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기고] 윤석열 정부의 신약개발 정책, 존재감도 청사진도 안 보인다
입력 2022-10-19 10:10 
이형기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

대통령 한 사람 바뀐다고 세상이 달라지리라 기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문재인 정부에서 횡행하던, 사변적이고 이념에 목을 매던 정책 기조만은 사라지길 바랐다. 실사구시(實事求是)를 회복해 달라는 소망이었던 셈이다. 요컨대 산업의 성장 능력을 회복해야 한국이 미래를 헤쳐 나갈 힘을 얻는다.
바이오의약품을 포함한 신약의 개발은 미래 한국의 산업 부흥을 책임질 주역 중 하나다. 여러 통계 지표가 이러한 기대와 주장을 뒷받침한다. 예를 들어 2021년에 한국은 미국 다음으로 신약개발 라이센싱이나 공동개발 계약을 많이 성사시킨 국가였다(출처: 글로벌 헬스케어 빅데이터 분석 기업 IQVIA Pharmadeals, 2021년 12월).
그러나 전망이 꼭 밝지만은 않다. 최근 유럽과 일본이 주춤하는 사이, 중국은 2006년 대비 무려 여섯 배나 많은 신약후보물질을 만든 나라가 됐다(출처: IQVIA Pipeline Intelligence, 2021년 12월). 아쉽게도 같은 기간 동안에 한국이 만든 신약후보물질의 숫자는 단지 두 배 증가에 그쳐 중국의 삼분의 일에 불과했다.
한 마디로 글로벌 신약개발을 선도할 기회와 가능성이 한국에 주어졌지만 추동력이 바닥난 상태다. 좌절과 희망이 섞인 성적표를 받아 든 이 시점에서 어떻게 하면 판세를 뒤집을 수 있을까? 정부가 정책으로 이끌고 제도로 뒤를 밀어야 한다. 국가간 산업 전쟁의 최전선에 위치한 돌격부대인 제약 바이오기업이 성공적인 신약개발로 유리한 고지를 확보하려면 본부의 병참 지원이 지속돼야 하는 원리다.

그래서 비록 늦은 감은 있지만,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이 헬스케어 혁신파크를 방문한 자리에서 "바이오헬스는 넥스트 반도체"라고 강조한 것은 백 번 지당하다. '넥스트 반도체', 이전 시대 한국 산업의 중흥을 이끌었던 반도체의 영광을 바이오헬스 산업의 궁극적인 목표인 신약개발로 재현해 달라는 염원이 담긴 멋진 조어가 아닌가.
그 동안 다양한 경로로 윤석열 정부의 신약개발 정책이 공개됐다. 하지만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일까. 내용을 들여다 보니 곳곳에 문제 투성이다. 시의성이라는 이름으로 포장했지만 기실 유행을 좇는 데 그쳤다. 장밋빛 미래를 말하지만 당장 시급한 문제는 외면했다. 기존 정책을 재탕한 것도 여럿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것도 있다. 무엇보다 정작 중요한 분야는 아예 손도 안 댔다.
제일 의아한 것은 전체 정책이 모두 바이오의약품에만 집중됐다는 사실이다. 합성의약품의 신약개발 정책은 눈을 씻고 찾아 봐도 발견하기 힘들다. 균형을 바라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지나친 바이오 편애다.
물론 앞으로 혁신적인 바이오의약품이 점점 더 많이 개발될 것이다. 따라서 환자 진료에서 바이오의약품이 차지할 역할도 증가하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합성의약품이 찬밥 신세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신물질신약으로 허가한 421 개 중 78%는 합성의약품이었고 최근 몇 년 동안 이 추세는 바뀌지 않았다. 국내도 마찬가지다. 현재 한국이 보유한 신약후보물질 중 절반 가까이는 합성의약품이다.
바이오의약품 개발을 지원할 필요는 있지만 윤석열 정부의 정책은 압도적으로 생산 시설 확충이나 원료 확보에 집중됐다. 이명박 정부의 기시감을 떨치기 힘들다. 21세기에 들어선 지 한참인데 아직도 산업사회의 하드웨어 위주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다니 납득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바이오 생산 시설 지원 대상의 중심에 삼성이 자리한다는 것도 우연으로 보기에는 미심쩍다. 삼성이 문재인 정부에서 냉대받던 회사라 윤석열 정부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가 아니길 바란다. 삼성이라서 문제가 아니라 장치와 생산 시설 투자로 바이오 산업을 키울 수 있다고 믿는 생각이 허망하기 때문이다.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에 대비한 백신이나 치료제 개발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정책도 이해하기 힘들다. 다분히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격이다. 물론 팬데믹은 주기적으로 찾아 올 게 틀림 없고 이런 저런 대비는 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신약개발 역량을 감염병에 쏟아 붓는 것은 말이 안 된다. 2020년 한국인은 대부분 암, 심장 질환, 뇌혈관 질환, 당뇨, 치매와 같은 병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코로나로 사망한 사람은 단 0.3%였다. 한 나라의 재정을 특정한 질환 예방이나 치료제 개발에 몰아주는 것도 동의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그 질환의 중증도가 별로 크지 않음에랴. 감염병은 항상 문제를 일으키는 질환도 아니다.
사실 코로나와 같은 감염병은 신약개발보다는 보건의료 '시스템'으로 해결할 대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염병 치료제나 백신 개발에 윤석열 정부가 목을 매는 것은 문재인 정부의 전철을 답습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일 수 있다. 소위 백신 또는 감염병치료제의 '주권'을 확보하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백신 주권을 확보하겠다며 박능후 전 보건복지부장관이나 기모란 전 청와대 방역기획관이 늑장 대응한 결과는 적기 백신 확보 실패였다. 백신 수급에 집중해도 힘이 부칠 판에 치료제 주권을 확보해야 한다며 의학적으로 효용성이 떨어지는 항체 개발 지원으로 힘을 뺀 것은 또 어떠한가. 주권을 말하면 사람들의 마음이 애국심으로 차오를지는 모르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과학과 논리에 따라 결정하고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일이다. 이스라엘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코로나 백신이 하나도 없지만 전 세계에서 가장 빨리 백신을 도입했고 성공적으로 접종을 완료했다.
디지털과 바이오의 융합에 방점을 찍은 지원 정책도 의아하다. 물론 더 다양한 인공지능, 빅데이터 기반의 융합 치료제나 진단 기기가 미래에 더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리라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러나 디지털의학품은 현재도 그렇고 미래에도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당장 환자가 죽어 가는데 스마트폰 어플을 내밀 의사가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의료 빅데이터 활용은 산적한 법적 문제와 환자와 의료기관의 심리적 저항을 넘어서기 전에는 요원할 뿐이다.
중요하지만 아예 거론조차 안 된 정책도 있다. 바로 신약개발 컨트롤타워를 상설화하는 일이다. 여러 행정 부처에 산재한 신약개발 지원 기능을 일원화해야 정책의 중복과 집행 지연 문제가 해결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제약바이오위원회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지만 신약개발 지원 정책을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집행하려면 위원회 류의 자문기구로는 어림도 없다. 아무리 좋은 제안을 하더라도 관료가 무시하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모든 정책이 시행되더라도 혁신의 결과에 정당한 값을 지불할 생각이 없다면 신약바이오가 넥스트 반도체의 역할을 담당하기는 어렵다. 돈을 낼 마음이 없는데 미쳤다고 누가 신약개발에 나설까. 한국은 신약으로 허가를 받아도 실제 보험급여를 받아 환자가 쓸 수 있을 때까지 수 년을 기다려야 하는 나라다. 가격 후려치기도 다반사다. 그래서 아예 한국에 신약을 공급하지 않으려는 코리아패싱도 심심찮게 발생한다. 모두 정부가 제때에 제값을 주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에 일어난 사달이다.
상황이 이럼에도 이전 정부는 문재인 케어라며 중요하지도, 꼭 필요하지도 않은 의료서비스에 섣달 그믐날 개밥 퍼주듯 보험 급여를 했다. 값이 싸지니 너도나도 의료서비스를 남용했다. 보험재정 누수는 당연한 결과다. 예를 들어 2021년 뇌혈관 엠알아이(MRI) 촬영은 연간 지출 목표치를 23%나 상회했다. 효과나 안전성도 검증이 안 됐고 비용효과적임을 입증하지도 않은 첩약을 급여 목록에 넣은 것도 문재인 정부였다. 그런 점에서 탈모치료제를 보험으로 급여하겠다던 이재명 의원이 대통령에 당선되지 않은 것은 국내 보험재정의 건전성을 유지하는 데 큰 기여를 한 셈이다.
당연히 이런 선심쓰기 정책이 먼저 철회돼야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윤석열 정부는 생각을 바꿀 마음이 없어 보인다. 보건복지부 내년 예산 중 85%가 이렇게 저렇게 돈을 나눠 주는 데 배정됐다. 신약개발 지원 예산은 절반이나 삭감됐는데 말이다. 앞뒤가 안 맞는다.
윤석열 정부의 신약개발 정책, 존재감도 청사진도 안 보인다. 의도는 좋지만 방향이 틀렸기 때문이다. 더 늦기 전에 보완을 바란다. 그래야 넥스트 반도체가 현실이 된다.
▶▶ 이형기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는…
올해 초 출간된 『대한민국 신약개발 성공전략』의 대표 저자.『K-방역은 없다』·『바이오의약품 시대가 온다』·『FDA vs. 식약청』·『잊지 말자 황우석』등의 책을 내기도 했다.
[이형기 서울대학교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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