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오픈런도 늦다 하루 전부터 죽치고 기다린다"...그래야 겨우 살수있다는 이것 [르포]
입력 2022-01-24 20:10  | 수정 2022-01-24 20:38
22일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바깥에 롤렉스 '전날런' 줄이 늘어서 있다. [사진 = 이하린 기자]

# '롤렉스는 공기만 판다'는 말이 예전부터 있었지만 이 정도로 심하진 않았어요. 지난해부터 정말 치열해졌네요. (30대 남성 A씨)
# 결혼 앞두고 꼭 사고 싶은 시계가 있는데 오늘도 큰 기대는 안 해요. 적어도 30번은 와야 성공할 것 같아요. (20대 여성 B씨)
24일 오후 4시경,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바깥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서서히 추워지는 날씨에도 이탈자는 없었다. 줄 앞쪽에 선 이들에게선 '고수의 향기'까지 느껴졌다. 담요와 핫팩은 기본, 개인 태블릿 PC나 스마트폰을 보며 무료함을 달래는 모습이었다.
2시간째 대기 중이라는 한 남성은 "이대로 저녁 7시 30분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래야 내일 롤렉스 매장에 들어갈 수 있는 대기번호를 나눠주거든요"라고 설명했다.
롤렉스 전일 예약제 안내문. [사진 = 이하린 기자]
흔히 아침 일찍 하는 '오픈런'도 아닌 이른바 '전날런'이다. 롤렉스를 판매하는 국내 매장은 전국에 10곳. 이 가운데 현대백화점 압구정점과 무역센터점만 전일 예약제를 시행 중이다. 매일 저녁 7시 30분에 직원이 나와 그 다음날 매장에 들어설 수 있는 번호표를 부여하는 식이다.
평일 40팀, 주말은 50팀까지만 부여되는 번호표를 받기 위해 사람들은 오후 3~4시 전부터 줄을 서 있다. 이 시간 즈음이면 40~50팀이 모두 차기 때문에 더 늦으면 미련 없이 돌아서야 한다.
추위 속 긴 줄이 늘어선 바깥과 달리 롤렉스 매장 안은 직원들만 일부 왔다 갔다 할 뿐 조용한 모습이었다. 간혹 소비자가 와서 매장으로 들어서려고 하면 직원이 나와서 전일 예약제에 대해 안내했다.
직원은 "아침 오픈런을 하면 평균 8~14시간 정도 대기해야 하기에 그 시간을 줄이고자 전일 예약제를 택했다"면서 "한파에 새벽부터 기다리는 소비자를 배려하고, 사고를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다"고 밝혔다. 오픈런 시 문이 열리자마자 달리는 소비자들 때문에 사고가 날 뻔한 적이 있었다는 설명이다.
현대백화점 압구정점 롤렉스 매장. [사진 = 이하린 기자]
소비자들은 '욕하면서 산다'는 입장이다. 30대 남성 A씨는 "인기 모델은 하루에 5~6점 나올까 말까"라면서 "이렇게 전날런까지 하면서 기다려도 원하는 모델을 살 확률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A씨는 이전에 웃돈을 주고 롤렉스 시계를 구매한 적도 있다. 그는 "매장 구매에 실패해서 600만원의 웃돈을 주고 개인 간 거래를 했다. 당시엔 돈이 아깝단 생각이 들었지만 그 모델이 지금은 훨씬 더 비싸졌다"고 밝혔다.
30대 여성 C씨는 이날 아침 일찍 다른 지점에서 오픈런을 했다가 실패하고 압구정으로 넘어왔다. 그는 "웃돈 수백만원을 주면서까지 사고 싶진 않다"면서도 "직장인이라 매번 이렇게 대기할 수는 없다. 요즘은 줄서기 대행 아르바이트가 있다던데 고용할 생각이 있다"고 밝혔다.
오픈런에 이어 전날런까지 마다않는 소비자들이 있어서일까. 롤렉스의 콧대는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롤렉스는 올해 1일부터 주요 시계 모델 가격을 8~16% 인상했다. 인기 모델인 서브마리너 논데이트, 예물 시계로 꼽히는 데이저스트 라인의 일부 품목도 가격이 올랐다.
이날로 총 12번째 롤렉스 문을 두드리고 있다는 40대 여성 D씨는 "날도 춥고 '내가 뭐 하는 건가' 싶지만 어쩌겠어요. 원하는 모델을 손에 넣었을 때 그 짜릿함이 있으니 감수하는 거죠. 게다가 인기 모델은 가치가 계속 올라요. 딱 하나만 사면 더 이상 이렇게 줄서는 일은 없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하린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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