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용산 참사', 발생부터 타결까지
입력 2009-12-30 13:36  | 수정 2009-12-30 16:02
【 앵커멘트 】
6명이 숨진 용산참사는 발생부터 타결까지, 무려 1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사건 발생에서 1년여 동안 지속된 우여곡절을 갈태웅 기자가 정리했습니다.


【 기자 】
2009년 새해가 밝은지 한 달도 안 된 1월 20일.

서울 용산 한복판에 거세 불길이 치솟았습니다.

경찰 강제진압에 철거민들이 맞서다가 화재가 발생했고, 불은 순식간에 건물을 덮쳐 6명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과잉 진압 논란 끝에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건 발생 20여 일 만에 사퇴했습니다.

이후에도 피해자 유족과 협상 파트너인 정부, 서울시의 갈등은 계속됐고 장례도 미뤄졌습니다.


재판 과정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지난 5월에는 공판기일 변경이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변호인이 변론을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10월 3일, 추석을 앞두고 정운찬 총리가 용산참사 분향소를 방문하면서 사태 해결 조짐을 보이기도 했지만 금방 결과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정 총리의 방문이 있은지 보름여 만인 10월 21일에는 경찰관 등을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된 철거민 7명에게 징역 5년에서 6년 중형이 선고됐습니다.

끝없는 평행선을 달렸던 양측은 그러나 2010년 새해를 앞두고 보상방안에 극적으로 합의해 이제 미뤘던 장례도 치르고 유족도 새 출발을 하게 됐습니다.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안겨준 2009년의 '악몽'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한 도심 개발 개선책이 모두의 숙제로 남아 있습니다.

MBN뉴스 갈태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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