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생활고로 세상 등진 자영업자…그 뒤로 반년이 지났다 [르포]
입력 2022-03-16 21:40 
지난해 9월 14일 A씨의 가게 문 앞에 시민들이 남기고 간 추모 편지와 국화꽃이 붙어있었다. 한 쪽지에는 "천국에서 돈 걱정 없이 사세요"라는 문구가 적혔다. [이상현 기자]

"목장이 키워낸 닭. 포장 가능. 입구는 여기로."
안내문을 따라 입구로 향했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굳게 닫힌 걸 넘어 자물쇠까지 걸려 있었다. 문 앞에는 미납한 전기요금 청구서와 급전·대출 안내 명함, 건물 철거업체 명함만이 놓여 있었다.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의 한 맥줏집을 반년 만에 다시 찾았다. 이 가게는 생활고에 시달리다 지난해 9월 스스로 세상을 떠난 50대 자영업자 A씨가 운영하던 곳이다. 6개월 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었지만, 그간 사람의 손길을 타지 않은 만큼 더 초라하게 보였다.
A씨가 처음 자영업에 뛰어든 건 지난 1999년이다. 장사가 잘돼 한때 4개 점포를 운영하며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했던 그이지만, 코로나19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거리두기와 영업제한 조치가 이어지면서 매출은 10만원 이하로 떨어졌다.
A씨의 소식이 알려진 작년 9월 가게 문앞 모습(왼쪽)과 16일 다시 찾은 가게 문앞 모습(오른쪽). [이상현 기자]
대출과 월세에 시달리던 A씨는 끝내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 8월 31일 지인에게 한 연락이 마지막이었다.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자 살던 원룸도 뺀 그는 작년 9월 7일 사망한 채 발견됐다. 소식이 전해진 뒤 한동안 시민들이 그를 추모했지만, 잠시뿐이었다. A씨는 곧 잊혀졌다.
반년 만에 A씨 이야기를 다시 꺼내자 인근 가게들은 하나같이 말을 아꼈다. 다만 자영업자들은 A씨가 세상을 떠난 뒤 가게는 문을 열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한 가게 직원은 "그때 그 모습 그대로 멈춰있다"라고 말했다.
직원의 말마따나 A씨의 가게는 겨우내 방치된 것처럼 보였다. 창문을 통해 가게 내부를 들여다보니 6개월 전 매경닷컴이 현장을 찾았을 때와 똑같은 위치에 쓰레기가 놓여 있었다.
달라진 것도 일부 있었다. 작년 7월분 전기요금 청구서가 놓여 있던 자리에는 올해 1월분 청구서가 자리했다. 청구서에 적힌 미납액은 323만6580원. 한국전력 관계자는 이와 관련, "전기는 작년 말부터 공급되지 않는 상태"라고 말했다.
시민들이 가게 문 앞에 놓고 간 편지와 국화꽃, 경찰통제선도 찾아볼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언뜻 보기에는 낮에 영업을 안 하는 여느 주점처럼 보이기도 했다. 가게 앞을 걷는 시민들도 그저 제 갈 길을 재촉했다.
16일 오후 서울 마포구 소재 A씨의 가게 내부. 6개월 전과 동일한 자리에 같은 쓰레기가 놓여 있다. [이상현 기자]
통계청이 이달 2일 발표한 '1월 산업활동동향'에 따르면 1월 소매판매액지수(계절조정)는 120.8(2015년=100)로 전월보다 1.9% 감소했다. 지난 2020년 7월(-5.6%) 이후 최대 폭으로 감소한 수준이다.
소매판매액지수는 소비동향을 나타내는 지수다. 영업시간·인원 제한 등 방역 조치가 지속된데다 겨우내 오미크론 변이 영향으로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소비심리가 위축된 것으로 풀이된다.
A씨의 가게 인근에서 자영업을 하는 60대 박모씨는 그간 어땠느냐는 질문에 "장사가 다 무엇이냐. (코로나19 사태) 터지고 나서부터 사람답게 살지를 못했다"고 토로했다.
박씨는 이어 "사실 작년에 식당 하시던 친한 형님이 (A씨와) 똑같이 돌아가셨다. A씨도 그렇고, 형님도 그렇고 누가 기억이나 해주느냐"며 "정계에서는 우리 같은 사람들 관심도 없다"고 덧붙였다.
코로나피해자영업총연합이 지난달 밝힌 바에 따르면 A씨처럼 생활고 때문에 스스로 세상을 등진 자영업자는 26명으로 집계됐다. 대외적으로 파악된 숫자만 26명이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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