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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콜]송골매, 1만 청바지부대와 38년 만에 다시 날다
입력 2022-09-12 08:44 
송골매. 사진|드림메이커엔터테인먼트
'대한민국 그룹사운드의 전설'로 통하는 송골매는 1979년 한국항공대학교 동아리 록밴드 활주로 출신 배철수를 중심으로 결성된 록밴드다. 1982년 홍익대학교 출신 록밴드 블랙테트라 멤버 구창모와 김정선을 영입해 배철수-구창모 투톱 체제를 구축하고 80년대를 휩쓸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 화려한 시절을 보냈다.
배철수-구창모 체제는 강렬했지만 짧았다. 구창모가 1984년 정규 4집을 끝으로 팀을 탈퇴했기 때문. '어쩌다 마주친 그대, ‘하늘나라 우리님, ‘빗물, ‘모여라 등 주옥 같은 명곡을 남긴 이들은 각자의 활동에 집중하고자 1990년 발표한 정규 9집을 끝으로 긴 휴식기에 들어갔다.
하지만 잠시 사라졌을 뿐, 송골매는 죽지 않았다. 그리고 무려 38년 만에, 배철수-구창모의 송골매가 다시 날아올랐다.
송골매. 사진|드림메이커엔터테인먼트

◆ "모여라" 배철수-구창모 열창에 중년의 청바지부대 '파워 떼창' 발사
11일 서울 올림픽 케이스포돔(구 체조경기장)에서 송골매 전국 투어 콘서트 '열망(熱望)'이 열렸다. 이번 콘서트는 배철수, 송골매 투톱 체제의 송골매가 무려 38년 만에 함께 서는 무대로, 지금은 대중음악씬의 뒤편에 서 있지만 7080 그 시절 가슴 속 뜨거운 열정을 간직한 중장년층의 기대를 모았다.
모처럼 공연장 나들이에 나선 듯한 5060 팬들의 얼굴은, 비록 마스크가 가리고 있긴 했지만 눈만 봐도 화색이 가득했다. 일찌감치 공지됐던 드레스코드인 청바지를 입고 온 관객들이 대다수. 그 중엔 과감한 위아래 청청 패션으로 시선을 모은 여성 관객도 눈에 띄었다.
부부동반으로 혹은 친구끼리, 엄마와 딸이 함께 온 장년의 관객들은 이 순간, 이 곳에서만큼은 20대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상기된 표정이었고, 희끗해진 머리와 눈가의 주름은 숨길 수 없었지만 열정 하나만큼은 1020 아이돌 팬들의 부모세대 유전자다웠다.
대기업 팀장님, 호프집 여사장님, 카세트 테이프를 꺼내는 전파사 사장님, 전업주부까지. 오프닝 영상에 등장한 인물들처럼 각자의 위치에서 열심히 살아오면서도 마음 속 불꽃을 간직한 관객들은, 하늘 위로 솟구친 불꽃과 함께 그 시절로 타임슬립 했고, 높은 하늘로 비상하는 송골매의 모습에 뜨겁게 연호했다.
찢어진 청바지에 가죽점퍼 차림의 배철수, 구창모가 무대에 등장하자 객석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어쩌다 마주친 그대'로 뜨겁게 무대를 연 이들은 곧바로 "송골매를 사랑하는 분들 다들 모이셨나요"라며 '모여라'를 열창했다.
송골매 배철수. 사진|드림메이커엔터테인먼트

배철수는 "거의 40여년 만에 송골매로 구창모와 함께 무대에 섰다. 감회가 새롭다고 해야 할까. 이렇게 많이 오실 줄 몰랐는데 이 자리에 와주신, 송골매를 사랑하는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린다"고 인사했다.
구창모는 "살이 떨릴 정도로 흥분하고 있다. 흥분하다 보니 박자도 놓친 것 같다"면서 "무대 밑에서 나오는데 코 끝이 찡하고 목이 메더라"고 솔직한 심정을 밝혔다.
배철수는 "꿈인지 생신지 얼떨떨하다. 헤어스타일도 바꾸고 기타를 매고 있으니까 20대 때로 확 돌아간 것 같다"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구창모의 보컬은 전과 다름없이 단단했다. 시종 감격에 겨운 듯 머쓱함을 숨기지 못한 배철수의 카리스마도 여전했다. 두 사람은 한 시대를 풍미한 '전설'답게 애써 의식하지 않아도 멋짐이 배어나오는 그룹사운드의 진수를 보여줬다.
◆ 명불허전 레퍼토리·여유만만 토크…공연 몰입도&재미↑
"아마도 대한민국에 락 콘서트 관객 평균 연령이 오늘 제일 높을 것 같아요. 평균 연령이 35세? 아니 45세 정도 될 것 같은데요." / "박수 치면 건강에도 좋습니다"
박수 유도가 이토록 자연스러울 수 있을까. 셀 수 없이 펼쳐진 명곡선과 함께 공연 내내 여유 만만. 소탈하고 편안한 소통이 이어졌다. 배철수와 구창모는 서로에 대한 애정을 스스럼없이 고백하는가 하면 언제 그랬냐 싶게 투닥거리는 모습으로 보기만 해도 미소 지어지는 45년 우정을 과시했다.
송골매 구창모. 사진|드림메이커엔터테인먼트

특히 두 사람은 곡 레퍼토리에 맞춤형 토크로 짜임새 있는 구성을 이어갔다. 1978년 TBC '해변가요제'에서 선보였던 구창모의 데뷔곡 '구름과 나'와 배철수의 데뷔곡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를 선보인 뒤 이들은 당시 서로에게 첫눈에 반했던 소회를 드러냈다.
배철수는 "'해변가요제' 2차 예심 중 누가 노래를 하고 있는데 와 진짜 미성으로, 이게 남자인가 여자인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노래를 너무 잘 하더라. 들어가서 봤는데 구창모씨가 '구름과 나'를 부르고 있는데, 그 때 너무 놀랐다. 그 때부터 반했다"고 말했다.
이에 구창모는 "당시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라는 곡을 모르고 있었는데 전주부터 예사롭지 않더라. 들어가서 봤더니 활주로 팀, 그것도 배철수가 드럼 치면서 노래를 부르더라. 정말 멋있었다. 나도 반했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그런가하면 구창모가 '방황'을 선보인 뒤 배철수는 구창모가 송골매를 탈퇴하고 솔로 활동을 한 점을 언급하며 "아들 낳으면 배신 배반 이렇게 지으려 했었다"고 너스레 떠는가 하면 "사실은 진심으로 구창모가 잘 되길 바랬다"고 말해 훈훈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구창모는 "배철수는 늘 가까운 곳에서 응원도, 성원도 많이 해줬다. 솔로 데뷔도 배철수와 상의를 많이 했었다. 사실 가슴 한 구석엔 어두운 마음도 있었는데 그 때도 배철수가 많이 응원해줬다"고 말했다.
구창모의 말에 배철수는 "분명한 건 저는 구창모를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했다는 것"이라며 '처음부터 사랑했네'로 자연스럽게 곡을 이어갔다.
송골매. 사진|드림메이커엔터테인먼트

◆ '어쩌다 마주친 그대'·'모두 다 사랑하리' 9500 관객 떼창 '장관'
이날 송골매는 '처음 본 순간', '한줄기 빛', '문을 열어', '사랑하는 이여 내 죽으면', '아가에게', '아득히 먼 곳', '빗물'. '하늘 나라 우리님' 등 다수의 히트곡을 선보였다. 또 '희나리', '외로워 외로워', '아픈만큼 성숙해지고' 등 구창모 솔로곡과 '이빠진 동그라미', '사랑 그 아름답고 소중한 얘기들', '그대는 나는' 등 배철수 솔로곡 등 다채로운 구성으로 매력을 더했다.
공연은 막바지로 향할수록 뜨겁게 타올랐다. '탈춤'으로 흥을 돋운 관객들은 '세상만사'에선 알아서 기립해 스탠딩 공연으로 만들어갔다. 팬들의 뜨거운 떼창에 송골매 역시 불꽃을 태우듯 강렬한 사운드로 화답했다.
'내마음의 꽃 + 길지 않은 시간이었네'에 이어진 마지막 곡은 '새가 되어 날으리'였다. 가슴을 뛰게 하는 장엄한 사운드에 비장한 표정의 배철수, 구창모의 열창이 더해지며 다시 날아오른 송골매의 열망 그 자체를 보여줬다.
앙코르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 듯 '어쩌다 마주친 그대' 그리고 '모두 다 사랑하리'였다. 송골매는 관객 전원을 기립시키며 '어쩌다 마주친 그대'를 함께 불렀다. 객석을 가득 메운 9500명 관객들이 입 모은 떼창이 마스크를 뚫고 체조경기장에 천둥처럼 울려 퍼졌다.
진짜 마지막 선곡을 남겨둔 배철수의 눈가는 먹먹함에 촉촉해졌다. "이런 날이 오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며 쉽게 말을 잇시 못한 그는 "기적 같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평생 저희에게도 잊지 못할 시간, 순간인 것 같다"고 말했다.
구창모 역시 "오늘 이 시간이 영원히 가슴 속에 남을 것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의 흥분이 지금도 가라앉지 않는다. 정말 감사하다. 사랑한다"며 '모두 다 사랑하리'를 소개했다. 다시 한 번 현장의 관객들은 마치 한 몸이 된 듯 송골매와 함께 노래했다. 모두의 마음 속 불꽃이 송골매의 '열망'과 함께 타올랐다.
송골매 전국투어 콘서트 '열망' 서울 공연은 12일 같은 장소에서 한 번 더 이어진다. 이후 오는 24~25일 부산 벡스코, 10월 1, 2일 대구 엑스코, 10월 22일 광주여대 유니버시아드 체육관, 11월 12, 13일 인천 송도컨벤시아로 그 열기를 이어가며 2023년 3월에는 미국에서도 공연될 예정이다.
[박세연 스타투데이 기자][ⓒ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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