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이태원 명단 논란' 속 의문…'내 이름'은 공개해도 되나? [법원 앞 카페]
입력 2022-11-19 09:00 
인터넷 매체 \'민들레\'가 지난 14일 공개한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모자이크 처리. (사진=민들레 홈페이지)
재판이 끝난 뒤 법원 앞 카페에 앉아 쓰는 법원 출입기자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때로는 소소하면서도 때로는 중요하지만 잊혀진 그런 법정 안팎이야기를 다뤄보려 합니다.


최근 몇몇 언론이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을 공개해 논란입니다. 한 쪽에서는 "왜 유족 허락도 안 받고 공개하느냐"고 비판하는가 하면 다른 쪽에서는 "제대로된 추모를 위해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하죠. 일각에서는 "사진이나 주소가 나온 것도 아니고 고작 이름가지고 그러느냐"는 의견도 있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개인정보를 당사자 허락 없이 공개할 수 있느냐'입니다. 개인정보보호법상 '사망자'의 이름은 개인정보로 하지 않는다는 법 해석이 나오지만 유족의 개인정보로 볼 수 있다는 시각도 있죠. 이 상황을 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이름을 내 허락없이 누군가가 마음대로 공개해도 될까?

원칙적으로는 허락 받아야 하지만...

결론부터 간단히 말하자면 원칙적으로는 '안 된다' 입니다. 저를 비롯한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의 개인정보 공개와 이용을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는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연하게도 이는 헌법상 보장된 권리이기도 합니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 행복추구권을 규정한 헌법 제10조 제1문에서 도출되는 일반적 인격권 및 헌법 제17조의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에 의하여 보장되는 것으로, ‘자신에 관한 정보가 언제 누구에게 어느 범위까지 알려지고 이용되도록 할 것인지 그 정보주체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 2009. 9. 24. 헌법재판소 결정 중

'변시 합격자 이름' 공개해도 되는 이유

당사자 허락 없이 이름을 공개해도 되는지에 대해 최근 법적 논쟁이 붙은 건이 있습니다. 바로 '합격자 명단'이죠. 과거에는 사법시험이나 대학 입학시험 합격자 이름을 벽보에 실명으로 붙이는 경우가 흔했고, 지금도 민간 회사 입사 시험 합격자 명단이 실명으로 공개되는 경우가 으레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2018년 일부 변호사 시험 합격자들이 헌법소원을 냈습니다. 변호사 시험 합격자 명단을 공개하도록 하고 있는 현행법이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위헌이라는 주장이었습니다.

변호사 시험 (사진=연합뉴스)

결과는 어땠을까요? 헌법재판소는 '합헌'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당사자 허락 없이 합격자 명단을 공개해도 된다는 거죠.

변호사라는 전문자격을 취득하거나 취득하지 못하였다는 사실이 내밀한 사적 영역에 속하는 것인지 의문일 뿐만 아니라…(중략)…법률서비스 수요자가 변호사와 업무를 하려 할 때 그에 관한 정보를 얻는 편리한 수단이 될 수 있다. (중략) 일반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는 매회 변호사시험 합격자 명단이 널리 공개되는 것이 변호사 자격 소지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데 기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2020. 3. 26. 헌법재판소 결정 중

대법원도 비슷한 판단을 내렸습니다. 합격자 명단 공개의 법적 이익이 합격자 사생활 보호 법익보다 크다는 거죠.

변호사는 다른 직업군보다 더 높은 공공성을 지닐 뿐만 아니라, 변호사에게는 일반 직업인보다 더 높은 도덕성과 성실성이 요구되고(변호사법 제1조, 제2조 참조) 그 직무수행은 국민들의 광범위한 감시와 비판의 대상이 되므로, 변호사시험 합격여부, 합격연도 등을 포함한 해당 변호사에 관한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법적 이익이 적지 않은 점…(중략)…비공개로 인하여 보호되는 사생활의 비밀 등 이익보다 공개로 인하여 달성되는 공익 등 공개의 필요성이 더 크므로….(생략) - 2021. 11. 11. 대법원 선고 중

주목할 점은 명단 공개의 정당성이 변호사라는 직업의 특수성에 있다는 겁니다. 변호사라는 중요한 공적 의무를 수행하는 만큼 명단을 공개할 필요성도 커진다는 거죠. 즉, 다른 공공 또는 민간 분야 입학이나 입사 합격자 명단 같은 건 공개할 때 좀 더 신중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실제로 변호사 시험 합격자들이 헌법소원을 낼 당시 공무원 시험 합격자는 비공개된다는 점 등을 예로 들었지만 헌재는 "응시 자격이나 업무 성격이 달라 비교집단이 된다고 보기 어렵다"며 다른 분야의 명단 공개는 다른 판단이 내려질 수 있다고 적시했습니다.

'알 권리' 내세웠던 '전교조 명단' 공개

변호사 시험 합격자 명단 공개 논란과 정반대 성격의 결과도 있습니다. 최근 이태원 참사 명단 공개 논란 이후 다시 언급되고 있는 '전교조 명단'이죠.

지난 2010년 조전혁 당시 한나라당 의원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전국교직원노동조합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소속 교직원의 실명을 모두 올렸습니다. 당시 전교조 소속 교직원은 6만 명, 교총은 15만 명으로 엄청나게 많은 수의 실명이 공개된 거죠. 당시 조 의원은 "부모는 자녀교육과 관련된 정보를 알 권리를 갖고 있다", "교원의 교원단체 활동도 이와 연관돼 있기 때문에 학부모들은 교원들이 어떤 단체에 가입해 활동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며 공개함으로써 얻는 공익이 사생활 침해보다 크다고 주장했습니다.

지난 2010년 전교조 명단 공개로 법원의 강제이행금 명령을 받은 조전혁 당시 의원이 서울 영등포구 전교조 사무실을 방문, 강제이행금을 직접 납부한 후 전교조 엄민용 대변인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하지만, 법원 판단은 달랐습니다. 대법원은 2014년 전교조가 조 전 의원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소송에 참여한 전교조 소속 교직원 3천여 명에게 1인당 10만 원 씩 모두 3억여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습니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 침해는 명백한 반면 명단 공개의 공익은 크지 않다는 이유입니다.

이 사건 정보를 일반 대중에게 공개하는 행위는 해당 교원들의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의 침해에 해당한다고 봄이 상당하다. 위와 같은 조합 가입 여부에 관한 개인정보가 공개될 경우 원고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라고 한다)에 속한 조합원들이 조합을 탈퇴하거나, 비조합원들이 조합에 가입하는 것을 꺼리게 될 수 있어 원고 전교조 역시 그 존속, 유지, 발전에 지장을 받을 수 있으므로…

(중략)

② 교원이 원고 전교조에 가입한 것 자체로 곧바로 학생의 수업권과 부모의 교육권이 침해된다고 볼 수 없으므로, 이 사건 정보를 사전에 학생과 학부모에게 일반적으로 제공하여야 한다고 볼 수 없는 점, ③ 원고 전교조에 가입한 특정 교원들의 교육내용이 학생의 학습권이나 학부모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사례가 있다고 하더라도, 원고 전교조에 가입한 다른 교원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거나 그 정보의 제공을 요구하지 아니하는 다른 학생이나 학부모에게까지 정보를 공개할 필요는 없는 점… - 2014. 7. 24 대법원 선고 중


사생활 침해까지 하며 얻는 공익 입증해야

변호사 시험 합격자 명단과 전교조 명단은 모두 이름을 '당사자 허락 없이' 공개했다는 점, 대신 공적인 '알 권리'를 내세웠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공개를 해도 되는지에 대한 법적 판단은 180도 달랐습니다.

법조계에서는 이름 공개로 얻는 공적 이익을 입증해내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설명합니다. 개인정보자기결정권이라는 권리는 명확하게 정해져 있고 모든 개인이 동등하게 누리는 반면 이를 침해하고 얻는 명단 공개의 이익은 상황별로 천차만별이기 때문입니다. 한 재경지법 부장판사는 "명단 공개로 인한 법익은 일반화할 수 없다, 소송으로 오게 된다면 결국 어떻게 입증하느냐에 달렸다"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이태원 참사 희생자 명단 공개를 두고 유족이 소송을 제기하면 어떻게 될까요? 또는 누군가 마음대로 내 이름을 어떤 식으로든 공개했을때 내가 소송을 걸면 어떻게 될까요? 헌법재판소 헌법연구관을 지낸 배보윤 변호사는 "형사든 민사든 피소를 당했을 때 명단 공개자 입장에서는 공개를 함으로써 커지는 법익이 뭔지 증명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면서도 "개인의 자유와 권리 제한은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공개는 예외적이어야는 최소 침해 원칙이 고려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쉽게 말해 '아주 중요한 공적 이익이 있는게 확실하지 않으면 내 이름을 함부로 공개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우종환 기자 woo.jonghwan@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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