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적인 주택임대차 제도는 전세다. 세입자들은 대체로 전세를 선호한다. 집주인에게 일정 금액의 보증금을 맡기면 매달 꼬박꼬박 현금을 내지않고도 2년간 살 수 있고 나갈때 원금을 되찾을 수 있기때문이다. 전세 보증금이 모자라 은행에서 전세대출을 받아도 이자가 월세보다 싸 그동안은 세입자에게 전세가 유리했다.
그랬던 전세가 월세에 밀리고 있다. 30일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5월 전국의 전월세 거래는 총 40만4036건으로, 이 가운데 월세는 59.5%(24만321건)를 차지했다. 역대 최고치다. 월세 비중은 지난 4월 50.4%를 기록하며 통계를 작성한 2011년 이후 처음으로 50%를 넘어섰는데 한달만에 9.1% 포인트가 뛴 것이다.
'월세 시대'가 가속화되고 있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임대차2법이 도입되면서 기존 주택에서 4년 거주를 채우는 임차인이 늘어 전세 매물이 줄어든데다 집주인들이 4년 치 인상분을 한 번에 올리면서 상승분 만큼을 월세로 받는 경우가 급증한 것이 원인으로 꼽힌다. 보유세 부담이 왕창 늘어난 집주인들이 전월세를 올려 부담을 전가하려는 움직임도 한몫했다.
최근 전세의 월세화가 심화된 것 데는 금리상승이 큰 영향을 미쳤다. 전세대출 금리가 치솟으면서 전세를 월세로 돌릴 때 적용하는 비율인 '전월세전환율'을 웃도는 이례적인 현상이 나타났다. 저금리시대에는 전세대출 금리가 통상적으로 전월세전환율을 밑돌았는데 최근 역전된 것이다. 전세대출 이자 부담이 늘다보니 "차라리 월세가 낫다"고 판단해 자발적으로 월세를 선택하는 세입자들이 늘고 있는 것이다. 가령 7억 전셋집에 거주하는 세입자가 전세자금 대출을 3억원 받을 경우 매달 부담해야하는 이자(금리 4.5% 적용)는 112만원 정도다. 이를 월세로 바꿀 경우 법정 전월세전환율(3.75%)을 적용하면 93만원선이다. 월세로 전환하는게 19만원이 적게 든다.
월세시대가 가속화되면서 '전세 종말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한국에만 있는 희귀한 주거제도이자 100년이 넘게 명맥을 이어온 전세는 과연 사라질까. 금리 인상이 계속될 경우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전세제도가 단기간에 소멸될 확률은 크지않다. 금리가 오르면 전월세전환율(기준금리+2%)도 결국 상승하게 된다. 부동산 가격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 살아나면 집주인들의 전세에 대한 선호도 커지면서 전세매물이 늘어날 수도 있어서다. 또한 고가전세의 경우 거액의 보증급을 세입자에게 돌려줘야하는 부담때문에 월세 전환이 쉽지않을 수 있다. 하지만 끊질긴 생명력을 유지해온 '전세의 운명'이 불안해진 것만은 사실이다.
[심윤희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