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인사이드] "보신탕 될뻔한 천연기념물 구조에 고소장...왜?"
입력 2022-11-26 11:00 
식용개 농장에서 발견된 진돗개 구조 당시 모습 / 사진 제공 =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지난해 8월 31일 전남 진도군의 한 식용개 농장에 동물보호단체가 들이닥쳤습니다.

철창으로 된 '뜬장'에 수십 마리의 개가 갇혀 있었습니다.

모두 진돗개였습니다.

진도의 명물인 진돗개가 식용견으로 사육되고 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다가 아니었습니다.

구조가 끝나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구조된 65마리 중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4마리가 포함돼 있었습니다.

동물보호단체 라이프에 따르면 60대 개농장주는 이곳에서 20여 년 동안 진돗개 등을 도살해 본인이 운영하는 보신탕집에서 판매해왔습니다.
식용개 농장 한쪽에 개 목줄이 수북이 쌓여 있다. / 사진 제공 =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당시 농장주는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현행범 체포됐습니다.

농장주는 "천연기념물로 등록된 진돗개는 먹으려고 기른 게 아니다"며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라이프 심인섭 대표는 "천연기념물을 뜬장에서 그것도 식용개들과 같이 사육하는 것만으로도 그동안 얼마나 관리가 안 됐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었다"며 진도군을 맹비난했습니다.

진돗개 구조 7개월 만에 날아든 고소장
천연기념물 진돗개 ‘무단 반출 혐의


진도군은 지난 3월 말 식용개 농장에서 천연기념물을 구조한 동물보호단체를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했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일명 '진도개' 4마리를 문화재청장의 허가를 받지 않고 진도군 외 지역으로 무단 반출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도개'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진도군에서 사육되는 진돗개를 뜻합니다.

부모견이 천연기념물인 진도개는 태어난 지 6개월이 되면 혈통과 표준 체형에 대한 심사를 거쳐 이를 통과하면 천연기념물로 등록돼 몸에 칩이 내장됩니다.

진도군에선 천연기념물이 아닌 진돗개를 타지로 반출할 때도 반드시 반출신청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전남 진도군이 동물보호단체에 보낸 천연기념물 진돗개 반환 요청서 / 사진 제공 =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앞서 진도군은 해당 동물보호단체(라이프)에 지난 2월과 3월 2차례에 걸쳐 천연기념물 반환 요구서를 보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아 고소에 이르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반면, 라이프는 진도군이 요구사항을 수용하지 않아 반환을 거부했다는 입장입니다.

4마리에 대한 사육환경 개선과 진돗개 보호 및 치료비 지급, 입양 및 사후관리 방안 등을 진도군에 요구했지만, 군이 들어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진도군-동물단체 치열한 공방전
천연기념물 ‘인지 시점이 쟁점


라이프가 천연기념물을 무단 반출한 것은 명백한 사실입니다.

하지만, 천연기념물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시점이 법정에서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라이프는 구조 당일 진돗개 65마리를 싣고 위탁보호소로 가던 길에 문화재청을 통해 이 중 1마리가 천연기념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미 진도군을 빠져나가 전남 광양을 지나던 길이었습니다.

진도군은 그때까지도 천연기념물이 포함돼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한 달 뒤, 위탁보호소에서 천연기념물이 3마리 더 있다는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습니다.

진도군 관계자는 "천연기념물 여부를 확인하려면 내장된 칩을 확인해야 하는데, 당시 개들이 난폭해 칩을 확인할 수 있는 리더기를 몸에 갖다 대는 것조차 불가능했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천연기념물이 아닌 진돗개도 반출 허가를 받고 타지로 반출해야 한다는 걸 수차례 설명했는데도 동물보호단체는 반출 허가가 나기도 전에 임의로 개들을 데리고 갔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이에 대해 라이프 심인섭 대표는 "진도군이 천연기념물 여부를 조사할 시간이 충분히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고 뒤늦게 우리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구조에 나서기 2개월 전부터 진도군에 개농장 사실을 알렸는데도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특히 개 주인에게 소유권 포기 각서를 받고 양도양수계약서를 체결한 지난해 8월 9일에도 공무원이 동석했다고 했습니다.

그 이후 8월 31일 구조할 때까지 3주의 시간이 있었지만, 진도군은 소유권이 넘어간 진돗개들이 천연기념물인지 아닌지 확인조차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라이프 심인섭 대표는 현재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겨진 상태입니다.

아직 기소 여부는 결정되지 않았지만, 어떤 결론이 나오느냐에 따라 또 다른 법적 다툼이 이어질 것으로 보여 논란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전망입니다.

천연기념물 진돗개 4마리는 지금 어디에?


경북 경주 위탁 보호시설서 건강 회복한 진돗개들 / 사진 제공 = 동물보호단체 라이프

당시 구조된 진돗개 65마리 중 천연기념물 4마리를 제외한 61마리는 모두 새 가족을 만났습니다.

상당수가 해외로 입양됐습니다.

천연기념물 4마리는 현재 경주의 한 위탁 보호시설에서 1년 넘게 지내고 있습니다.

구조 당시 4마리 중 3마리가 심장사상충에 감염되는 등 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지금은 모두 건강한 상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4마리는 각각 '칸쵸', '드림이', '젠', '진주'라는 새 이름도 생겼습니다.

이 4마리 개들은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요?

[박상호 기자 hachi@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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