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Cover Story] 2023년 소비자 트렌드는?
입력 2023-01-06 17:07 

세계 경제 지표, 미국을 보다
미국은 인구로는 세계 3위 국가다. 하지만 경제적으로는 제일 선두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들의 결정에 따라 세계 각국의 경제 지표가 크게 흔들리기 때문이다. 그런 나라의 소비자 동향을 파악하면 한국의 2023년 소비 트렌드 흐름도 보이지 않을까?

글 이주영(라이프스타일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소비의 축 MZ세대, 불안한 심리의 소유층

포스트 팬데믹 시대가 도래했음은 틀림없다. 2022년을 흘려보내는 송년회 자리들이 꽤 열렸던 걸 복기해 보면 그렇다. 연말 모임에서 오가는 말들은 한 해를 정리하는 것보다는 내년에 대한 것들이 많다. 사실 2022년까지 고가의 패션 및 주얼리(워치) 브랜드들은 때 아닌 호황을 누렸다. 특히 한국에서는 더 그랬다고들 한다. 팬데믹이 가로막은 해외 여행에 대한 반대급부로 일종의 명품 소비가 급증했으니 말이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며 여러 갈래의 길들이 봉쇄되기 시작하면서 처음엔 로컬 (패션) 산업은 꽤나 고전하는 모양새였다. 일단 거리 두기가 강화되면서 백화점 등을 위시한 군중이 운집할 수 있는 공간이 폐쇄되었거나, 자발적으로 발걸음을 멈췄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에도 보복 소비라는 명분 하에 명품들은 제품이 없어서 못 파는 기현상을 만들어내며 사상 최대의 성장세를 기록해왔다.

그랬던 명품 브랜드들도 2023년을 장밋빛으로만 그려내지는 않는 것처럼 보인다. 필자를 위시한 패션 산업 관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이에 대한 논제가 발의되었을 때 각 브랜드 담당자들은 보합 혹은 감소를 조심스레 예측하고 있었다. 일단 전 세계적 경기 침체와 불황에 대한 염려가 그 우려의 단초다. 동시에 막혔던 하늘길이 동시다발적으로 뚫리면서 해외 여행객 수가 급증하고 있다. 이 말인 즉, 명품 가방, 시계, 주얼리에 소비할 돈을 틀어막고, 그간 다녀오지 못한 해외 여행에 지갑을 열고 있음을 의미한다. 급기야 미국발 금리 인상에 보폭을 함께 하고 있는 국내 금리 인상률과 달러 강세 현상이 동시에 펼쳐지면서 내년의 불경기를 미리 짐작하고 대응하려는 이들도 늘었다. 경기가 좋을 때야 소비도 하고 여행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하거나 둘 모두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과 마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상 2023년의 우리네 소비 트렌드를 짐작하는 데 미국의 그것을 한 번쯤 살펴볼 필요는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전 세계의 경제 상황은 미국 중앙은행 기준 금리로부터 강력한 영향을 받기에 더욱 그렇다. 이 연준 금리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개인의 대출 금리가 가파르게 움직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필자만 하더라도 이를 절실히 체감하고 있다. 최근 필자는 자동차 한 대를 구매했다. 예전 같으면 연 3~5% 선의 대출 이자쯤은 쉽게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은행에서 돈 빌리는 것에 그리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상황이 달라졌다. 자동차 구매를 위해 대출 금리를 계산하는 순간 깜짝 놀랐다. 연 6.5%가 최저 금리였다. 많게는 9~10%대에 달하는 금리를 감수해야만 한다고 했다. 충동구매도, 과소비도 아닌 계획된 소비 행위였다. 가족과 함께 사용하는 자동차가 낙후되어 새롭게 바꾸려는 심산이었으니 말이다. 아무튼 소비는 했지만 고금리에 허덕이는 현실이다.

필자만 그럴까? 아니다. 대부분의 소비자가 이에 해당할 것이다. 물론 고가 제품군의 주요 소비자는 조금 차원이 다르긴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명품 브랜드 마케팅 PR 담당자들이 2023년을 그리 낙관적으로 보지 않는 이유는 명백하다. 애초 VIP 고객들의 씀씀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의 소비자는 어떨까. 일례로 명품 중에서도 조금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는, 일종의 엔트리 제품(가방, 운동화, 입문용 시계 등)이 일으키는 매출을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이쪽은 주로 MZ세대가 소비의 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앞서 말한 필자와 같은 소비 불안 심리의 소유자들이다. 하위 제품군에 대한 소비가 줄어들면 많은 브랜드가 그만큼 매출이 빠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아무튼 내년 소비자의 심리를 파악해 나가다 보니 점차 중국과 더불어 가장 큰 시장이라 불리는 미국의 소비 트렌드가 궁금해졌다.

삶의 단순화–스트레스 해소↑-사회 이슈 관심↓

이런 찰나에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가 발표한 해외 시장 뉴스 중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2023년 미국의 소비 및 산업 트렌드는?이라는 제목으로 소개된 트렌드 뉴스였다. 일단 미국은 2022년 상반기 기준 인구 약 3억3000만 명으로 중국과 인도에 이은 세 번째 인구 분포를 지니고 있다. 이 말은 미국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대함을 의미한다. 일단 미국의 2022년에 대해 보고서는 다음과 같이 밝혔다.
코로나19 사태로 전 세계가 봉쇄와 더불어 이에 따른 사회 및 각종 산업 전반에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많은 수의 근로자들은 업무의 시작을 출근으로 하지 않고 자택에서 컴퓨터를 켜는 것으로 하게 되었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되었다. 이를 계기로 매일 출퇴근을 하며 쳇바퀴처럼 살아가던 본인들의 삶과 삶의 가치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었고, 이러한 변화가 사람들의 행동 및 인생 목표 또한 바꾸었다.” 동시에 보고서는 2022년 시작된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가 야기한 국제 원자재 및 연료 가격 상승 등도 글로벌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평소 외부 시장 변화에 둔감했던 미국 시장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이라고 전했다. 이 탓에 현재 미국 소비자들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기 불황에 대한 우려가 만연해 있다는 게 트렌드 뉴스의 주요 내용이었다.

소비자 분석을 주로 하는 소비 관련 연구 기업 GWI의 ‘2023 미국 소비자 트렌드 보고서에서는 2023년 미국 소비자들의 큰 특징을 몇 개로 범주화한다. 첫 번째로 삶의 단순화, 두 번째로 영상 및 음악 등의 멀티미디어를 사용한 스트레스 해소 증가, 마지막으로 사회적 문제, 즉 평등, 기후 재앙 등에 대한 관심 감소”다. 이를 한 가지씩 살펴보면 한국 소비자 트렌드 예측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먼저 삶의 단순화는 미국뿐만 아니라 우리도 함께 겪어낸 팬데믹에 의한 삶의 가치 변화에 따른 것이다. GWI에 의하면 어려운 시기일수록 소비자들은 단순한 삶을 선호하게 되고 따라서 미국 소비자들은 2023년에 럭셔리 명품 브랜드를 덜 찾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예측한다. 실제로도 미국의 경우 2021년 2월부터 명품 브랜드 선호가 일정 부분 줄어든 것으로 조사되었다. 라이프스타일의 단순화는 활동적이기보다는 칩거 또는 고독의 상태가 된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나 홀로 가만히 있을 때 뭘 할까? 그 답은 바로 두 번째 예측에 있다.

긴 불황에 이어진 단순화된 삶의 방식은 홀로 영상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등 멀티미디어를 통한 스트레스 해소로 연결된다. 미국 한 기관의 설문 조사 기관은 ‘2022년 미국인들은 뉴스를 기피하는 성향이 크게 늘었고 멀티미디어 콘텐츠 선호도가 더 늘고 있다고 전했다. 선호도 상승의 큰 요인으로는 ‘복잡한 현실 세계를 잠시나마 잊고자 함이 가장 큰 이유였다. 우리도 그렇지 않던가? 팬데믹 기간에 필자가 가장 많이 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반추해 보았다. 역시 음악과 영상 감상이었다. 이는 한국 K-콘텐츠의 글로벌 영향력 강화와도 꽤나 관련 있어 보인다. 팬데믹 동안 OTT 플랫폼이 삶의 동반자였던 소비자들이 많았을 테다. 그랬으니 넷플릭스 같은 OTT 플랫폼 순위에 대부분 한국 콘텐츠들이 랭크되었음에 틀림없다.

삶의 단순화는 지출의 감소를 의미한다. 외부에서 소비하는 금액을 줄이고, 영상 또는 음악 플랫폼을 최소의 비용으로 구독하는 것이다. 그럼 일정 금액으로 수많은 영상 콘텐츠를 만끽할 수 있다. 팬데믹의 피로감과 재택 근무의 답답함이 생성한 스트레스를 이런 것들로 해소하는 것. 그렇다면 이에 대한 소비가 일정부분 더 늘어날 것임이 틀림없다.

마지막 예측 요소인 사회적 문제, 기후 재앙 등에 대한 관심 감소가 남았다. 사실 Z세대가 소비의 중심축으로 자리매김하면서 이들은 그 누구보다 이 부분에 관심을 집중해왔다. 여전히 민감한 요소이긴 하나, 지난 2년간의 팬데믹은 미국 소비자들의 감정적 피로를 증가시켰고, 이 때문에 타자보다는 자신 스스로에게 더 집중하는 경향이 커졌다. 예를 들어 의류 브랜드 파타고니아는 ‘사지 말고 고쳐 입자라는 슬로건을 내걸어 예로부터 환경을 중시하는 소비자들의 큰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건 말이 먼저 앞서는 캠페인(물론 브랜드는 지속가능성을 위해 여전히 실천하고 있지만)처럼 다가왔다. 파타고니아의 매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지 않은 것 역시 소비자들의 관심이 감소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물론, 관심이 감소하고 있다고 하여 아예 눈돌리지 않는 건 아니다. 되려 실제 행동에 나서는 브랜드와 기업들에게는 더 큰 선호와 환호를 보내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불황 vs 억눌린 욕망의 분출

KOTRA의 트렌드 뉴스에 따르면 미국 소비자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점차 종식됨에 따라 2023년에는 웰빙, 미용, 편리 제품을 많이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이와 관련한 예시로 코로나19 이전에 비해 2022년에 헤어젤의 판매가 400%, 인조 눈썹 2000%, 세안 및 얼굴 케어 제품은 7533%가 늘었다”고 전해졌다. 미국만 뷰티 제품 소비가 급증한 것은 아니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팬데믹 기간 동안 마스크 실내외 의무 착용은 뷰티 산업에 굉장히 큰 타격을 입혔다. 하지만 현재 실외 마스크 의무 착용이 사라졌고, 곧 실내 의무 착용도 일부 공간에서는 단계적으로 완화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실제로 상시 마스크를 착용할 때는 눈과 눈썹 관련 제품만 판매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마스크를 벗게 됨으로 인해 다시금 뷰티 산업은 불황을 넘어 호황을 맞이할 채비를 하고 있다.

'웰니스라는 용어가 트렌드화되면서 건강 관련 산업은 코로나19 시기부터 많은 주목을 받았다. 편리 제품들도 마찬가지다. 특히 푸드 및 음료 분야에서 밀키트의 호황이 그 직접적 사례가 될 것이다. 1인 가구의 증가뿐만 아니라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국내에서도 호텔 음식부터 스트리트 푸드에 이르는 다양한 밀키트를 소비해왔기 때문이다.
미국 소비자 트렌드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국내 소비자 트렌드와 별반 큰 차이는 느끼지 못한다. 그중에서도 국내 소비자들은 미국에 비해 럭셔리 제품에 대한 수요와 열망이 크다는 점은 확실하다. 수입 자동차, 수입 패션 브랜드 제품, 수입 명품 주얼리 앤 워치 등의 점유율이 북미, 유럽, 기타 아시아 지역 전체에서 꽤 큰 시장으로 확인되었고, 많은 글로벌 브랜드들이 한국 시장의 중요성을 높게 평가하고 있다는 결과에서 그 수요와 열망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많은 글로벌 기업 및 브랜드 관계자들은 2023년을 희망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물론 비관적으로만 예측하는 것은 아니다. 북미 시장도 중요하지만 프랑스, 이탈리아 등을 근거지로 하는 주요 럭셔리 브랜드들은 여전히 한국 시장을 아주 중요하게 여긴다. 이에 따라 소비자 층을 확대하려는 전략적 마케팅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단지 관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2023년을 전년 대비 긍정적으로 보지 않는 건 불황과 여행 때문이다. 서두에서 말했다시피 불황은 소비를 긴축시킨다. 여행은 그간 억눌린 욕망의 실현이다. 그래서 럭셔리 제품군에 지출할 돈을 여행에 쓰는 패턴이 생겨난다. 고속 성장 그래프를 유지해왔던 한국 내 해외 명품 소비가 마이너스로 추락하진 않을 것이다. 다만 너무 고점까지 치솟은 그래프가 주춤할 것이라는 게 많은 관계자들의 평이다.

그러니 미국 소비자 트렌드에서 참고할 점은 팬데믹 이후의 삶의 변화다. 우리네 역시 단순한 삶을 지향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비대면은 종식되었고 다시 대면을 통한 일상이 도래했다. 업무와 관계가 생성하는 스트레스 또한 증폭된다. 그 속에서 음악과 영상 등 멀티미디어 플랫폼을 사용하는 시간이 늘어난다. 스트레스를 풀긴 풀어야 할 테니 말이다. 남보다 내가 더 중시되는 세계관이 팽배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도 행동하는 기업과 브랜드에 대한 환호와 열광은 계속 존재한다. 만일 내가 마케터로서 전략을 짠다면, 단순한 삶을 영위하려는 소비자들에게 조금 더 흥미로운 영상과 음악으로 접근하는 길을 선택할 것이다. 이와 더불어 기업과 브랜드는 선한 사회적 영향력을 계속 설파해야 한다. 그러면 2023년에도 지금의 호황을 일정부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그래야만 한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62호 (23.1.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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