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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탁구 최고의 별’ 양하은은 자신과 싸운다 [국영호의 스포츠人사이드 #16]
입력 2022-06-30 07:00  | 수정 2022-09-27 20:05
올해 여자탁구에서는 이 이름을 빼놓을 수가 없다. 바로 양하은(28,포스코에너지)이다. 올해 국내 무대에서 굉장한 한 해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양하은은 지난 1월 종합선수권에서 여자복식과 혼합복식 2관왕에 오른데 이어 지난 5월 끝난 한국프로탁구리그에서 통합우승과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하고, 6월 춘계 실업탁구대회 때는 전관왕인 3관왕에 올랐다. 경쟁자들의 부상과 이탈 등 여러 변수가 있긴 했지만, 근본적으로 양하은의 기량이 물올랐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양하은은 MBN 스포츠 전문 토크쇼 ‘스포츠야에서 최고의 한 해이기도 하면서 영광스러운 한 해”라고 소감을 밝혔는데, 가만히 얘기를 들어보니 상대가 아닌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 결과인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은 양하은 내면의 이야기에 집중해보려고 한다.

자기 칭찬

개인 수상뿐만 아니라 양하은이 에이스로 활약한 포스코에너지는 올해 사상 처음 열린 프로탁구리그 정규리그의 마지막 경기에서 삼성생명이 패하면서 극적으로 1위를 확정하더니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삼성생명을 제압하고 초대 챔피언에 올랐다. 그 중심에 에이스로 활약한 양하은이 있었기에 MVP가 주어진 것이다.

-요즘 행복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아요?
행복하기도 하고 얼떨떨해요. 뭔가 갑자기 다 찾아온 느낌이라서요.”

-한 대회 3관왕을 차지한 적이 있나요?
3관왕은 고교 이후로 이번 달 춘계대회가 처음인 것 같아요. 사실 올해 1월에 기회가 있었어요. 종합선수권 대회에서 2관왕을 하고나서 단식 결승에 올랐지만 아쉽게 놓쳤어요(삼성생명 이은혜에게 패배).”

-무엇보다 최고는 프로탁구리그 초대 대회 통합우승과 MVP죠?
소속팀(포스코에너지)이 (프로탁구리그) 우승을 하고 나서도 굉장히 얼떨떨했는데, MVP까지 주시니까 ‘아, 나 굉장히 수고했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사실 냉정하게 말해 양하은을 국내 1인자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국내에서는 기량이 출중한 선수가 많다. 같은 팀의 전지희를 비롯해 '무서운 10대' 김나영과 신유빈(대한항공), 라이벌로 꼽히는 이은혜 등 차고 넘친다. 양하은은 이런 쟁쟁한 선수들에게 밀려 올해 국가대표에 선발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연달아 독보적인 성과를 냈으니 박수받기 충분해 보인다.

3인자 노이로제

양하은은 172cm의 큰 키 등 타고난 신체에 청소년 국가대표 출신 어머니(김인순 씨)로부터 물려받은 '탁구 DNA', 여기에 후술하겠지만 ‘노력을 더해 어릴 적부터 국제대회에서 호성적을 내왔다. ‘제2의 현정화라고도 불렸다.

그동안 국제대회에서도 좋은 성적을 냈는데, 주요 기록을 보면 한 가지 눈에 들어오는 부분이 있다. 아시아선수권(2012, 2013, 2015) 3번의 동메달, 아시안게임(2014, 2018) 2번의 동메달, 유니버시아드(2015) 3개의 동메달, 세계팀선수권(2012, 2018) 2개의 동메달, 월드컵 단체전(2019) 1개의 동메달. ‘동메달, 혹은 3인자 노이로제로 부를 수 있을 정도로 유독 동메달이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나열해 보니 제가 동메달이 참 많네요. 하하.”

하나 빼놓긴 했는데 2015 쑤저우 세계선수권 혼합복식 금메달이다. 가장 좋은 성적이기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당시 중국 선수(쉬신)와 함께 조를 이뤘고, 대회도 중국에서 열려서 부담이 많이 됐어요. 그런데 시상식에서 상상만 했던 애국가가 울리더라고요. 태극기를 바라보는데 눈물이 날 것 같더라고요. 지금도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두근 거리네요.”(세계선수권 최초 타 국적 선수끼리 금메달 합작)

-농담입니다만, 중국에 잘 묻어간 것 같은데요?
하하, 잘 묻어갔죠. 위기가 굉장히 많았는데 저도 나름대로 잘했기 때문에 금메달을 따지 않았나 생각해요.”

이렇게 과거 국제대회에서 정상을 눈앞에 두고 여러 번 미끄러진 경험이 켜켜이 쌓였기에 올해 국내 무대를 석권한 양하은이 지금 꿈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나만의 집중법

양하은이 이렇게 빛을 보는 데에는 경기를 앞두고 ‘초집중 모드에 들어가는 것도 비결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선수의 그것과는 조금 달라 보인다. 경기 전 ‘이미지 트레이닝에 몰두하니 굳은 표정 일색이고, 그래서 주변에서 농담하기도 힘들다고 한다. ‘고참이 심각하니 로커룸 팀 분위기가 어떨지 조금 상상이 간다.

프로탁구리그 관계자는 경기 전에 로커룸 가보면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팀들이 있는데, 포스코에너지는 양하은 선수가 경기에 워낙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다 보니 (다른 팀과) 비교가 된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전혜경 포스코에너지 감독은 경기 전에는 선수라면 누구나 예민하다. 감독인 나도 예민할 때가 있다. 양하은 같은 루틴은 누구나 가진 예민함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경기를 앞두고 ‘나 건들면 국물도 없다 맞나요?
하하, 맞아요. 어떻게 아셨죠? 소문이 났나. 저는 경기 전에는 팀 동료와도 얘기를 잘 안하고 에너지를 아껴요. 혼자서 계속 경기를 생각하거나 마인드 컨트롤 하거나 해요. 여유를 가지면 좋을 텐데, 제 성격이 그렇게 안되는 것 같아요.”

-‘맏언니인 전지희 선수가 부상으로 중도 이탈하면서 그런 부담이 더 컸던 걸까요?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전)지희 언니가 빠지면서 제가 맏언니가 됐고, 저희 팀에 어린 선수들이 많기 때문에 책임감이 더 강해지면서 ‘조금 더 집중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거 아니면 안된다, 내가 안하면 안된다 이런 마음을 강하게 먹었던 것 같아요.”

-프로탁구리그에만 있는 ‘에이스전은 그래서 부담이 더욱 심했겠는데요?
‘이렇게나 긴장을 해도 되나 싶을 정도로 긴장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약간 문제 있는 거 아닌가, ‘내 몸에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심장이 너무 뛴다 할 정도로 에이스전을 준비할 때는 항상 그랬던 것 같아요. 그런데 경기를 이기고 나와야 하는 거니까 경기 내용만 생각하다보면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어요.”

양하은은 정규리그에서 18승3패로, 라이벌인 이은혜(삼성생명, 22승5패)에 이어 개인 2위를 기록했다. 복식까지 범위를 넓히면 22승4패로 이 역시 이은혜(25승6패)와 팽팽했는데, 양하은이 고비마다 알토란 같은 기여를 했기에 때문에 MVP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자기 최면

양하은은 또한, 자신만의 일종의 루틴도 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중얼중얼 혼잣말을 하는 것인데, 자기 최면과도 같다. 프로탁구리그가 전 경기 유튜브로 생중계되다보니 눈치가 빠른 팬(시청자)이라면 알아차렸을 수 있다.

-자신에게 무슨 얘기를 하는 건가요?
멘털(정신)적인 걸 얘기를 해요. ‘상대를 봐야 돼, ‘득점 내려고 하지마 등이에요. 저는 경기 중에 제 자신한테 빠질 때가 굉장히 많아요. 실수를 하면, 안되는 것만 생각할 때가 많은데, 그렇게 하면 상대를 보지 못하게 되거든요. 상대와 대결하는 건데, 저한테 빠지면 안되니까 ‘나 말고 계속 상대를 보자라고 스스로에게 말을 거는 거예요. 단순한 건데 그렇게 자기 주문을 외우면 잘 되더라고요.”

-다른 선수들도 따라하는 것 같다는 얘기가 있더라고요?
정말요? 좋은 쪽으로 효과가 났으면 좋겠네요.”

-그런데, 이렇게 자신에게 최면을 걸고 몰아붙이고 나면 녹초가 될 것 같은데요?
맞아요. 경기 끝나면 ‘아,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아요. 숙소에 가도 계속 누워있고, 다른 생각이 들지 않아요. 저 완전 집순이예요. 하하”

한눈 팔지 않고 한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고 그 안에 모든 걸 쏟아붓고 나오는 성격으로 볼 수 있겠다.

내향적이고 계획적

그래서 양하은에게 요즘 많이 하는 MBTI 성격 테스트를 해봤느냐고 물었더니 물론 해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외향적인 성격인 E가 아닌 내향적인 I로 시작하는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MBTI는 어떤 결과가 나왔나요?
ISFJ더라고요. (결과대로) 제 성격이 많이 계획적인 건 맞는 것 같아요. 계획하고 뭔가 짜놓지 않으면 많이 불안한? 그래서 하루 쉬는 것도 불안해서 계속 계획을 짜고, 이 때는 일어나서 이거 해야 하고, 계속 이렇게 사는 것 같아요.”

-경기를 대하는 태도가 성격 테스트에 그대로 나타난 것 같은데요?
‘E였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거든요. 내 안의 에너지를 밖으로 쏟아내지 않고, 지나치게 안으로 쏟는 것 같아서요. 그런데 잘 되지 않더라고요.”

천재 아닌 노력형

위에서 언급했듯이 양하은은 여러 천재형 조건을 갖췄지만, 성격에 비춰볼 때 노력형 선수에 조금 더 가깝다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될 때까지 연습해야 하는 스타일이라고 스스로 설명한다.

저는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잘하다 보니까 (천재형이라고) 그렇게 불리기도 했던 것 같은데, 저는 천재형이었으면 좋겠어요. 하하. 열심히 노력해서 된 거지 신체적 조건은 상관이 없는 것 같아요. 조금이라도 집중이 되지 않으면 경기가 바로 풀리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매일 매일 조금 더 연구하려고 하는 것 같아요.”

-그렇게 해서 수상한 프로탁구리그 MVP라 더욱 각별할 것 같네요?
(수상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프로리그 개막한다고 했을 때 ‘어우포(어차피 우승은 포스코에너지)란 말이 나왔지만, ‘우리가 우승이다라는 생각하지도 못했어요. 일반대회와 달리 리그는 경기 수가 굉장히 많았기 때문에 변수도 그만큼 굉장히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리그를 처음 치러보니 힘들었죠? 더 노력도 했을 테고요?
우선 체력적으로도 힘들었고, 단체전으로도 계속 준비해야 했기 때문에 정신적으로도 부담이 많이 돼서 그게 가장 힘들었어요. 단체전을 계속 준비해야한다는 게 편하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이에요. 개인전이야 내 일이지만, 단체전은 출전하지 못한 선수들까지 생각해야 하기 때문에 더욱 어깨가 무겁고 힘들었어요.”

-프로리그 마치고도 온전히 쉬지는 못했을 것 같네요?
이번에 특별휴가를 10일 받았는데, 최근 5년간 열흘을 쉬어본 기억이 없어요. 4~5일 정도는 쉰 것 같은데. 지금은 정말 마음이 편하고 행복한 휴가를 즐기고 있긴 하지만, 탁구가 (제게는) 너무 강박적인 운동이라서 쉴 때는 정말 좋은데 다시 운동을 시작하면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저는 불안해서 연습해요. 늘 불안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쉴 때도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요.”

양하은은 프로탁구리그 첫 시즌 우승 지분을 묻자 웃으면서 팀 전체의 60%라고 했다. 엄청난 성장세로 신유빈과 ‘10대 쌍벽을 이루는 김나영도 막판에 에이스 역할도 해내 후배로서 너무나 고맙다고 했다. 그만큼 스스로 노력했기에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말 같다. 올해 열릴 예정이던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연기되면서 추후 아시안게임 대표로 선발될 기회를 다시 잡을 수도 있다. 그러고 보면 ‘노력하는 자에게 행운이 따라온다', '준비가 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는 말도 생각난다.

기존 강자와 라이벌, 신예들이 치고 올라오면 양하은은 그 사이에서 또다시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자기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싸워가며 정상을 지키보길, 설령 내려온다고 해도 자기 최면으로 자신을 몰아붙여 다시 올라서서 팬들을 열광하게 만들길 기대한다. 그게 점차 경쟁력을 찾아가는 탁구를 흥하게 만들 길일 것이기도 하다.

[국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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