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곽상도가 돈 달래"…김만배 육성 녹음파일 증거 인정 안 돼
입력 2023-02-09 20:23  | 수정 2023-02-09 21:21
곽상도 전 국회의원 / 사진=연합뉴스

곽상도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김만배 화천대유 대주주에게 돈을 요구한 정황이 담긴 이른바 '정영학 녹취록' 내용을 재판부가 뇌물 혐의 입증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습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이준철 부장판사)는 판결문에서 김 씨의 진술은 다른 사람의 입을 통해 전달된 '전문(轉聞)진술'에 해당하고, 증거가 되기 위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증거능력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이 제출한 증거에 효력이 있는지 판단하고 근거를 설명하는 데 약 40쪽을 할애했습니다.

지난 2020년 4월 4일 녹음된 파일에는 김 씨가 정영학 회계사에게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돈을 달라고 했고 며칠 전에도 2천만 원을 언급했다는 대화 내용 등이 담겼습니다.


재판부는 이 녹음파일이 '김 씨가 정 씨에게 이렇게 말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만 효력이 있을 뿐, '김 씨가 곽 전 의원에게 돈을 주기로 약속했다'거나 '곽 전 의원이 아들을 통해 돈을 요구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로 쓰일 순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김 씨가 정 씨에게 전달한 곽병채씨와의 대화 내용이 형사소송법상 원칙적으로 증거로 인정하지 않는 전문진술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형사소송법은 전문진술을 증거로 인정하려면 원진술자가 사망·질병·외국거주·소재불명 또는 이에 준하는 사유로 진술할 수 없고, 전문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 증명돼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재판부는 "김만배의 (녹음 속) 진술은 피고인이 아닌 곽병채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진술로 전문진술"이라며 "그런데 곽병채는 공판에 출석해 증언했으므로 전문진술을 증거로 인정할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지적했습니다.

다만 재판부는 2019년 12월부터 2021년 1월까지 정 씨의 녹음파일 가운데 전문증거가 아닌 원진술에 해당하는 내용은 대부분 증거능력을 인정했습니다.

종합하면 녹음파일 속 대화 당사자가 자신의 이야기를 한 '원진술' 부분은 증거로서 효력이 있으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전한 '전문진술' 부분은 증거가 되지 않는다는 취지입니다.

이런 재판부의 판단은 향후 대장동 사건의 본류인 배임 혐의 재판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입니다.

[길기범 기자 road@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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