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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선행에 석패한 이만기 "강호동 너도 나온나" [국영호의 스포츠人사이드 #6]
입력 2022-02-28 17:35  | 수정 2022-05-29 19:05
※'스포츠人사이드'는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사회를 향한 메시지를 찾아봅니다.

환갑을 바라보는 ‘영원한 천하장사 이만기(59)가 36살 아래의 ‘씨름돌 태백장사 허선행(23)과 모래판에서 한판 대결을 벌였다. 의미를 부여하자면, 씨름의 과거와 현재, 모래판의 황제와 왕자가 맞붙은 건데 이게 어떻게 성사된 걸까.

MBN 스포츠예능 ‘국대는 국대다가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다. 레전드가 한 달간 몸을 만들어 현역 최고의 선수와 맞붙는 포맷의 방송에서 이만기는 한 달간 하드 트레이닝을 거쳐 허선행과 3판2선승의 대결을 벌였다.

이만기는 씨름 팬들이나 저를 좋아했던 분들에게 실망시켜드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최선을 다해 훈련했다”고 밝혔다. 대결에서 승리하면 씨름 꿈나무에게 1천만 원의 장학금을 기부할 수 있다.

‘역대 최다인 통산 10회 천하장사의 관록이냐, 이상적인 체격과 기술로 무장한 젊은 피의 패기냐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만기는 1대2로 졌다. 첫 판을 아쉽게 내주고 두 번째 판을 자신의 장기인 들배지기 기술로 따내 동점을 이뤘지만, 마지막 판에서 세월을 이기지 못했다.

이만기는 한 게임은 이겼는데 다리가 무거워져서 허선행 선수의 발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며 마음은 정말 이기고 싶었는데, 안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만기에 따르면, 허선행은 정말 질 뻔 했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에 이만기는 샅바 잡아보니까 ‘네가 왜 우승하는지 알겠다”고 덕담을 건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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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은 살아있다

여러모로 씨름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킨 이번 대결을 마친 이만기와 MBN 스포츠 전문 토크쇼 ‘스포츠야에서 만났다.

과거 KBS ‘씨름의 희열에서 해설로 참여했고, 근래엔 jtbc ‘뭉쳐야 찬다에서는 축구를 했던 이만기는 ‘전공인 씨름 선수로서 31년 만에 도전한 것에 대해 감격한 듯 했다.

방송에서 축구, 야구, 농구, 체조를 다뤘는데, 거기에 우리 씨름이 빠지면 되겠습니까. ‘국대는 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행복했던 프로그램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작품을 만든 것 같습니다. 스포츠를 떠나서 프로그램도 제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30~40년 전 국민 스포츠였던 씨름이 세월이 흘러 지금은 ‘그들만의 리그가 되는 모습에 안타까움도 컸다. 그래서 그러다 다친다”, 예전의 네가 아니다”라는 주위의 반대에도 도전한 이유다.

갑자기 방송국 피디가 찾아와서는 ‘현역 선수와 대결할 수 있느냐고 해서 처음에는 ‘미쳤느냐고 말해줬어요. 하지만, 대화를 나누면서 진정성을 느꼈어요. 사실 제가 방송에 많이 나가는 이유가 국민 마음속에 ‘씨름을 알려야겠다, ‘씨름을 잊히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것인데, 이참에 10대와 20대 젊은 친구들한테 씨름을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아서 나서게 됐죠.”

'아버지'는 살아있다

또다른 이유는 두 아들에게 아버지의 건재를 알리고 싶어서였다. 이만기는 28세이던 1991년 은퇴했다. 금강장사, 백두장사, 천하장사 총 49회 장사 타이틀을 뒤로 하고 모래판을 내려왔다. 이듬해 한숙희 씨와 결혼해 두 아들을 얻었는데, 아들들에게 ‘위대한 선수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웠다.

아들래미들은 제가 씨름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했잖아요. 제가 은퇴하고 2~3년 뒤에 태어난 아이들이기 때문에. 유튜브나 다른 정보는 봤겠지만. 아버지가 잘했는지 우승 횟수 등 숫자적 개념밖에 없었으니까요. 그게 아쉬웠어요. ‘선수 이만기가 씨름하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지 못한 게.”

30대 전후로 대성한 아들들이 불현듯 자신을 만만하게 보자 ‘위대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 또한 있었다. 우리 시대 모든 아버지를 대표해서 출전한다는 생각을 가진 이유이기도 하다.

저는 지금도 몸과 마음이 청춘입니다. 그런데 아들들 입장에서는 나이 들고 늙어 보이는 아버지가 ‘되겠나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요즘 우리 아버지들이 자식들에게 어깨도 못 펴고, 기 죽어지낸다는 얘기를 많이 보고 듣습니다. 집밖에서 너무나 힘든 생활을 하면서도 아버지로서 위상이 말이 아닌 것 같아서. 우리 아버지들에게 힘이 되어줘야겠다는 생각도 도전의 계기가 됐죠.”

아버지의 ‘라스트 댄스를 현장에서 지켜본 장남 민준 씨는 경기 직후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며 아버지가 대단한 분인 건 알았지만, 현장에서 보니 더 뭉클했다”고 말했고, 그런 아들을 보며 이만기 역시 눈시울을 붉혔다. 훈련 트레이너를 자청한 차남 동훈 씨는 아버지의 훈련량과 능력에 놀라고 또 놀랐다.

'이만기'도 살아있다

이만기는 잘 알려졌듯이, 선수 시절 ‘만기(萬技) 즉, ‘만가지 기술을 가진 선수로 유명했다. 전매특허인 들배지기는 물론, 여러 기술과 빠른 속도를 버무린 갖가지 기술로 씨름의 천하를 통일한 올라운드 플레이어였다.

이만기는 이제 곧 환갑”이라고 질문하자 입을 막는 시늉을 하면서 환갑이라는 말은 하지도 말라”며 나이와 삶은 별개라고 선을 그었다. 다만, 발이 따라가지 못할 뿐이라고 했다.

허선행 선수의 샅바를 잡으니까 ‘되겠다 싶었어요. 그런데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제 발이 '어두운 거에요. 선수 때는 100m를 11초9에 달렸었거든요. 요즘은 16초도 못 뛸 거 같아요. 6-7초 정도 움직임이 둔해졌기 때문에 허선행 선수의 발을 따라갈 수 없었어요. 못 따라가면 지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흔히 하는 말로 ‘클래스는 영원했다. 자극을 가하자 30여년 간 잠든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깨어났다.

이 프로그램에 나올 정도면 그 종목에서 ‘탑을 찍었던 선수 아닙니까. 우리 같은 운동선수는 장난 삼아, 건성으로 하지 않습니다. 역시 ‘정상에 섰던 사람은 늙더라도 그냥 늙는 게 아니다. 클라쓰가 다르다'는 겁니다. 현역 시절과 달리 근육 펌핑도 잘 안되고 금세 물렁물렁해지긴 했지만, 씨름 팬들이나 저를 좋아했던 분들한테 실망시켜드리지 않겠다는 욕심으로 했습니다.”

이만기는 그렇게 두 번째 판에서 장기인 들배지기로 현역 허선행을 거꾸러뜨렸고, 마지막 판도 연장까지 끌고 가는 저력을 보여줬다.

강호동, 살아있나?

이만기를 잇는 씨름 스타는 지금은 베테랑 방송인인 강호동(52)이다. 1990년 두 사람의 대결 때 나온 그 유명한 깝죽거리지 마라, 이 XX야!” 발언은 저무는 ‘이만기 시대와 떠오르는 ‘강호동 시대가 교차한 변곡점이었다. 새까만 7년 후배 강호동이 경기 직전 관중석을 향해 기합을 넣으면서 쇼맨십을 펼치자 이만기가 발끈한 '사건'이다. 이만기는 당시 강호동에 패하며 자존심을 구겼다.

이번에 당시 발언이 새삼 화제가 되었는데, 이만기는 매번 그랬던 것처럼 또다시 사과했다.

늘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호동이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만기라는 선배를 이길 수 없을 것 같다는 차원에서 경기 규칙 내에서 할 수 있는 제스처와 행동을 했던 것일 겁니다. 이제 지나간 좋은 추억이죠. 지금은 그런 호동 씨하고 저하고 그런 거 전혀 없습니다 . 오히려 그걸 통해 정이 많이 갔어요.”

이만기는 2010년 ‘1박2일 프로그램에서 강호동과 깜짝 대결을 벌여 2대1로 승리한 바 있다. 강호동은 당시 이만기 선배님이 한판을 봐주셨다”며 선배에게 예우를 갖췄다. 이만기는 씨름의 부흥을 위해 한번 더 강호동을 소환했다. ‘반 방송인답게 예능감도 섞어서 표현했다.

호동 씨도 씨름을 위해서 ‘국대에 도전했으면 좋겠어요. 강호동 씨가 이만기 다음으로 씨름에서는 2인자잖아요. 호동 씨가 한번 더 씨름판에 나와서 후배들하고 멋진 승부 펼쳐줄 것을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그렇다면, 이만기는 강호동을 또다시 이길 수 있을까.

지금 몸이 완전히 올라온 상태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경기하라고 하면 (강호동을) 이깁니다. 2대0으로 완벽하게 이길 순 없을 것 같고, 지더라도 1대2 정도로 질 것 같습니다. 마음만은 항상 이기고 싶습니다.”

"허선행 사롸있네"

이만기가 상대한 허선행은 20세 때인 2019년 천하장사 씨름 대축제에서 태백장사에 올랐다. 이후 부상으로 인한 슬럼프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하고 2021년 설날장사 씨름대회에서 두 번째로 장사에 등극했다. 전광석화 같은 속도로 경기를 끝낸다고 해서 ‘5초컷 사나이로도 불린다.

굉장히 빠르더라고요 반템포 빠른데 이게 상당히 무서운 거거든요. 처음에는 가장 작은 체급인 태백급이니까 ‘해볼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중간에 보니까 체급이 늘었더라고요 86~87kg로, 저보다 조금 덜 나가더라고요. 중간에 경기하면서는 ‘내가 미쳤지, 왜 한다고 했을까, 아이고 미쳤지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태백급에서는 제일 잘하는 친구니까 달랐죠.”

허선행이 ‘이만기 시대의 어떤 선수와 가장 비슷한가라고 물으니 고경철(59)이란 대답이 돌아왔다. 잘 생긴 외모와 화려한 기술 씨름으로 유명했던 고경철은 금강급을 시작으로 백두급에 올라 1988년 이만기를 꺾고 꽃가마를 타기도 했다.

고경철 선수도 발도 빠르고 힘도 좋고, 재치 좋고, 재능도 있었어요. 몸도 워낙 좋았습니다. 그런데, 우리 때와 달리 허선행 선수는 몸이 조각 같아요. 우리는 큰 근육이 많았다면, 요즘 선수들은 잔근육이 많아서 몸의 균형이 좋아요. 근육이 들어가야 할 자리와 나와야 할 자리가 정확하더라고요.”

다만, 이만기는 자신의 역대 최다인 천하장사 10회 우승 기록 경신은 허선행이 아닌 이달 초 설날씨름대회에서 통산 두 번째 정상에 오른 최성민(20·태안군청)을 꼽아 눈길을 끌었다.

‘우리 것은 살아있다!

이만기는 ‘신토불이라며 씨름에 대한 관심을 당부했다.

씨름은 우리의 전통문화 경기고, 조상님들이 해왔던 토종 문화이기 때문에 국민 여러분이 사랑해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우리 것이 최고입니다. 외국 스포츠도 물론 좋지만, 한번쯤은 1980~90년대 함께한 씨름이 있으니 ‘우리 것, 우리 씨름을 관심 있게 봐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이만기는 ‘본업'인 교수직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29세에 교수가 돼서 정년퇴직까지 6년이 남았습니다. 이제 학생들에게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어야죠 아이들과 있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소중하게 생각하겠습니다.”

모든 게 '살아있음'을 알렸고, '할 수 있다'는 메시지도 던진 '영원한 천하장사' 이만기. 그가 가는 곳에 언제나 신명나는 풍악이 울리길 기대한다.

"천하장사 만만세~"

[국영호 기자]

스포츠야 PD : 황현욱·이만행, AD : 조민지

<3월3일 방송될 'MBN 스포츠야를 참고해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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