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서초동에서] '인기 투표' 지적 법원장 후보 추천제…공개 문제 제기까지
입력 2022-11-26 09:00 
◇ 법원장 후보 추천제 제동 건 법관인사제도 분과위원회

전국 법원들의 판사 대표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에서 '인사제도'를 다루는 인사분과위원회(위원장 : 이영훈 서울 서부지방법원 부장판사)는 법원장 후보 추천제에 대해 법원행정처에 설명과 의견을 공식 요청했습니다. MBN 취재 내용을 종합하면 이 부장판사는 법원 내부망인 코트넷에
법원장 후보 추천제가 인기투표 식이고 사법 포퓰리즘을 확대하는 원인이라는 지적(이 제도로 인해 수석부장이나 법원장이 사법행정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비판), 임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대법원장의 무리한 치적 알박기라는 비판 등이 있는 상황”
이라고 전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도에 대한 장단점, 성과, 부정적 측면에 관한 면밀한 조사와 의견 수렴을 거쳐 확대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
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이어
내년 확대 실시를 결정하기 전에 행정처와 대법원이 어떠한 사전 준비 작업을 거쳤는지를 밝혀주고, 그 자료와 내용도 제시해달라고 요청”
한 사실을 공개했습니다.

◇ 법원장 추천제, 논란 속 '확대 실시' 강행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달 31일 법원 내부망에 내년부터 ‘법원장 후보 추천제를 확대 운영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법원장 후보 추천제는 법조 경력 22년 이상, 법관 재직 경력 10년 이상의 판사 중 동료 판사들의 추천을 받은 2~4명을 법원장 후보 정해 대법원에 통보하면 이 중 법원장을 결정하는 제도입니다. 이에 따라 전국 최대 규모 지방법원인 서울중앙지방법원도 지난 21일까지 후보자를 받았습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중요 사건 대부분의 1심을 담당하는 곳으로, 항상 누가 법원장이 되느냐가 인사 때마다 최대 관심사인데 이곳에서 추천제가 진행되는 것은 상징성이 크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법관인사제도 분과위원회는 "서울중앙지법 같은 경우 대법원장이 특정 법관을 법원장 후보에 염두에 두고 추천제를 밀어붙이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있는 상황"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제도는 2018년 6월 대법원장 자문기구인 사법발전위원회가 건의한 것을 김 대법원장이 수용하면서 2019년에 도입됐습니다. 대법원장의 인사권을 줄여 사법 관료화를 타파하겠다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입니다. 하지만, 운영 과정에서 명분이 상당 부분 퇴색됐다는 목소리도 내부에서도 나옵니다. 판사들이 추천도 하지 않은 인사를 법원장에 임명하거나 최다 득표가 아닌 사람을 임명하는 등 운영 과정에서 잡음도 끊이질 않았습니다. 법조계 관계자는 물론 추천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대법원장이 이를 따라야 하는 건 아니지만, 제도 도입의 취지를 고려하면 이를 따르지 않을 경우 충분한 명분과 함께 이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는 지난 8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법원장을 투표로 뽑는 것 자체로 곤란한 측면이 있다"며 "장차 재판 지연의 요인으로 확실하게 작용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바 있습니다. 대법관 후보자가 대법원장이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의미심장합니다.

청문회에 참석해 답변하는 오석준 대법관 후보자(2022.8.29)


◇ '인기투표' 전락 비판도…"쓴소리 못 해"

법원 내부에서는 추첨제가 법관‘인기투표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수도권에서 근무하는 한 부장판사는 "묵묵히 재판 업무를 하는 판사보다 일은 안 하고 사람들 만나고 다니면서 조직을 만드는 판사들만 유리하다"고 우려했습니다. 또 다른 판사도 "현재 상황에서 부장 판사 중 수석부장판사가 다음 법원장이 될 가능성이 큰데 이렇게 되면 원장을 하기 위해 판사들 눈치 보고, 사무국장 등에 쓴소리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외부의 비판 목소리도 큽니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은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법원장 후보 추천제의 확대 운영 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촉구했습니다. 한변은 지난 8일 입장문을 내고 "법관들이 법원장을 직접 추천하는 제도는 사실상 인기 투표제로 전락해 법원을 선거판으로 만들었다"며 "직업적 양심을 따르는 많은 법관이 업무에서 배제되는 등 부작용을 초래했다"고 비판했습니다.

◇ 철회 가능성 낮아…"부작용 보완 노력 우선" 신중론도

법원 안팎의 우려가 크지만, 내년 9월 임기가 만료되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확대 운영 방침을 철회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입니다. 김 대법원장이 여러 외부 자문기구를 두고 사법행정에 그 내용을 반영해온 것을 주요 업적으로 생각하는 상황에서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원 내부에는 신중한 목소리도 있습니다. 지방에서 근무하는 한 판사는 "제도를 시행한 지 아직 10년도 안 됐는데 부작용이 있다고 해서 무작정 그만둬야 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며 "모든 제도가 바뀌는 과정은 정반합의 과정을 거치는데 반작용이 나오는 단계에서 문제점을 잘 숙지하고 보완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습니다.

[이성식 기자 mods@mbn.co.kr]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