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국가 배상 인정' 판단 바꾼 이유는…소급 적용은 안 돼
입력 2022-08-30 19:00  | 수정 2022-08-30 19:30
【 앵커멘트 】
이번 판결로 긴급조치로 억울한 옥살이를 겪었던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국가책임이 인정되어 배상받을 수 있는 길이 새롭게 열렸는데요.
법조팀 민지숙 기자와 알아보겠습니다.

【 질문1 】
박정희 전 대통령이 긴급조치 9호를 발령한 것이 지난 1975년인데요.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잡혀간다?' 뭐 그런 내용였지요?

【 기자 】
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2년 유신헌법으로 개헌하면서 대통령이 '긴급' 조치를 할 수 있다는 내용을 넣었습니다.

이후 내려진 9번의 긴급 조치는 박 전 대통령의 독재를 상징하는데요.

그 중 긴급조치 9호는 '유언비어를 날조 유포'한 자를 영장 없이 체포하겠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습니다.

"대통령 나쁘다" 이 한마디로 징역까지 살 수 있었던 건데요.

특히, 정치권 인사나 운동권 대학생을 대상으로 했던 1~8호와 달리 9호는 전 국민의 입과 귀를 막겠다는 특단의 조치였습니다.


택시에 탄 손님이 유신 체제에 부정적인 말을 하면 택시 기사가 경찰서로 직행하는 일까지 벌어졌고요.

당시 긴급조치 위반자는 1천200여 명에 달했습니다.

【 질문2 】
근데 2013년에 이미 헌법재판소가 위헌 판결 내리지 않았나요? 그렇다면, 국가가 위반자들에게 배상을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 기자 】
네, 그렇습니다.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 긴급조치에 대해 2010년 대법원이 '무효' 2013년 헌재도 '위헌' 결정을 내렸는데요.

이를 근거로 재심이 진행된 결과 800여 명은 무죄 판결을 받아 명예를 회복했습니다.

하지만, 국가 배상 문제는 이야기가 달랐는데요.

지난 2015년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원은 "긴급조치가 고도의 '정치 행위'일뿐, 민법상 배상 책임은 없다"는 취지의 판결을 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법률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는 근거를 달아 논란이 컸습니다.

【 질문3 】
그런데, 긴급조치에 대해 과거에는 배상 책임은 없다고 했다고, 이번에 판단을 바꾼 이유는 뭔가요?

【 기자 】
먼저 국가가 배상해야 할 '불법행위'라고 판단하기 위해서는 고의나 과실이 있었음이 확인돼야 합니다.

2015년 대법원도 검사·경찰·수사관의 수사·기소가 개인적 불법행위에 해당하는 경우에만 국가의 배상 책임이 성립한다고 설명했는데요.

하지만, 이를 증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워 결과적으로 국가배상 판결을 받는 것은 불가능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대법원은 긴급조치처럼 공무원 다수가 조직적으로 관여했다면 대통령이나 경찰, 판검사 개개인이 아닌 전체적 행위만으로 불법 행위로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공무원 개개인의 불법 행위를 입증할 필요까진 없다는 얘기입니다.

【 질문4 】
그럼 이미 국가배상 재판에 진 사람들도 배상받을 수 있게 되는 건가요?

【 기자 】
그건 아닙니다.

올해 초 기준 '긴급조치 9호' 관련 손해배상 소송은 대법원에 올라온 사건만 24건, 하급심에는 9건이 있고요. 다른 긴급조치 관련 사건은 더 많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소급 적용이 안 되는 만큼, 이미 패소 확정 판결을 받은 경우에는 국가 배상을 받을 가능성이 낮습니다.

▶ 인터뷰 : 유영표 / 긴급조치 피해자
- "국가배상 받을 권리를 부당하게 박탈당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 피해자들의 권리회복을 위해, 대법원이 결자해지 차원에서 실질적인 해결방안을 마련할 것을 호소합니다."

다음달 퇴임하는 주심 김재형 대법관은 "이 판결이 불행한 역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지만, 피해자들은 뒤늦은 판결에 한숨을 쉬고 있습니다.

【 앵커 】

영상취재 : 강두민 기자
영상편집 : 송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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