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실확인] "이동권 약속, 20년 동안 지켜지지 않았다"...진실은?
입력 2022-04-26 09:30  | 수정 2022-04-27 16:01
지난 22일 경복궁역에서 진행된 출근길 지하철 시위
엘리베이터 설치되지 않은 서울시 지하철 역사 아직 '21곳'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 도입도 약속 지키지 못해

지난 13일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연대(이하 전장연) 공동대표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토론을 가졌습니다. 박 대표는 토론 중 20년 동안 정부와 지자체가 장애인 이동권 공약을 지키지 않고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다음은 박경석 대표의 정확한 발언 내용입니다.

"20년 동안 양당이 지배했지 다른 당이 지배하지 않았지 않습니까? 국민의 힘, 더불어민주당 두 당이 지배했던 이 20년의 세월에 둘 다 다 약속을 안 지킨 거예요. 우리한테는."

두 거대 정당이 번갈아 집권했던 행정부, 또 두 거대 정당 소속 지자체장은 20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 공약을 어떻게 약속했고, 얼마나 지켰는지 살펴봤습니다.

장애인도 이동할 권리가 있다고 투쟁한 역사는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2001년 1월 22일 설 연휴를 앞두고 오이도역에서 휠체어 수직 리프트를 이용하던 70대 장애인 여성이 추락해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2001년 2월 6일, '서울역 지하철 1호선 철로 점거 농성'을 시작으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지하철 역사 내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고 장애인이 탈 수 있는 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을 마련해 달라고 요구한 겁니다.


지하철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했을까?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본격화되면서 ‘1역 1동선이란 표현이 대두됐습니다. 장애인 등 교통약자가 지하철 입구에서부터 승강장까지 혼자서 이동할 수 있게 시설을 마련하는 것을 뜻합니다. 1역 1동선이 가능하기 위해선 역사 안에 엘리베이터 설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오이도역 사고 후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서울시내 모든 지하쳘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공약했습니다. 실제로 2003년부터 2006년까지 160여개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됐지만 약속한 ‘2004년까지는 지키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2015년,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다시 2022년까지 서울시내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서울시내 21곳의 역사에는 엘리베이터가 없습니다. 서울교통공사에 따르면 청량리역 등 올해 엘리베이터 공사가 완료되는 역사는 5곳이고 강동역을 포함해 공사가 예정돼 있거나 공사를 검토 중인 역사는 16곳에 달합니다. 서울시는 2024년까지 신설동역, 까치산역, 대흥역을 제외하고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한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남은 3개 역(신설동역, 까치산역, 대흥역)엔 언제 엘리베이터가 설치될지 확실하지 않습니다.

서울시내 엘리베이터가 미설치된 21개 역사11

시점도 문제입니다. 서울시는 완벽한 ‘1역 1동선 목표시점을 2024년으로 미뤘습니다. 오이도역 사고 이후 1역 1동선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시가 분명히 노력했지만 약속했던 시점이 두 차례나 밀린 것 또한 사실입니다. 지하철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는 공약이 20년 넘게 지켜지지 않은 겁니다.

저상버스 도입은 지켜졌을까?

지하철만큼 시민들이 많이 이용하는 대중교통인 시내버스는 상황이 어떨까요. 장애인이 시내버스를 이용하기 위해선 차체가 지상으로부터 낮고 계단이 없어 타고 내리기가 비교적 쉬운 저상버스 도입이 필요합니다.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이 제정되면서 저상버스 도입의 법률적 근거가 마련됐습니다. 교통약자법에 따르면 국토교통부장관은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을 위한 5년 단위의 계획을 수립해야 하고 계획에는 반드시 '저상버스 및 휠체어 탑승설비를 장착한 버스의 도입에 관한 사항'이 포함돼야 합니다. 교통약자법을 근거로, 국토교통부는 2007년부터 5년마다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적을 보면 늘 계획에 미치지 못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2011년에, 5년 뒤인 2016년까지 전국의 저상버스 도입률을 41.5%까지 올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렇지만, 2016년 도입률은 22.3%에 그쳤습니다. 스스로도 결과치가 '저조'하다고 평가한 국토교통부는 "지자체의 저상버스 도입 매칭 예산 확보 부족 등으로 인해 목표 대비 국비지원 실집행 규모가 부족했다"고 이유를 밝혔습니다.

전국 저상버스 도입률 통계


2011년 국토교통부는 2012년부터 2016년까지 저상버스를 9594대 도입하려 했지만 실제 보급은 3621대밖에 되지 않았고 4565억원을 지원하려던 계획도 1659억원을 지원하는데 그쳤습니다

2016년 12월,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3차 증진계획 역시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국토교통부는 저상버스 도입률을 2021년이 되면 42%까지 끌어올리겠다고 밝혔지만 2020년 전국 평균 도입률은 27.8%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저상버스 도입에 손을 놓고 있었다고 평가하긴 무리가 있습니다. 2022년 1월부터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따라 시내버스를 대폐차 할 경우 저상버스를 의무적으로 도입하도록 법이 바뀌었습니다. 2016년부터 5년 동안 시내버스 폐차 대수 가운데 저상버스로의 전환율은 전국 평균 68.3% 였습니다. 2016년 기준으로 전환율이 50%가 되지 않는 부산, 경기, 전남 지역에선 앞으로 저상버스 도입이 다른 지역보다 활발하게 이뤄질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정부가 목표로 설정했던 저상버스 도입률을 지키지 못한 것은 분명하고, 정부와 지자체가 20년 넘게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판은 피하기 어렵습니다.

특별교통수단 도입은 어떻게 진행됐을까

특별교통수단은 어떻게 보급되고 있을까요. 특별교통수단이란 이동에 심한 불편을 느끼는 교통약자의 이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휠체어의 탑승 설비 등을 장착한 차량”을 뜻합니다. 각 지자체장은 장애 정도가 심한 장애인 150명 당 1대 이상의 특별교통수단을 운행해야 합니다. 이는 콜택시 형태나 셔틀 버스 형태로 운영될 수 있습니다.

수치적으로 볼 때 이 부분만큼은 정부가 약속을 지킨 것으로 보입니다. 2016년 특별교통수단 전국 평균 보급률은 103.3%로 목표치를 채운 상황입니다. 하지만 지자체별로 뜯어보면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국토교통부는 강원, 충북, 충남, 전남, 경북 등 광역 5개 지자체는 도입 기준이 미달돼 2021년까지 특별교통수단 보급률을 100%까지 올릴 수 있도록 재정지원을 약속했습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2021년 광역 5개 지자체 특별교통수단 도입률

2021년 기준으로 5개 광역 지자체는 아직 특별교통수단 목표 도입률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약속을 이행하지 못한 셈입니다. 지자체별로 특별교통수단이 법정 대수를 모두 충족한다고 하더라도 지금 운영되고 있는 법정 대수가 적정한가의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국토교통부는 현행 특별교통수단 법정 기준 보급대수는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의 이동 수요를 충족하기에 어려움”이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법정 보급대수 산정 기준과 실제 이용 대상자와의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차량이 부족해 특별교통수단을 타지 못하는 비율이 서울시에서만 40%에 달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 도입 정도를 평가한 2018년 국회입법조사처 연구 자료도 이 문제를 지적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17개 시도 중에서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을 상대적으로 고르게 확보한 지역은 부산, 대전, 광주 정도입니다. 강원, 충북을 비롯해 8개 시도는 저상버스 확보 수준이나 특별교통수단 운영수준이 낮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지자체장의 강한 도입 의지와 전적인 투자가 필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17개 시도 중에서 절반 정도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 미흡하단 지적입니다.

"20년 동안 공약 지키지 않았다"...'대체로 사실'

지난 23일 박경석 전장연 공동대표가 추경호 기획재정부 장관 내정자의 집 앞을 찾았습니다. 장애인 이동권을 포함해 장애인 인권을 보장하기 위한 예산을 확보해 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입니다. 박 대표는 현장에서 다시 한번 21년간 지켜지지 않은 요구를 들어 달라고 호소했습니다.

앞서 확인했듯이 정부와 지자체가 지하철 1역사 1동선을 위한 엘리베이터 설치나 저상버스와 특별교통수단 도입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다만 공약했던 내용을 결과로 보여주지 못한 것은 분명합니다. 따라서 박경석 대표가 여러 차례 주장했듯 정부와 지자체가 21년 간 장애인 이동권 공약을 지키지 않았다는 말은 대체로 사실로 확인됩니다.

사실확인이었습니다.

[ 이혁재 기자 / yzpotato@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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