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12살 성추행' 7년 선고…대법 "다시 판단하라" 이유는
입력 2022-05-08 16:24  | 수정 2022-05-08 16:24
영상진술 증거로 1·2심 징역 7년 선고…대법원은 "다시 판단하라"
'피해자 영상진술' 위헌 영향...법조계 '2차 피해 우려' 현실화
대법 "영상재판 적극 지원…해바라기센터 연계 증인신문 확대 예정"

미성년를 상대로 성범죄를 저지른 남성에게 선고된 실형 판결이 대법원에서 파기됐습니다.

아동·청소년 피해자의 진술이 담긴 영상물을 법정 증거로 쓸 수 있게 했던 성폭력처벌법 조항에 지난해 12월 위헌 결정이 내려졌기 때문입니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성폭력처벌법 위반(13세 미만 미성년자 위계 등 간음·추행) 혐의로 기소된 49살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하급심 법원으로 돌려보냈다고 밝혔습니다.

A씨는 2020년 당시 12살이던 B양이 잠을 자는 동안 신체를 만지는 등 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습니다.


지난해 1심과 2심은 '유사성행위를 하거나 추행한 사실이 없다'는 A씨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고 징역 7년형을 선고했습니다.

주된 증거는 피해자 B양의 진술 기록과 수사기관 조사 과정을 촬영한 영상물이었습니다.

A씨는 영상물과 속기록을 증거로 쓰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지만, 하급심은 성폭력 피해 미성년자를 보호하는 차원에서 B양을 법정에 부르지 않았습니다.

종전 성폭력처벌법 30조 6항은 19세 미만이거나 장애로 인해 사물변별·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성폭력범죄 피해자의 진술이 조사에 동석한 신뢰관계에 있는 사람이나 진술조력인으로부터 '진정한 것'이라는 점이 인정되면 증거로 쓸 수 있다고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헌법재판소가 이번 사건의 2심 선고 2개월여 뒤인 지난해 12월 성폭력처벌법 30조 6항 중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 부분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는 점입니다.

헌재는 이 조항이 미성년 성폭력 피해자가 법정에 직접 나와 증언하는 동안 받을 수 있는 2차 피해를 막기 위한 것이므로 정당성이 인정된다면서도 피고인(가해자)의 반대신문권을 사실상 배제해 방어권을 과도하게 제한했다는 판단을 내놨습니다.

이에 '19세 미만 성폭력범죄 피해자' 부분은 헌재의 결정 즉시 효력을 상실했습니다.

대법원에서는 이런 헌재의 위헌 결정이 '결정 이전'에 2심 판결이 나온 A씨 사건에도 그대로 적용되는지가 쟁점이 됐습니다.

청소년성보호법 26조 6항이 위헌인 성폭력처벌법 30조 6항과 같은 내용이라는 점도 또 다른 쟁점이었습니다.

청소년성보호법은 위헌 결정을 받지 않았지만 동일한 내용의 다른 법 조항이 위헌이면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 적법하느냐를 놓고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대법원은 우선 성폭력처벌법 30조 6항에 대한 위헌 결정은 이번 사건에도 효력을 미친다고 판단했습니다.

형벌이 아닌 조항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은 원칙적으로 '결정 이후'의 사건에만 효력이 있습니다.

그러나 A씨 사건처럼 헌재의 위헌 결정 당시 이미 3심이 시작돼 심리가 진행 중이었다면 위헌 결정 역시 소급해 적용해야 한다고 봤습니다.

또 대법원은 청소년성보호법 26조 6항이 아직 유효한 법률이기는 하지만 성폭력처벌법과 같은 이유에서 과잉금지 원칙 위반일 수 있다고 봤습니다.

따라서 2심은 위헌적 결과를 피하기 위해 피해자를 증인으로 소환할 필요가 있는지 등을 다시 심리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성폭력처벌법 30조 6항의 위헌 결정은 B양과 같은 미성년 피해자가 2차 피해를 겪을 수 있기 때문에 법조계와 피해자 보호단체들의 우려를 낳았습니다.

대법원 관계자는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피고인과 분리·독립된 장소에서 증언해 2차 피해를 최소화하면서도 피고인의 반대신문권 또한 조화롭게 보장하는 방안으로 영상재판의 활용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또 여성가족부와 협의해 아동·청소년 피해자가 법정 대신 의료기관에 설치된 해바라기센터에서 진술하는 '해바라기센터 연계 영상증인신문'을 지난달부터 시범 실시 중이라고 덧붙였습니다.

[ 이성식 기자 | mods@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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