화재가 시작됐을 때 다행히 열차는 정차 중이어서 많은 승객들이 열려있는 문을 통해 대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미숙한 대처가 참사 규모를 키웠습니다.

열차에 불이 나면 기관사는 신속하게 진화 작업과 구조 활동을 진행하기 전에 곧바로 사령실에 화재 발생 유무를 보고해야 합니다. 후속 열차가 역 내로 진입하는 것을 막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관사는 불을 끄려고 노력했지만, 사령실에 상황을 알리지 않았고, 결국 대구역에서 출발한 1080열차는 이러한 상황을 전혀 모른 채 맞은편 중앙로역 선로로 들어왔습니다.

열차가 역 내로 진입할 때 분 바람으로 불길은 더욱 거세졌고, 불은 1080호 열차로 확산했습니다.

여기서 1080호 기관사의 잘못된 선택이 사고를 더 키웠습니다.

승객들이 다 대피했을 거라고 생각한 기관사가 열차 내부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전동차의 마스콘키(Master Control Key)를 뽑고 도망친 겁니다.

전동차는 마스콘키를 뽑으면 열차 내 전기 공급이 중단되고, 출입문이 모두 닫히게 됩니다. 결국 열차 내부에 있던 많은 승객들이 유독가스와 열기로 고통을 받으며 숨졌습니다.

해당 기관사는 금고 3년의 유죄 판결을 받는 데 그쳤습니다.

일반 승객 행세한 방화범 김대한

대구지하철참사 방화범 김대한이 경북대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받던 중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아이러니하게도 이 모든 참극의 원인 김대한은 불이 열차 내로 번지자 곧바로 대피했습니다.

심지어는 일반 승객 행세를 하며 병원으로 이송되기도 했는데, 다른 승객의 신고로 붙잡혔습니다.

당시 김대한은 "혼자 죽는 게 억울해서 사람이 많은 대중교통에서 분실 자살을 기도하게 됐다"고 진술했습니다.

김대한은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복역하다 2004년 8월 31일 뇌졸중 후유증으로 사망했습니다.

참사 이후 무엇이 달라졌을까

2004년 대구지하철 2호선 전동차가 시범 운행 중이다. 내장재가 불연성 소재로 제작됐다. / 사진 = 연합뉴스

참사 이후 10년동안 대구시와 당시 대구도시철도공사(現 대구교통공사)는 501억 원을 투입해 전동차 안전시설 등을 개선하고 1호선 전력관제시스템을 교체했습니다.

가연성 소재가 참사 규모를 키웠다는 지적에 전동차 내장재와 전동차 통로 연결막을 불연성 재료로 교체했습니다.

화재 대피용 방독면을 역마다 100~250개씩 배치했고, 전동차 내 화재감지기도 816개를 설치했습니다.

소방안전설비 개선 사항으로는 30개 역에 역사 수계소화설비와 상수도 직접 연결배관을 설치했고, 화재 등 비상대비, 터널 물 세척 강화를 위한 터널 내 연결송수관도 28㎞로 조성했습니다.

이외에도 기관사, 관제사, 외부기관과의 무선통신이 가능한 열차 무선통신시스템 구축 등 개선 작업을 벌였습니다.

여전히 고통받고 있는 생존자들

참사 당일 구조되고 있는 시민. / 사진 = 연합뉴스

대구시는 지난해 5월부터 10월 말까지 대구 지하철 참사 부상자에 대한 실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부상자 130명 중 56명이 답해 43%의 응답률을 보였는데, 응답자 중 26명이 현재 건강 상태가 매우 나쁘다고 대답했습니다.

현재 앓고 있는 질환을 묻는 질문(복수 응답)에는 호흡기 질환을 앓고 있다고 대답한 부상자가 33명으로 가장 많았고, 호흡기 질환 외에도 위장, 혈압, 관절염 등 다양한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육체적 질환뿐만 아니라 불안 장애(34명),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33명), 우울증, 불면증 등 정신 질환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부상자들은 경제적으로 어려워 의료비 등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도 조사됐습니다.

부상자들의 의료비는 '대구시 지하철화재사고부상자 의료지원 등을 위한 조례'에 따라 시행일인 지난 2019년부터 지원 중입니다.

의료비 지원은 올해 종료를 앞두고 있으며 대구시는 연장 여부를 검토할 예정입니다.

대구에 모인 전국 참사 피해 가족들

화재 사고 현장인 중앙로역에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문구가 적힌 안내판이 세워져 있다. / 사진 = 연합뉴스

전국재난참사피해가족연대(가칭)가 대구지하철참사 20주기를 하루 앞둔 17일 대구에 모여 재난 참사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제대로 된 사회적 애도를 촉구했습니다.

전국재난참사피해가족연대는 대구지하철참사, 세월호참사, 삼풍백화점참사, 인현동화재참사, 가습기살균제사건, 씨랜드참사 등 피해자 유족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이들은 대구지하철참사 현장인 중앙로역 추모의벽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가 발생한 지 20년이 됐지만 사고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이 되지 않고 있다"며 "'대구지하철참사', '2·18'이라는 명칭도 추모공간과 추모탑, 공식행사명에 사용하지 못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이어 "우리는 대구지하철참사를 지워내는 추모사업이 아니라 참사를 우리 삶 곁에 두고 꺼내 볼 수 있길 바란다"면서 "대구지하철참사 이후 불연재 소재를 사용한 지하철로 바뀌었듯이 재난 참사 이후 밝혀진 진실이 사회 제도와 정책 변화로 이어져 안전한 사회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습니다.

기자회견을 마친 피해자 유가족들은 인근에 있는 대구YMCA 백심홀로 옮겨 재난참사 피해자 전국모임을 가졌습니다.

[최유나 디지털뉴스 기자 chldbskcjstk@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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