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취[재]중진담 - 지하철 타기와 사람들, 시위에 나선 이유는? ①
입력 2022-02-14 10:46  | 수정 2022-05-15 11:05
"장애인이 차별 받지 않는 사회를 꿈꾼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출근길 지하철 시민과의 갈등 '격화'…해결책은?
서울교통공사에서 알려드립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시위로 인해…"


지하철이 멈춘 혜화역 승강장


요즘 부쩍 한 장애인 단체의 지하철 시위가 늘었습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발을 동동 구르기 시작하고 전광판에 있는 열차 그림도 멈춰 섭니다. 차에 탔던 시민들은 하나 둘 내려 다른 교통수단을 찾아 나섭니다.

‘왜 이 사람들은 이런 시위 방식을 택할 수밖에 없었는지?
'시위를 보고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지?'
'이 상황을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시위가 가장 빈번하게 발생하는 곳은 혜화역. 제가 맡은 취재 구역이었습니다. MBN 종합뉴스에도 두 번 방송됐지만, 취재 때마다 드는 이런 질문들을 말끔히 해소하기에는 쉽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 이번 취[재]중진담을 통해 위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장애인은 욕의 무덤에 파묻힐 권리가 있다. 그러니 장애인권리예산을 보장받을 권리도 가져야 한다" <전장연, 장애인과 시민의 권리선언. 2022>


지하철 타기 시위를 제대로 알아보기 위해서는 주체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에 대해 먼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매일 아침 출근길 시민들과 마찰을 빚으면서도 시위에 나서는 전장연. 그들이 지하철 타기 시위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요? 종로구 동숭길에 위치한 전국장애인철폐연대 사무실을 찾아 이형숙 공동대표를 만났습니다.



지하철 타기 시위의 시작…"우리는 다급했다"

이 대표는 작년(2021년)은 오이도역 장애인 리프트 추락 참사 사건이 일어난지 20년이 되던 해였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교통약자법)'이 시행된 지 15년이 되었고 작년 6월 개정안도 발의됐지만, 당시 국회에서는 이후 아무런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혜화역에서 선전전과 지하철 타기 시위를 다시 시작했고 그 결과 작년 12월 31일,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그동안 권고사항으로만 되어있었던 일반버스 대‧폐차 시 저상버스 도입이 의무화되었고 국가나 도가 특별교통수단(장애인 콜택시)의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게 되는 등의 성과를 얻어냈습니다.
하지만 개정안에는 여전히 한계가 남았습니다. 우선 저상버스 의무 도입 대상에서 '시외‧고속버스'는 제외됐고 국가나 도가 특별교통수단의 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게 됐지만, 법 개정안 원안의 '해야 한다'가 '할 수 있다'라는 임의 규정으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즉, 여전히 기획재정부의 예산 없이는 장애인의 권리는 온전히 실현될 수 없었습니다.



"이동권은 다른 모든 권리의 전제조건"

장애인 이동권을 떠나 다른 교육권, 노동권에 대해서도 지하철에서 시위하는 것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의견이 있다고 이 대표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이 대표는 장애인의 이동권, 교육권, 노동권은 모두 별개가 아닌 하나로 연결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동을 못하면 교육도 받을 수 없고 노동을 할 수도 없다며 이동권이 모든 권리의 전제조건이라는 겁니다.
따라서 이동권이 보장되어야 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다른 비장애인들처럼 살아갈 수 있는데, 국가는 이를 보장하지 않고 계속 수용시설 정책만을 강화하려 했다고 말합니다. "함께 살아가는 정책이 아니라 산 좋고 물 좋은 외딴 산골짜기에 시설을 만들고 수용하는 거죠. 폐쇄적인 시설 안에서 인권침해가 있어날 수밖에 없는데, 복지부에서는 예산으로 이것만 지원하는 겁니다."
"국가는 비약적으로 성장했는데, 실제로 지원체계는 비장애인 중심으로만 가고 있습니다. 이게 고착화되니까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이 목소리를 내니 뭐가 문제냐며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전장연 사무실 내부

한국 버스와 지하철에는 장애인이 없다”

이 대표는 1988년 장애인올림픽 때 한 외국인이 한 말이 기억난다고 했습니다. "한국에 오니까 장애인을 볼 수 없다. 버스에서도 지하철에서도. 하지만 시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한국 대중교통에서 장애인을 볼 수 없었다는 말이 들린다고 했습니다.
이 대표는 우리나라 장애인은 시설에 가있을 뿐이지 없는 게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 사회는 비장애인만 잘 돌아다니면 돼요. 우리가 가만히 있으니 시민들이 관심이 없고, 나와서 돌아다니니 그제서야 불편하다고 하며 관심을 가져줍니다."

오이도역 추락 참사 21주기 지하철 여행 당시 시위 현장


"우리 할머니 임종인데 당신들 때문에 못 가고 있어!"

이 대표는 지난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에서 한 시민에게 들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고 했습니다. 한 시민이 어머니 임종을 지키러 가야 하는데 지하철이 못 가서 항의를 했던 것입니다. 이 대표는 과거 어머니의 임종 소식을 들었던 상황에서 장애인이라 아예 움직이지도 못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새벽 1시쯤 장콜(장애인 콜택시)을 잡으려 했지만, 그 시간에 장애인이 탈수 있는 택시를 잡을 수 없다는 말을 들었죠. 다음날 새벽 6시에 출근하는 기사님을 연결해 주겠다는 말을 듣고 포기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몇몇 시민들은 시위하는 것은 이해하는데 꼭 출근 시간, 한창 바쁠 때 해야만 하는지 묻는다고 이 대표에게 전했습니다. 이에 이 대표는 장애인들도 출근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라고 말했습니다. "낮에 시위를 하면, 장애인들은 출근을 하지 않는 줄 압니다." 무고한 시민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점도 인정했지만, 이 대표는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회가 바뀌어야만 한다고 말합니다. "엘리베이터 몇 개 설치되면 뭐해요. 사회가 바뀌지 않으면, 여전히 장애인은 쓸모없는 존재로 인식되어 버립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은 빨리 가야 하고 능력 없는 사람들은 좀 빠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오이도역 추락 참사 21주기 지하철 여행 당시 지하철 내부


"법에 명시된 것만 지키겠다고 약속하면 해결될 것"

지난 11일 매경미디어센터에서 대선후보 2차 TV 토론회가 있던 날, 전장연은 충무로역을 찾아 대선 토론회에서 장애인 권리 예산 보장을 약속하라며 지하철 투쟁을 벌였습니다. 당시 장애인 권리 예산을 약속하면 지하철 투쟁을 즉시 중단할 것이라 말했지만, 이날도 결국 장애인 권리와 관련한 이야기는 토론에 등장하지 못했습니다. 이 대표에게 그 당시 상황을 얘기하며 생각을 묻자. "관심이 있었으면 이지경까지 하겠습니까. 아직 우리의 기본적인 권리는 뒤 순위라는 겁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현재 이 첨예한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지 물었습니다. 이에 이 대표는 이것 하나는 명확하다고 말했습니다. "법에 명시된 장애인 권리를 지키겠다고 약속만 해주면 됩니다." 대선 후보들이 호의를 베풀기 위해서 약속하는 게 아니라 법에 명시된 장애인의 권리만 지키겠다고 말해주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오이도역 그곳은

오이도역 승강장

이 대표를 만나기 전 지금 오이도역은 어떻게 변했을지 궁금해 다녀왔습니다. 현재는 더 이상 장애인 리프트를 찾아볼 수 없었고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이 얘기를 전하자 이 대표는 오이도역 추락 참사 당시 CCTV를 본 적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오이도 역사 CCTV 못 보셨죠? 고꾸라지면서 굴러 떨어져요. 순간 아차 하면 떨어져요. 정말 위험해요."
서울교통공사에서도 장애인의 이동권과 관련해서는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이 대표에게 전했지만, 이제 와서 노력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2017년에 신길역에서 리프트를 타다 장애인 분이 숨졌습니다. 그때 서울교통공사는 자기들의 책임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근데 우리가 재판에서 승소를 했잖아요. 원래는 2022년도까지 모든 역사에 엘리베이터가 설치가 되었어야 해요. 그런데 2025년으로 연장되고.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나요."
인터뷰를 끝내고 이 대표에게 앞으로의 일정을 물어보니,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매일 아침 계속 시위를 진행할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내일 저의 출근길도, 다른 시민들의 출근길도, 전장연 활동가들의 출근길도 언젠간 행복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과 함께 전장연 사무실을 나왔습니다.

[ 이시열 기자 / easy10@mbn.co.kr]

'취[재]중진담'에서는 MBN 사건팀 기자들이 방송으로 전하지 못했거나 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을 들려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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