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잠 깨우더니 "군화 자국 다 닦아라"…극단선택 전, 가혹행위 호소한 공군일병
입력 2023-02-09 10:40  | 수정 2023-02-09 10:52
'군인'/사진=연합뉴스 *사진은 기사와 직접적 연관이 없습니다.
부친에 "여긴 80년대 부대, 사람들 다 쓰레기" 호소
지난달, 코로나19 '예비 격리'라며 5일간 가둬
"누나"…'삭제된 메시지입니다.'

지난 6일, 극단적 선택으로 생을 마감한 대구 공군 방공관제사령부 소속 A(21) 일병은 누나에게 무언가 털어놓으려 했는지 메시지를 적었다 지웠습니다.


A 일병 가족들은 어제(8일) 대구 동구 한 장례식장에서 연합뉴스에 숨진 A 일병에게 들은 말을 속속 털어놨습니다.

A 일병은 휴가 복귀 하루 전날, "엄마 나 너무 들어가기 싫다. 나 내일 안 들어가면 영창이겠지"라고 말했습니다.

가족들에 따르면 그는 자대 배치를 받은 뒤 가혹행위에 시달렸습니다. A 일병이 취침을 하려 하면 강제로 깨워 다목적홀로 추정되는 특정 장소를 끊임없이 청소하게 했습니다.

A일병 누나는 "신병 위로 휴가를 받고 나오자마자 '자대배치 받은 뒤로 한숨도 못 잤다'고 했다"며 "자는데 일부러 깨워서 (다목적홀에 있는 동생의) 군화 발자국이 지워질 때까지 잠을 재우지 않고 계속 청소를 시켰다고 말했다"고 전했습니다.


A 일병은 이 사실을 모친과 외조모 등에도 털어놨습니다.

그는 "선임들이 후임을 많이 괴롭히는데, 자신이 상병 정도 계급이 됐을 때 후임을 똑같이 괴롭히지는 못할 것 같고, 그러면 또 선임이 괴롭힐까 봐 걱정했다"라며 "이런 군 생활을 버티지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숨진 A 일병과 친구의 문자 메시지/사진=A 일병 유족 제공

앞서 A 일병은 훈련소에서 150명 중 7등으로 수료를 하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밝게 전했습니다. 또 고향인 대구에서 근무하고자 병과를 선택해 지원할 정도로 군 생활에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달 18일 자대 배치 후, A 일병의 모습은 달라졌다고 가족들은 강조했습니다.

A 일병 누나는 "분명 훈련소까지는 군대에 적응하지 못한 애가 아니다"라며 "자대 배치를 받자마자 친구들이나 훈련소 동기들 전화를 받지 않고, 연락이 끊겼다고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부친에게 전화해 가혹행위를 털어놓기도 했습니다.

A 일병 부친은 "지난달 27일 밤 9시 넘어서 부대에 있는 아들과 40분 정도 통화를 했는데 '여기는 80년대 부대'라고 호소했다"며 "'사람들이 다 쓰레기'라고 했는데 그때 대수롭지 않게 들은 걸 후회하고 있다"고 호소했습니다.

A 일병과 누나의 카톡 대화/사진=A 일병 유족 제공

부친과 전화를 끊은 A 일병은 누나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대화를 삭제하는 등 무언가 전할 말이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A 일병이 누나와 나눈 카톡을 보면, 그는 자대 배치 후 코로나19 감염 '예방 격리' 라며 5일간 혼자 남겨졌습니다. 코로나19 실내 마스크 의 해제가 논의되던 지난달의 일입니다.

A 일병 가족은 "창문 없이 먼지가 자욱한 공간에 5일간 격리됐다"며 "장난처럼 '격리하다가 오히려 병 걸리겠다'고 전화 통화를 했다"고 설명했습니다.

A 일병 가족은 격리 공간에 선임병들이 수시로 찾아왔다고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공군 측은 접촉이 '전혀' 없었다는 입장입니다.

군은 A 일병 사망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경찰과 합동으로 휴대전화 2대, 태블릿 PC 1대를 포렌식하고 있습니다.

A 일병 장례식장에 놓인 추모 화환/사진=연합뉴스

A 일병 부대 관계자들에 대한 수사 착수 여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A 일병은 신병 위로 휴가 복귀일인 지난 6일 가족에게 "부대원들이 괴롭혀서 힘들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선 뒤 연락이 두절됐습니다. A 일병은 이튿날 오전 8시 48분께 대구 중구 한 아파트 중앙 현관 지붕에서 숨진 채 경비원에게 발견됐습니다.

[임다원 디지털뉴스부 인턴기자 djfkdnjs@gmail.com]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