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일본식 이름'이라고 몰수당한 땅…55년 만에 되찾아 [법원 앞 카페]
입력 2023-02-12 09:00 
해방 직후 조선총독부 앞에 걸린 깃발이 일장기에서 성조기로 바뀌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해방 1년 전 일제강점기였던 1944년 2월, 당시 조선인이었던 A 씨는 경기 화성군(현재 경기 화성시) 땅 250평(826제곱미터) 가량을 사들였습니다. 다만 소유권이 바뀌었음을 표시하는 소유권이전등기는 1년 반 정도 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27일에 했습니다.

그리고 7년이 지난 1952년 A 씨는 숨졌습니다. 해당 땅은 장자였던 B 씨가 상속받게 됩니다.

세월이 흐른 뒤 1960년대가 되자 당시 박정희 정부는 화성 일대 땅에 대한 토지 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인구가 늘고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될 무렵이었죠. 그러던 중 정부는 아들 B 씨가 소유하고 있던 땅을 발견했습니다. 훗날 동탄신도시가 들어서게 되는 곳과 가까운 곳이기도 했죠.

조사 끝에 1968년 정부는 이 땅을 국가 소유로 몰수했습니다. B 씨는 갑자기 멀쩡한 땅을 뺏긴 겁니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요?

일본인 땅이라 몰수?


정부가 땅을 몰수한 근거는 당시로부터 20년도 넘은 '재조선미국육군사령부군정청법령' 즉 미군정법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38도선 이남을 통치한 미군정은 2차세계대전 패전국인 일본과 독일 등 국가들, 그리고 해당국가의 국민이 조선 지역에서 소유하고 있던 재산을 몰수하는 법령을 만들었습니다.

미군정법

제2호 1조
1945년 8월 8일 이후 일본, 독일, 이탈리아, 불가리아, 라마니아, 헝가리, 태국 등 제국 정부나 국민 등이 소유한 금, 은, 통화, 증권, 예금, 기타재산의 매매, 취득, 처분 등을 금지한다.

제33호 2조
1945년 8월 9일 이후 일본정부나 국민 등이 소유한 금, 은, 통화, 증권, 기타 모든 종류의 재산에 대한 소유권은 조선군정청(미군정청)이 가진다.

법령에서 언급한 대로 몰수 기준은 해방 엿새 전인 8월 9일이었습니다.

앞서 언급한 대로 아버지 A 씨가 사들인 땅에 등기를 한 건 8월 27일이었기 때문에 8월 9일 시점에 땅주인은 아직 땅을 판 사람으로 기록돼 있었습니다. 문제가 된 건 땅을 판 땅주인 이름이 OOOO 이었는데 이게 일본식 이름이었다는 점입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사진=대통령기록관)

다시 1968년으로 돌아와 당시의 정부는 이 땅의 소유권을 추적해보니 1945년 8월 9일 기준 소유권자는 OOOO이었고 ▶이 사람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미군정법을 적용해 미군정 소유이고 ▶이는 미군정을 이어받은 대한민국 정부가 곧 소유권을 갖는다고 판단해 ▶땅을 몰수한 겁니다.

뒤늦게 알게 된 후손들

국가가 땅을 몰수할 당시 아들 B씨는 해당 사실을 몰랐다고 합니다. 민법과 소유권등기 등에 대한 개념이 약한 시절이었고, 또 땅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 조각조각 나있었기 때문에 확인이 쉽지 않았다는 거죠.

이후 아들 B 씨도 1981년 숨졌고, 다시 세월이 흘러 지난 2021년, 땅을 산 A 씨의 손자이자 B 씨의 자녀들, 그리고 A 씨의 증손이자 B 씨의 손주들 등 후손들이 뒤늦게 재산 정리를 하던 중에야 해당 땅을 국가가 몰수해간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들은 국가가 부당하게 땅을 뺏어갔다며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OOOO은 일본인일까?

재판의 쟁점은 OOOO이 일본인이 맞느냐는 것이었습니다. A 씨가 땅을 살 당시인 1944년은 이미 조선인 대부분이 일본식 이름을 쓰는 '창씨개명'을 한 시점이기 때문입니다. 1939년 조선총독부의 창씨개명 명령이 시작된 뒤 불과 2년 만인 1941년 이미 조선인의 81.5%가 창씨개명을 했다는 통계가 있을 정도였죠.

이 때문에 후손들은 OOOO이 창씨개명한 조선인일 가능성이 크다며 일본인 땅이라 단정하고 몰수한 건 위법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마침 대법원에서도 후손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판결을 내린 상황이었습니다.

해방 직전 부동산의 소유권을 취득한 사람의 명의가 일본식 씨명이라 하더라도 해방전후의 창씨개명과 그 복구에 관한 실정에 비추어 그 명의자를 곧 일본인으로 추정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창씨개명을 한 한국인으로 추정을 하는 것이 옳다.
- 2019. 9. 9. 대법원 선고

대법원은 창씨개명 명령 이전에도 일본식 이름을 썼다거나 하는 추가 증거가 없다면 일본식 이름을 쓰더라도 일본인이 아닌 조선인으로 추정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사건에서 OOOO씨와 관련한 흔적이라고는 OOOO씨가 1940년에 땅을 샀고 소유권이전등기를 한 시점이 1942년이라는 것 뿐이었습니다. 땅을 몰수한 정부 측도 OOOO씨가 일본인이라고 볼 수 있는 증거를 추가로 제시하지 못했죠.

서울중앙지법 (사진=연합뉴스)

결국 1심 재판부인 서울중앙지법 민사24단독 이문세 부장판사는 지난 7일 정부가 후손들에게 땅 소유권을 돌려주라고 선고했습니다. 대법원 판례에 따라 OOOO씨를 일본인이라고 볼 수 없다는 판단을 내린 거죠.

따라서 이른바 창씨개명에 관한 조선민사령 부칙 제2항이 시행된 이후인 1942년 8월 4일 이 사건 땅에 소유권이전등기를 마친 OOOO은 창씨개명을 한 한국인으로 추정되고, 달리 OOOO이 일본인이라고 볼 증거나 사정은 없다
- 지난 7일 1심 선고


정작 이승만 정부는 소유권 인정했다?

재판 과정에서는 황당한 일이 추가로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박정희 정부가 땅을 몰수하기 11년 전인 1957년 이승만 정부 당시 농지개혁법에 따라 아들 B 씨에게 '지가증권'을 발급해 줬었다는 겁니다. 당시 이승만 정부는 농지를 농민들에게 유상분배하기 위해 지주들로부터 땅을 매입하는 대가로 현금 대신 지가증권을 발급했었는데 B 씨도 이를 받았다는 거죠. 다만, 이후 실제 농지 배분 절차는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농지개혁 당시 이승만 정부가 발급한 지가증권 (사진=이승만기념관)

어쨌든 당시 정부는 B 씨를 땅소유자로 봤기 때문에 이런 절차를 진행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50년 대 후반 이승만 정부 때는 B 씨 땅이 맞다며 농지개혁 절차를 진행하더니 11년이 지난 1960년대 박정희 정부 들어서는 갑자기 1940년대의 미군정법을 근거로 일본인 땅이라고 몰수하는 모순이 벌어졌던 거죠.

20년 동안 차지하면 국가 소유?

그러자 정부는 다른 논리를 꺼내들었습니다. 이른바 '점유취득시효'라는 민법 조항이었는데요.

민법 245조 (점유로 인한 부동산소유권의 취득기간)
①2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부동산을 점유하는 자는 등기함으로써 그 소유권을 취득한다.
②부동산의 소유자로 등기한 자가 10년간 소유의 의사로 평온, 공연하게 선의이며 과실없이 그 부동산을 점유한 때에는 소유권을 취득한다.

쉽게 말해 과실없이 평화롭게 부동산을 점유한 지 10년이 지나면 소유권을 인정하고 (②등기부취득시효), 설령 잘못된 방법으로 썼더라도 20년간 실질적으로 부동산을 점유하고 있었으면 소유권을 법적으로 인정한다는 겁니다.(①점유취득시효)

이를 근거로 정부는 재판 과정에서 '평온하게 10년 넘게 해당 땅을 점유했고', '설령 일본인으로 잘못알고 몰수했더라도 20년 동안 점유했으니' 국가 소유가 맞다고 주장했습니다.

하지만, 법원은 등기부취득시효 즉 10년 무과실 점유에 대해서는 일본인으로 착각하고 몰수한 과실이 있는 만큼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과실이 있어도 20년 간 점유하면 인정되는 점유취득시효 역시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정부가 실질적으로 해당 땅을 관리했다고 볼 만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후손들을 대리한 전세경 변호사는 "이 땅이 도로인지 산인지 공장용지인지 정부 기록마다 다르고 국가에서 관리를 했다면 1년에 한번씩 나가서 조사를 했다든지 이런 기록이 있어야 한다"며 "정부가 대충 관리대장에 기입만 해놨지 점유라고 볼 만한 관리를 한 흔적이 거의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현실은 땅 못찾는 사람 많아

사실 A 씨의 후손들은 운이 좋은 편이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조상 땅 찾기 사건들을 전문으로 하는 전 변호사는 A 씨처럼 억울하게 땅을 몰수당한 사람들이 많이 있지만 못 찾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습니다. 재판부에 따라 판단이 점유취득시효에 대한 판단이 달라지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A 씨 후손 사건의 경우에도 정부가 땅을 '약간' 관리한 흔적은 있었습니다. 이번 재판부는 '이 정도는 점유했다고 볼 수 없다'라는 판단을 했죠. 반면 어떤 재판부는 이와 비슷한 상황을 점유의 근거로 충분히 인정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전 변호사는 "창씨개명 문제가 해결돼도 결국 취득시효 부분이 일도양단으로 딱 떨이지지 않기 때문에 재판부에 따라 '케이스 바이 케이스' 결론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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