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아빠'에서 '엄마'가 된 트랜스젠더…'양친(兩親)'의 개념을 다시 묻다 [법원 앞 카페]
입력 2022-12-04 09:00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지난달 24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된 대법원 전원합의체 결정이 있었습니다. 바로 미성년 자녀가 있는 한 아버지가 성전환수술로 여성이 됐음을 인정해달라는 성별정정 신청을 법원이 받아준 겁니다.

미성년 자녀 입장에서는 어머니가 둘이 된 상황, 우리가 흔히 부르는 '부모'라는 단어와도 맞지 않는 상황을 대법원은 인정해준 거죠.
대법원 전원합의체 (사진=연합뉴스)

이 결정을 두고 제가 본 여러 기사 댓글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많이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둘인 게 말이 되느냐", "자녀의 기본권은 어디로 갔느냐" 같은 내용들이었죠.

그럼에도 총 38쪽짜리 대법원 결정문에는 '부모'란 무엇인가에 대한 대법관들의 치열한 고뇌와 논쟁이 담겼습니다. 그 중 눈여겨볼만 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합니다.

여성이 되어야 했던 아빠

생물학적 남성으로 태어난 A 씨는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성정체성(Gender Identity)을 여성으로 여기고 살았습니다. 남성으로서의 체격과 목소리 등에 정신적 고통을 느꼈지만 성정체성을 숨긴채 산 A 씨는 한 여성과 결혼한 뒤 자녀도 낳았지만 결국 성정체성 혼란을 이기지 못해 결혼 5년여 만에 이혼했습니다.

A 씨는 이후 2018년 태국에서 여성의 신체로 성전환 수술을 했고, 이어 가족관계등록부에 적히는 성별을 남성에서 여성으로 정정해달라고 신청했습니다.


1심과 2심 법원은 모두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기존 대법원 판례 때문이었죠.

성별정정을 허용하게 되면 가족관계증명서의 ‘부(父)란에 기재된 사람의 성별이 ‘여(女)로, 또는 ‘모(母)란에 기재된 사람의 성별이 ‘남(男)으로 표시됨으로써 동성혼의 외관이 현출될 수밖에 없고, 미성년자인 자녀는 취학 등을 위해 가족관계증명서가 요구될 때마다 동성혼의 외관이 현출된 가족관계증명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 동성혼에 대한 찬반양론을 떠나 이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편견은 엄연한 현실이고…. - 2011년 9월 2일 대법원 결정 중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증명서에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아실 겁니다. 가장 왼쪽에 '부'와 '모'라는 칸이 있고 오른쪽에는 각각 '부'와 '모'의 성별이 적힌 칸이 있죠. 지금껏 '부'의 성별은 '남', '모'의 성별은 '여'로 적힌 게 공식과도 같았는데 아버지의 성별이 '여'로 적힌다면 마치 동성혼 부부의 자녀와 같은 인식을 줘 차별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당시 대법원 판단 이유였습니다.
가족관계 증명서 양식 중. 왼쪽에 '부', '모'라는 항목이 있고 오른쪽에는 성별이 적힌 항목이 나온다. (사진=대법원)

가족이라는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깨고 A 씨의 성별정정을 허용해줬습니다. 아빠의 성별이 바뀐다고 해서 자녀와의 관계와 의무가 달라지는 건 없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성전환자와 그의 미성년 자녀는 성별정정 전후를 가리지 않고 개인적․사회적․법률적으로 친자관계에 있다는 점은 달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성별정정 자체가 가족제도 내의 성전환자의 부 또는 모로서의 지위와 역할이나 미성년 자녀가 갖는 권리의 본질적이고 핵심적인 내용을 훼손한다고 볼 수도 없다. - 지난달 24일 대법원 결정 중

지난 2011년 대법원이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경우에는 성별정정이 안 된다'라고 한 이유죠, 차별에 노출될 가능성에 대해서도 이번 대법원은 '차별로부터 보호해줘야 하는 것이지, 차별을 당연한 걸로 보고 성별정정을 불허하는 건 안 된다'고 판단했습니다.

미성년 자녀가 사회적인 편견과 차별을 당할 우려가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국가가 성전환자와 미성년 자녀의 기본권 보장 및 사생활 보호를 위하여 위와 같은 노출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를 취해 미성년 자녀를 보호해야 하는 것이지, 이를 미성년 자녀를 둔 성전환자의 성별정정을 허가하지 않을 이유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 지난달 24일 대법원 결정 중


'아버지=남자'·'어머니=여자'는 당연하다?

이번 결정이 대법관들의 만장일치로 결정된 건 아닙니다. 반대의견을 낸 이동원 대법관은 '여자인 아버지', '남자인 어머니'는 우리 법체계에서 인정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헌법이나 민법을 비롯한 우리 법령 체계는 아버지는 남자를, 어머니는 여자를 전제로 하고 있음이 명확하다. 따라서 우리 헌법이나 민법 등 법령하에서는 여자인 아버지나 남자인 어머니가 허용될 수 없다. - 지난달 24일 대법원 결정문, 이동원 대법관 반대의견 중

이 대법관은 만약 아버지가 성전환으로 여성이 됐다는 걸 인정해 '여성인 아버지'를 인정한다면 그건 "우리 법령 체계상 허용되지 아니하는 부모자녀 관계를 창설하는 것이 된다"라고 말했습니다. 남자인 아버지와 여자인 어머니로 구성된 '부모(父母)'가 아니고서는 부모자식 관계가 이뤄질 수 없다는 2011년 대법원 결정과 같은 의견을 제시한 거죠.

'부모'가 아닌 '양친'의 의미

이 대법관의 반대의견을 두고 이번 재판의 주심인 박정화 대법관을 비롯해 노정희·이흥구 대법관은 다시 반박 의견을 내놨습니다. 이들은 성전환한 아버지나 어머니를 가리킬 만한 용어로 '부모'라는 단어가 맞지 않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면서 양친(兩親)이라는 단어를 함께 사용합니다.

성전환자와 그의 자녀는 성전환의 전후를 불문하고 여전히 부모(양친, 兩親)와 자녀로서 고유한 권리와 의무를 갖는다. 부모(양친, 兩親)라는 말 외에 성전환된 부모를 가리키는 적절한 용어가 없다고 하여 그들이 부모자녀로서 갖던 본래적 권리의무나 신분관계가 사라져 소멸되거나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다. - 지난달 24일 대법원 결정문, 박정화·노정희·이흥구 대법관 보충의견 중

사전적 의미로도 사실 양친은 부친과 모친을 함께 일컫는 말로서, 부모라는 단어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하지만 한자어를 그대로 해석해보면 두(兩) 어버이(親, 아버지 또는 어머니)라는 뜻으로, '두 아버지' 또는 '두 어머니'라는 해석도 열어놓을 수 있습니다.

세 대법관은 불완전하지만 양친이라는 단어를 덧붙이며 두 아버지나 두 어머니가 된다고 해서, 혹은 '여자인 아버지', '남자인 어머니'라고 부른다고 해서 본래 자녀와 부모 사이에 갖는 관계가 없어지는 게 아니다, 즉 새로운 신분관계가 발생한다는 이 대법관의 주장은 틀렸다고 반박한 거죠. 그리고 아래와 같은 결론을 내립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가족 공동체가 반드시 고정된 특정 성을 전제로 하여서만 이루어지고 영위되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 (사진=연합뉴스)

동성 배우자도 양친이 될 수 있나?

대법관 다수의견이 아닌 보충의견이지만 부모와 자녀 사이가 특정 성을 전제로만 이뤄지는 게 아니라는 건 많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번 사건과 같은 '엄마-트랜스젠더 엄마' 관계 뿐만 아니라 '엄마-엄마', '아빠-아빠' 같은 동성 배우자에게까지 '양친'과 같은 지위를 인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줬다고도 볼 수 있기 때문이죠.

물론, 법조계에서는 동성 배우자까지 양친과 같은 지위로 인정하기까지 가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동성혼을 법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는데다가 이번 성별정정 사건에서도 A 씨가 이혼을 한 상태였기 때문에 '혼인 중인 관계'에서도 한 쪽 배우자의 성별정정을 인정해줄지에 대한 판단은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혼인 관계에 있는 부부 중 성별정정을 원하는 경우가 있을시 이들이 또 대법원 판단을 구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그때의 대법원 판단은 이번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 만드는 법' 소속 박한희 변호사는 "동성혼이 가능한 나라에서는 애초에 혼인 여부가 성별정정 허용 조건으로 거론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동성혼을 허용하는 나라들은)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성별정정이 가능하다"라고 지적했습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결혼한 뒤 혼인 상태에서 성별을 바꾼 트랜스젠더도, 동성 부부도 모두 누군가의 '양친'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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