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리'와 '측근' 관계가 중요해진 특이한 정치자금법 사건이다."
검찰이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22일 구속하면서 법조계에서 이 같은 흥미로운 관전평이 나오고 있어 눈길을 끈다.
김 부원장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최측근이자 각종 선거 업무에 관여한 인사라는 점에서 향후 검찰 수사가 정치권에 막대한 후폭풍을 일으킬 것이라는 관측이 쏟아지고 있다. 김 부원장의 구속으로 검찰의 수사 칼끝이 더불어민주당 대선자금 수사를 정면 겨냥하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그런데 다른 정치자금법 혹은 뇌물수수 사건처럼 이 사건도 '꼬리표'가 없는 현금이 오갔다는 의혹이라는 점에서 향후 기소 후 검찰의 유죄 입증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유죄 입증에 유리한 진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심경 및 태도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대법원 판례 등에 비춰 현금이 오간 명확한 물증이 없는 경우 그 사건에서 유무죄를 가르는 결정타는 바로 '진술의 신빙성'이다.
한국 사법부에서 게이트급 정치자금법 재판으로 유명한 '박연차 게이트'는 특히나 김용 부원장 구속으로 판이 커진 검찰 수사의 방향성과 향후 사법부 판단 여부를 유추할 수 있는 중요한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경기지사 시절 2019년 12월 15일 당시 경기도 대변인을 했던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오른쪽)의 출판기념회에 참석해 서로 손을 잡고 응원하고 있다. <김용 부원장 블로그>
전현직 정치인은 물론 거물급 관료와 지방자치단체장 등이 연류된 고(故)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광범위한 뇌물 제공 게이트에서 재판부는 박 회장의 진술 신빙성을 강력하게 인정해 법조계를 들썩이게 했다.
통상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은 물증 없이 돈을 줬다는 쪽의 진술만 있는 사례가 많아 법원은 특히나 공여자 진술에 신중함을 기하게 된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총 10억원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됐던 송은복 전 김해시장의 경우 박 회장이 돈을 건넸다고 한 날짜에 대해 다른 알리바이를 대며 부인했지만 재판부는 박 회장의 진술 신빙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그 이유는 바로 진술 동기와 관련돼 있다. 재판부는 박 회장이 검찰 수사 초기까지 피고인을 보호하려 했던 점에 비춰 굳이 피고인을 무고할 이유나 동기가 없다고 봤다.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수수한 혐의로 기소된 거물 정치인인 이광재 사건도 흥미로운 사례다.
당시 피고인은 대법원 유죄 확정으로 강원도지사 취임 7개월여만에 직을 박탈당하는 비운을 맛봐야 했다. 해당 사건 재판부는 박 회장이 아닌 다른 인사가 돈을 건넨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로 보면서도 박 회장이 피고인에게 직접 돈을 전달한 부분은 모조리 유죄로 봤다.
최종 전달자로서 박 회장의 진술이 구체적이고 일관돼 유죄증거가 충분하다는 게 재판부 해석이었다.
이처럼 박연차 게이트에서 검찰 수사 당시 뇌물과 정치자금 제공 혐의를 부인하다 뒤늦게 태도를 바꾼 박연차 회장의 진술은 각 재판부로부터 강력한 '진술의 신빙성'을 인정받았다. 이 때문에 법조계에서는 '박연차 중수부장'(검찰 수사력보다 나은 박연차의 입이 낫다)이라는 말까지 회자됐다.
유동규 전 본부장과 김용 부원장이 등장하는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역시 박연차 게이트의 사법부 판단 사례가 상당한 연관성을 보일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서 중요한 포인트는 유 전 본부장의 진술이 기소가 아닌 영장 발부 단계에서부터 김 부원장의 구속을 이끌어낼 만큼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이는 박연차 사건처럼 유 전 본부장이 수 억원의 현금을 피의자에게 건넨 '최종 전달자' 위치에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공교롭게도 김 부원장이 언론의 대대적인 대장동 비리 의혹이 터져나오자 1억원을 돌려줬다는 의혹 역시 돌려받은 객체 역시 유동규 전 본부장이다.
유 전 본부장 역시 초기 검찰 수사에서 불법 정치자금 문제에 대해 함구하다 뒤늦게 태도를 바꿔 진술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는 지난 21일 대장동 사건 재판을 받으러 법원에 출석하면서 기자들에게 "이 세계에는 의리 그런 게 없더라. 제가 지금까지 착각하고 살았던 것 같다"는 발언을 해 주목을 받았다.
이를 두고 언론은 이재명 대표가 지난 대선을 거치는 과정에서 대장동 의혹으로 공격을 받을 때 자신과 가까운 주변 인사를 모르는 식으로 대응한 데 따른 심경변화라고 풀이하고 있다.
이재명 대표는 2019년 10월 더불어민주당 대선 예비후보 시절에 유 전 본부장에 대해 "(유동규가 성남)시장 선거를 도와 준 건 맞는다"면서도 "측근 그룹에 끼지 못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그러면서 "(측근이라면) 김용 정도는 돼야"라고 말한 바 있다.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 구속영장 발부 반나절 전인 21일 오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회 당대표 회의실에서 특별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국회 공동취재단>
향후 김용 부원장이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면 재판부는 유동규 진술의 신빙성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유동규 전 본부장이 김용 부원장에게 불리하게 진술해 얻는 이해관계는 물론 진술자의 인간 됨됨이까지 꼼꼼하게 파악할 것으로 예상된다.성남시장 재직 시절 요직에 등용했던 유동규를 측근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며, 김용 정도는 돼야 측근이라던 이재명 대표의 1년 전 발언은 공교롭게도 김용 사건에서 유동규의 진술 신빙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영향을 줄수도 있다.
신뢰 받은 정치인으로 성장하기 위해 늘 구화지문(口禍之門·입은 재앙의 문)을 경계하라는 건 예나 지금이나 여의도 정계의 불문율이다.
[이재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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