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월화수목일일일"…'확' 달라지는 직장 풍경 어떤가보니 [언제까지 직장인]
입력 2022-10-13 10:56  | 수정 2022-10-14 11:08
[사진 출처 = 연합뉴스]

"회사가 마치 독서실 같아요. 임직원들이 고개 숙인 채 업무에만 몰두합니다."
영국 화장품 제조업체 '다섯 다람쥐(5 Squirrels)'의 게리 콘로이 CEO가 최근 CNN에 '주4일 근무제' 시행 후 달라진 사내 풍경을 이 같이 전했습니다. 이 회사는 직원의 근무시간을 단축하는 대신 업무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매일 오전, 오후 각각 두 시간씩 이메일, 전화, 사내 메시지 등에 응답하지 않아도 되는 일명 '심층 업무시간'을 지정했습니다. 적게 일하되 '진짜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든 것입니다.
또 영국 싱크탱크 '오토노미' 등은 케임브리지·옥스퍼드대, 미국 보스턴대 연구진과 함께 주4일제 관련 실험을 하고 있는데 참가자의 90% 가까이 긍정적 평가를 내놨다고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은행과 투자 회사, 병원, 음식점 등 영국 내 70여 개 기업은 6~12월 월급 삭감없는 주 4일제 실험에 3300여 명 이 실험에 참여 중입니다.
실험 중반을 넘어선 지금 41개 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88%가 주4일제가 잘 돌아간다고 답했습니다. 12월 이후에도 이 제도 유지를 고려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사람도 86%나 됐습니다.

근무일수 단축이 얼마나 잘 이뤄졌는지 1점(매우 순조로움)에서 5점(순조롭지 못함) 사이 척도로 평가한 결과 1점이나 2점으로 높게 측정한 응답자도 78%였습니다.
반면 실험 기간 업무 생산성이 유의미하게 올랐다고 응답한 기업은 15%에 불과했습니다. 34%는 생산성이 약간 올랐다고 평가했고, 46%는 이전과 거의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영국 인터넷 전문은행인 아톰은행이 주4일제를 6개월 넘게 진행한 결과 직원 만족도가 높아지고 생산성이 향상됐다고 밝혔습니다.
사내조사에서 직원 91%는 5일 동안 할 일을 4일 안에 수행할 수 있었다고 답했고, 92%는 사흘간의 주말을 보내기 위해 일하는 방식에 변화를 줬다고 했습니다.
아톰은행은 주 4일제 도입 후 은행의 입사 지원자가 1년 전에 비해 49% 급증하고, 직원들의 퇴사와 병가도 줄어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 직원은 "4일제는 내 삶뿐 아니라 반려견의 삶도 바꿔놨다"고 했습니다.
더타임스에 따르면 잉글랜드 리즈지역의 한 마케팅 기업 대표 클레어 대니얼스는 처음에는 주4일제에 회의적이었으나 3개월이 지난 지금은 이를 "굉장히 성공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주4일제에 맞춰 미팅이나 출장 등 한 주의 20%를 차지했던 불필요한 업무를 줄였고 이를 통해 직원이 더 효율적으로 근무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는 설명입니다.
대니얼스는 실험 초기 몇 달 동안 매출도 이전 대비 44% 올랐다며 12월 이후에도 주4일제를 연장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이 실험을 기획한 오토노미의 공동 대표 카일 루이스는 "긍정적인 피드백은 매우 고무적"이라며 "이번 실험을 통해 다른 기업의 주4일제 도입을 고려하게 하는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아이슬란드 등 이미 주4일제를 시행하고 있는 국가에서도 긍정적인 평가가 나오고 있습니다. 오토노미는 "지난달까지 공공부문 근로자 2500명을 상대로 주 36시간 근무를 시행한 아이슬란드 근로자 삶의 질이 여러 방면에서 크게 개선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근로시간 단축은 세계적 흐름이기도 합니다. 위에서 살펴본 영국 외에도 스페인은 주4일제를 시범운영 중입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등도 주4일제를 속속 도입하는 모습입니다.
최근 국내에서도 주4일제 관련 논의가 뜨겁습니다.
2030세대 직장인을 중심으로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중시하는 근로자가 점점 늘어나면서 '단축 근무'가 일터를 파고들고 있습니다. 배달의 민족 운영사인 우아한 형제들, 카카오게임즈, SK텔레콤 등 대기업을 중심으로 주4일제가 도입되고 있는 가운데 휴넷 등 중소기업에서도 주 4일제를 도입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주4일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는 휴넷 직원들의 모습. [사진 = 휴넷]
기업들이 주 4일제를 채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핵심 인재 영입을 위해 휴무를 늘리고 탄력적 근무시간을 적용하는 등 사내 복지를 강화하기 위한 일환입니다. 또 코로나19로 비대면 근무가 활성화하면서 '근무시간 = 생산성'이라는 인식도 옅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연평균 노동시간은 1908시간입니다. OECD 38개국 평균 노동시간은 1687시간이며, 한국은 3번째로 많은 시간을 일하는 나라로 꼽힙니다. 그러나 한국의 시간당 노동생산성은 41.7달러로, 27위 수준입니다.
여당서도 '주4일제' 첫 목소리 나와

국민의힘에서도 '주4일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처음으로 나왔습니다. 애초에는 노동계나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논의됐지만 최근엔 정치권에서도 '뜨거운 감자'로 부각하고 있습니다.
최승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달 22일 국회에서 열린 교육·사회·문화 대정부 질문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해외에서는 주4일제 도입을 통해 노동생산성을 극대화하면서도 유연한 고용환경을 정착시키는 나름대로 소득주도성장 목표를 갖고 있다"면서 "이제는 우리도 고용전략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소상공인연합회 초대 회장 출신으로 비례대표로 국회에 입성한 초선 의원입니다. 최 의원은 "지난해 6월 고용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정규직의 월평균 근로시간은 180시간으로 4주로 나누면 주당 45시간"이라며 "우선 대기업부터 이러한 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적절하게 조치한다면, 양질의 일자리에 기반한 일자리주도 성장이 이뤄지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우리나라 노동시장 문제는 양극화와 이중구조가 핵심인데,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본적으로 대중소기업간 상생의 산업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재 추진중인 근로시간, 임금 중심의 노동시장 개혁을 조속히 마무리해서, 고용창출 여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앞서 지난 8월 12일 박성준 민주당 의원은 원격근무 허용과 주4일제 준비하는 '원격근무 2법'을 발의했습니다. 박 의원은 "완전한 주4일제 도입 이전에 과도기적 관점에서 주4일 사업장 근무와 주1일 원격근무 도입이 필요하다"라며 "원격근무의 법적 근거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나아가 육아로 인해 경력단절의 우려가 있는 노동자들이 재택이나 원격근무를 할 수 있다면 일과 가정 양립을 더욱 두텁게 보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하루 6시간 vs 주4일제, 뭐가 좋을까

하루 6시간 근무제와 주4일제를 놓고, 어느 것이 더 나은지에 대해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호주의 스타트업 기업가 스티브 글라베스키는 자신의 회사에서 관련 실험을 본 결과 하루 6시간이 낫다는 의견을 내놓았습니다. 그는 심리학자 앤더슨 에릭슨 박사의 연구를 들어 "깊은 인지 작업을 할 수 있는 최대의 시간은 4시간으로 그 이후에는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그렇다면 8시간씩 4일 근무보다는 6시간씩 5일간의 근무가 더 효율적"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반면 주4일제를 더 옹호하는 이들은 휴일이 하루 늘어나는 점을 주목했습니다.
유로뉴스는 "최근 전 세계적으로 생활비 증가 문제가 심각한데, 휴일이 하루 늘어나면 부업을 찾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전했습니다.
주4일제는 기후위기 대응 측면에서도 차이를 보이는데, 워싱턴포스트(WP)는 "자동차 등을 이용한 출퇴근과 사무실 사용 전력이 감소해 탄소배출량이 줄어들 수 있다"고 언급한데 반해 여행과 소비가 탄소배출량을 되레 늘릴 수 있다는 반대 의견도 만만찮습니다.
"주4일제 원하지만, 부작용은…"

그럼, 우리나라 직장인들은 주4일제를 얼마나 원하고 있을까요.
최근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 68.7%가 '주4일제 도입에 찬성한다'고 답했습니다. 10명 중 7명정도가 주4일제를 원하는 셈입니다. 주4일제 도입에 찬성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개인 시간 확보'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주 4일제가 도입되면 개인 여가시간이 늘어날 것 같고(63%, 중복응답) 워라밸 실현(57.9%)이 가능해질 것이라는 응답이 많았습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이에 반해 주 4일제 도입의 부작용에 대한 걱정도 만만찮았습니다.
임금 삭감에 대한 우려(53.4%, 중복응답)가 가장 컸습니다. 그다음으로 주 4일제가 시행된다고 하더라도 업무량에는 큰 변화가 없을 것(49.3%) 같고, 오히려 업무 강도만 더 높아질 것 같다는(43.2%) 회의적인 목소리도 나왔습니다. 또 특정 업종에만 도입돼 형평성 문제(36.3%, 중복응답)가 발생하거나 주 4일제를 시행하지 않는 거래처 등과 업무를 맞추기 어려울 수 있다(30.4%)는 우려도 적잖게 따라 붙었습니다. 더욱이 '임금 삭감'은 43%의 응답자가, 업무 시간 증가는 35.9%의 응답자가 '감수하기 어렵다'고 답변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주4일제가 모든 근로자에게 도움이 되진 않는다"며 "업체 규모나 업종에 따라 자율에 맡겨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안 그래도 일자리가 부족한데 주4일제가 자칫 실업률을 더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은 탓이기도 합니다.
[류영상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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