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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민규 “이상화 금-금-은...저는 은-은-금 따야죠” [국영호의 스포츠人사이드#9]
입력 2022-04-06 13:13  | 수정 2022-07-05 14:05
※'스포츠人사이드'는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찾아봅니다.
프롤로그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며 벚꽃이 흐드러지기 시작하는 시기, 동계 종목 선수들은 겨울 시즌을 마치고 꿀맛 같은 방학을 보내고 있다. 지난 2월 열린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운도 느끼면서. 최근 올림픽 경향이 ‘최고 보단 최선에 방점이 찍히고 있다고는 하나, 최선을 다했어도 늘 아쉬움은 남기 마련이니 저마다 생각이 많을 것 같다.

자신의 기량을 모두 쏟아냈는데도 아주 미세한 차이로 2회 연속 올림픽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면 그 아쉬움의 크기는 어느 정도일까. 그것도 지난번엔 0.01초, 이번엔 0.07초 차라면 어떨까.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간판 차민규(30,의정부시청)가 그 주인공이다.

차민규를 MBN 스포츠 전문 ‘토크쇼 스포츠야에 초대해 얘기를 들어봤다.

찰나가 만든 차이

차민규는 4년 전인 2018 평창올림픽 남자 500m에서 34초42를 기록해 호바르 홀메피오르 로렌첸(노르웨이)에 눈깜짝할 시간인 0.01초 차 뒤져 은메달을 땄다. 이번 2022 베이징올림픽에서는 평창 대회 기록보다 0.04초 단축했지만, 가오팅위(중국)에 0.07초 차로 뒤져 또다시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Q.이번에도 은메달이라 시상대에서 표정이 굳었던 건가요?
메달 따서 기쁜 표정이에요. 사실 어렸을 때 한쪽 볼을 심하게 다쳐서 표정이 자유롭게 지을 수가 없어서 그 부분이 조금 콤플렉스예요. 그래서 항상 무표정한 것 같아요. 표정을 밝게 하려고 하는데, 한쪽만 (입꼬리가) 올라가서 약간 비웃는 것 같다는 얘기도 들었어요. 그래서 무표정을 한 것이라 모두 오해 없으시길 바랄게요.”

Q.레이스를 돌아보면 어느 부분에서 아쉬움이 있나요?
4코너에서 실수를 해서 그 부분을 생각을 하면 많이 아쉬워요. 그런데 크게 보면 코로나19 등 좋지 않은 환경 속에서도 은메달을 따서 기쁘기도 했습니다.”

Q.그 실수만 없었다면 금메달도 가능했겠어요?
워밍업 레이스 때 ‘왼발 스케이트 느낌이 불안하다란 생각이 들어서 다시 스케이트 날을 고치면 느낌이 달라질 수 있어서 감안하고 레이스에 들어갔는데, 마지막 코너에서 결국 삐끗했죠. 찰나의 실수가 500m경기에서는 큰 차이가 날 수 있어서 항상 (레이스 전에) ‘완벽한 경기를 하자고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고 들어가는데, 그게 아쉽게 됐죠. 그 실수만 아니었으면 0.07초는 더 빠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어서 아쉬워요.”

자신을 믿었다

차민규에게는 평창 대회 때 ‘깜짝 메달이라는 수식어가 뒤따랐다. ‘깜짝이란 단어에서 어감상 ‘행운이 떠오르기에 듣기에 좋지만은 않다고 했다(*언론에서 당초 예상치 못한 메달리스트란 의미에서 ‘깜짝이란 표현을 썼겠지만, 선수 당사자나 가족은 다르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측면이 있다).

차민규는 그런 이미지를 깨려고 베이징 무대를 더욱 별렀고, 마침내 해냈다. 레이스 직후 평창 때는 깜짝 은메달이라는 얘기가 있었는데, 또 한번 메달을 땄기에 (더 이상) 깜짝은 아니다”고 강조한 이유는 여기에 있다.

Q.평창 은메달과 베이징 은메달은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평창의 은메달이 ‘꿈을 이뤘다란 의미라면, 베이징의 은메달은 ‘증명해냈다는 의미의 메달인 것 같아요.”
긴 4년 동안 우직하게 ‘나는 옳았다는 믿음을 실행하려는 것, 결과로 실천했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과정의 중요성

차민규는 사실 베이징 대회 은메달을 획득하고도 또 ‘깜짝 소리를 듣긴 했다. 근거가 있다.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월드컵 시리즈에서 들쑥날쑥하며 부진했기 때문이다. 성적은 다음과 같다.

‘1차 18위, 2차 7위, 3차 13위, 4차 17위, 5차 불참.

여러 가지 사정으로 올림픽 이전까지는 최상의 경기력을 보여주지 못했으니 대한체육회는 물론, 미디어도 ‘이변이라고 다룰 수밖에 없었던 측면이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값졌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연구에 연구, 수정에 수정을 가한 끝에 마지막에 완성했다.

Q.대한체육회가 올림픽을 앞두고 ‘예상 금메달리스트로 꼽지 않은 게 자극이 됐나요?
서운함이 없다면 거짓말이죠. 베이징에서는 더 좋은 성적을 내고 싶었기에 아쉬웠어요. 월드컵 시리즈에서는 부상도 있었고, 스케이트 문제도 있어서 개선점을 찾으려는 시기였어요. 제가 스타트가 좋지 않기 때문에 포지션을 바꾸는 등 여러 시도를 했었어요. 그 결과가 올림픽에서 나온 것 같고요. 부상은 2014년 소치올림픽 선발전 때 오른발목과 발가락 연결 인대가 다 끊어졌던 건데, 아직도 완전하진 않아요. 다시 스케이트 타기까지 1년 정도 걸린 큰 부상이었어요. 그게 문제가 돼서 그 부위가 아직도 제 기능을 안 해서 통증도 있긴 해요.”

인생을 바꾼 승부수

차민규는 어떻게 보면 ‘늦깎이다. 보통 20세 전후로 두각을 나타내는데 반해 차민규는 25세 때인 2018년 평창 대회 때 올림픽에 데뷔했다. 올해 29세, 한국나이로 치면 서른 살이다.

이유가 있다. 쇼트트랙을 하다가 뒤늦게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전향을 했던 영향이다. 고교까지 쇼트트랙을 했고, 대학 때는 스피드스케이팅과 병행을 하다가 실업팀 입단과 함께 스피드스케이팅에 집중했다. 한국 동-하계 올림픽 최다 메달 타이(6개/금2 은3 동1) 주인공인 ‘장거리의 역사 이승훈(34)처럼 보통의 전향 선수들과 달리 단거리를 선택한 것도 특이하다.

혹독한 연습과 세계적인 선수들에 대한 지독한 연구가 있기에 지금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Q.종목을 전향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몸싸움을 잘 못하다 보니까 쇼트트랙에서 성적을 내는 게 쉽지 않았어요. 대학교(한체대)에 가서 전향 권유를 받았는데, 가능성이 있어 보여서 결정하게 됐어요.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가 제 성향에 맞는다는 것도 알게 됐고요. 그래서 대표팀에 조금 늦은 나이에 선발이 되고 이후에 좋은 성적을 내게 됐는데, 이런저런 스토리가 있어서 대기만성형이라고 해야할까요. 조금 늦게 꽃을 피우게 된 것 같아요.”

차민규는 이 대목에서 울컥했는데 이유를 묻자 힘들었던 생각이 나서”라고 말했다.

Q.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스피드스케이팅으로 시작할 걸 그랬다는 생각 들지 않나요?
아니에요. 저는 어디 가서 잘하는 게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코너링을 잘한다고 얘기를 하는데요. 쇼트트랙을 탔던 게 코너링을 잘할 수 있던 계기였기 때문에 다시 해도 쇼트트랙을 할 거란 생각을 갖고 있어요.”

‘이상화란 새 목표

차민규는 이제는 어엿한 국내 단거리 빙속의 간판이다. 남자 500m에서 2006년 토리노 대회 이강석(동메달), 2010년 밴쿠버 대회 모태범(금메달)에 이어 2018년 평창 대회와 2020년 베이징 대회에서 국내 남자 선수 최초로 2회 연속 올림픽 메달을 획득해 스프린터 계보를 이었다.

여자 500m에서는 이상화가 이미 전설, 흔히 말하는 레전드다. 이상화는 2010년 밴쿠버와 2014년 소치 대회에서 2회 연속 금메달을 획득했고, 2018년 평창 대회 때는 은메달을 땄다. 금-금-은.

차민규는 이상화를 떠올리며 새로 목표를 설정했다. 삼세번째 금메달 도전이다.

저는 ‘저만의 훈련을 해서 환경적으로 뒷받침이 된다면 4년 뒤 밀라노 올림픽에도 꼭 도전을 하고 싶어요. 이상화 선수가 ‘금-금-은이었다면, 저는 ‘은-은-금으로 해보고 싶어서요. 4년 뒤 34세가 되면 나이는 조금 많을 수도 있지만, 힘을 잘 쓸 수 있는 나이가 30대라고 들었기 때문에 관리를 잘 한다면 그래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게 제 장점인 것 같기도 하고요.”

이제는 서른줄에 접어들어 유망주는 아니지만 우스갯소리로 이승훈과 함께 노(老)망주”라며 4년 뒤에도 기대해달라고 했다. 또한, 후원을 받아 빙속 강국인 해외 무대에 진출해 기량을 유지, 강화시키고 싶다는 포부도 밝혔다.

처음엔 느려도 괜찮다

차민규는 빙속 단거리 선수는 2종류로 나뉜다고 했다. 초반 스타트가 좋은 선수와 막판 스퍼트가 강한 선수. 자신은 두 번째에 해당하는 유형의 선수, 즉 슬로스타터라고 했다. 이 말에 차민규라는 스프린터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 같다. 시작은 조금 느려도 과정에 충실하며 결국엔 잠재력을 폭발시킨 질주.

남달리 뛰어난 재능 덕분에, 남보다 많이 노력한 덕분에 어린 나이에 성과를 내는 선수가 꽤 많다. 그렇게 뜨고 일찍 지는 선수도 있다. 차민규는 이들과는 다르게 조금 느리지만, 여러 기점마다 적절한 선택과 과정, 집중을 통해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냈고, 그렇게 롱런하며 예상 밖의 결과물을 만들어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스포츠 선수는 물론, 일반인들도 곰곰이 짚어볼 대목이 참 많다.

4년 뒤 어떤 결말이 나올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차민규는 할 수 있는 한 부단히 앞을 향해 나아갈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것처럼, 2보 후퇴도 했다가 1보씩 전진을 하는 그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한다.

에필로그

차민규는 베이징올림픽 기간 본의 아니게 중국 내 이름을 널리 알렸다. 시상대에 오르기 전에 경건한 마음으로 오르자”는 마음에 바닥을 닦는 시늉을 했는데, 이게 중국 선수에게 져서 판정 항의를 한 것 아니냐는 오해를 받았다.

기자회견장에서 베이징올림픽 마스코트인 빙둔둔 인형을 갖고 오지 않아 이 역시 판정 항의로 ‘빙둔둔을 쓰레기통에 버렸다는 소문에도 시달렸다.

차민규는 그래서 스튜디오에 월계관이 달린 시상식용 빙둔둔을 직접 가져와 보여주며 환하게 웃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무표정 때문에 나온 오해인 것 같기도 한데요. 중국 분들한테 욕 많이 먹어서 장수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국영호 기자]

#스피드스케이팅 #차민규

<3월17일 방송된 362회 'MBN 스포츠야를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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