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월매출 200억씩 수확…서울대공대 출신의 '농산물 데이터' 혁명
입력 2022-01-24 07:02 
신호식 트릿지 대표가 사무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한주형 기자>

공과대학 출신 창업자들이 빅데이터에 기반한 농업 혁명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단연 눈에 띄는 기업이 있다. 바로 트릿지다. 트릿지는 창업 초기부터 국내가 아닌 전세계를 무대로 삼았다. 현재 트릿지의 고객은 월마트, 까르푸, 네슬레와 같은 글로벌 유통·식품업체들이 전체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회원 수는 40만에 육박한다. 가입자가 개인이 아니라 기업인 만큼 40만이라는 숫자의 의미가 간단치 않다. 농산물 구매를 업으로 삼는 기업들이어서 트릿지에 대한 충성도가 매우 높다. 현재 트릿지의 월간 매출액은 200~300억원 수준. 달마다 매출 증가세가 가파르다보니 월매출 1000억원 돌파가 멀지 않았다. 당초 원자재 무역 플랫폼을 추진했으나 농산물에 대한 거래 수요가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확인하고 지금의 글로벌 농산물 공급망 관리 시스템을 구축한 신호식 트릿지 대표(45)에게서 데이터 농업에 대해 들어봤다.
트릿지의 인게이지먼트 매니저(EM)로 일하고 있는 페드로 앙헬 씨(가운데)가 에콰도르 현지 바나나 농장을 방문해 농장 관계자들과 함께 바나나 품질을 점검하고 있다.<사진제공=트릿지>

-트릿지가 제공하는 데이터는 무엇인가.
▷유통·식품업체들이 필요로 하는 농산물에 대한 모든 정보를 망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아보카도라는 과일이 있다고 치자. 생산되는 지역에 따라 품종이 조금씩 다르다. 그에 따라 가격도 다르다. 같은 품종이라도 생산되는 지역이나 시기에 따라 품질도 차이가 난다. 또한 각 지역별로 아보카도 공급자도 다양하다. 그런 식으로 데이터를 수집하는 농산물 품목이 총 15만종에 이른다. 이에 따른 가격 데이터는 5억개가 넘는다. 전세계적으로 거래되는 거의 모든 농산물에 대한 정보를 집대성하고 있는 곳은 트릿지가 유일하다.
-다른 업체들은 왜 트릿지와 같은 데이터를 수집하지 못했을까.
▷너무 막대한 작업이라 시도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회사 내부에서도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없지 않았다. 다행히도 처음에 구성한 20여 명의 데이터 팀이 뛰어난 역량을 발휘해 줬다. 컴퓨터나 전자 등 공학 전공자들을 주축으로 구성된 우리 팀은 농업 데이터와 IT 프로그램을 다루는 데 있어서 고정관념을 배제했다. 복잡다난한 일들이 많이 터졌지만 강한 팀웍과 열정으로 넘어섰다. 우리 팀은 동원 가능한 모든 소스를 확보했다. 해외 각국의 농업 관련 정부나 기관, 시장에서 발표되는 모든 데이터를 모았다. 인공지능(AI)을 활용하기도 했고, 90개국에 있는 현지 직원들을 활용하기도 했다.

-단순히 데이터를 수집한 게 아니라 매핑(mapping)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건 무슨 뜻인가.
▷데이터를 수집해도 해석이 안되면 무용지물이다. 가락도매시장 데이터를 미국인이 보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는 게 대부분이다. 미국인이 양파 한 망의 의미를 어떻게 알겠나. 그래서 데이터 매핑이 매우 중요하다. 데이터 매핑은 서로 다른 데이터를 비교할 수 있도록 표준화하는 작업을 말한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나는 95점이야"라고 말하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다. 적어도 '중학교 3학년 2학기 중간고사 수학 객관식 시험에서 100점 만점에 95점을 받았다'고 해야 95점의 정확한 뜻을 알게 된다. 제시된 데이터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알 수 있도록 비교를 통해 그 위치를 알 게 하는 과정이 매핑이다. 트릿지에서 제공하는 농산물 데이터는 이처럼 고객들이 그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있도록 잘 매핑돼 있는 게 강점이다.
-트릿지는 2015년 1월에 설립됐다. 글로벌 기업들에게 회사의 존재 가치를 알리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구글이 많은 역할을 했다. 외국인들이 어떤 농산물에 대한 생산·작황·가격 등 정보를 알고 싶어 구글에서 검색하면 트릿지가 제공하는 데이터가 압도적으로 많이 노출됐다. 트릿지 만큼 다양하고 정확한 농산물 데이터를 제공하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구글 입장에서도 트릿지 데이터를 자주 노출시키는 것이 구글에 대한 고객의 신뢰를 얻는 데 유리했을 것이다. 또한 고객이 구글을 통해 트릿지 데이터를 이용하면서 남기는 흔적이 진짜 살아있는 데이터다. 우리는 그걸 통해 고객이 가장 필요로 하는 정보를 확인하고, 데이터를 업뎃한다.
-이제는 트릿지의 모델을 벤치마킹하려는 시도가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 우리가 고객사와 함께 하는 온라인 세미나 등에서 발표를 하면 전세계 농업이나 식품, 유통분야 기업들의 데이터팀이나 테크팀에서 엄청 많이 들어와 듣는다. 농산물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공급망 관리 시스템은 트릿지가 새로 만들어낸 비즈니스 모델이다보니 공공연한 벤치마킹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6년간 세계 100개국의 농산물 데이터를 축적해 놓고 있기 때문에 다른 기업들이 단시간 내에 따라할 수가 없다. 경계는 하지만 걱정은 하지 않는다.
-사업의 범위를 초기 데이터 서비스에서 농산물 거래로 확대한 계기는.
▷데이터 이용 고객들로부터 정보만 제공하지 말고 거래도 대행해 달라는 요구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예컨대 특정 농산물의 가격 폭등 같은 충격이 발생했을 때 다른 지역에서 보다 저렴한 대체 품목을 구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했더니 직접 구매해서 공급해 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충분히 사업성이 있다고 판단해 각국에서 직접 농산물을 소싱할 수 있는 전문가를 채용했다. 회사에서는 이들을 '인게이지먼트 매니저(EM, Engagement Manager)'라고 부른다. 현재 90개국에 있는 이들 인게이지먼트 매니저들이 산지 농장까지 직접 가서 계약하고, 물류창고를 섭외하고, 고객사까지의 물류도 총괄하는 공급망 관리자들이다.
-트릿지의 거래를 구체적인 사례로 설명한다면.
▷아보카도는 물류 상황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품목 중 하나다. 최근 들어 물류난이 심화되면서 컨테니어 해상 운임이 급등했다. 대표적인 아보카도 산지 중 한 곳인 멕시코에서는 그동안 유럽으로의 해운 수출이 많았다. 그런데 해상 운임이 폭등하자 멕시코는 유럽행 물량을 줄이고 육로 운송이 가능한 미국으로의 공급을 대폭 늘렸다. 이 때문에 유럽으로의 아보카도 공급이 급감하자 현지 유통·식품업체들이 비상이 걸렸다. 하루 빨리 대체 공급지를 찾아야 했다. 이 때 유럽 유통·식품업체들이 트릿지의 문을 두드렸다. 우리는 콜롬비아와 페루, 칠레 등 남미 지역의 아보카도 산지를 긴급 수배해 현재 인게이지먼트 매니저를 통해 아보카도를 유럽으로 내보내고 있다.
-앞으로는 트릿지가 데이터 측면에서 어떤 경쟁력을 갖게 될까.
▷데이터가 빅데이터로 확장되고, 빅데이터에 인공지능(AI)이 결합되면 엄청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지금은 고객사가 요청하면 그에 맞춰 최적의 거래를 찾아주는 수준이라면 앞으로는 어떤 이벤트가 발생하기 이전에 고객이 사전적으로 대응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어느 한 지역에서 오렌지 가격이 폭등할 것으로 예상되면 미리 다른 지역에서 오렌지를 구매하도록 안내하는 것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결국 유통·식품업체 구매팀이 그동안에는 자신들의 경험과 관행, 노하우에 의해 의사결정을 했다면 앞으로는 이들이 트릿지의 조언에 따라 사전적인 의사결정을 하게 될 것이다.
-직접 물류까지 담당하려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자체 물류망은 트릿지의 최대 경쟁력 중 하나다. 현재 29개국에 물류를 담당하는 자회사를 두고 있다. 수출입은 물론 내수 유통을 위한 물류망까지 많은 곳에 구축해 놓고 있다. 트릿지의 물류 공급망은 전세계를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것도 큰 강점이다.
-농산물 공급망에서 규모의 경제가 갖는 의미는.
▷글로벌 농산물 시장은 정보의 비대칭성이 큰 문제다. 가격 변동성과 공급 불안전성도 정보 비대칭에 기인한다. 가뭄이 든 지역에서 농산물 가격이 폭등했다고 해서 농사가 잘 된 다른 지역에서 곧바로 해당 농산물을 수입하기 어렵다. 정보를 구하기 어렵기도 하거니와 용케 정보를 확인했다 해도 물류가 쉽게 이뤄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트릿지의 데이터와 물류 공급망을 활용하면 이런 정보 비대칭에 따른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전세계적인 농산물 공급 안정성을 높이는 데 트릿지가 크기 기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농산물 데이터에 대한 유료화에 나섰는데.
▷농산물 공급망 관리 사업을 시작한 2020년 하반기부터 데이터에 대한 유로화도 시작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국내외 기업들이 다수 트릿지 데이터를 유료 구독하고 있다. 금융시장에서 블룸버그가 정보를 제공해 부가가치를 얻듯이 트릿지는 농업계의 블룸버그로 자리매김하고 싶다.
-처음부터 B2C가 아닌 B2B 비즈니스를 선택한 이유는.
▷B2C 비즈니스로는 글로벌화가 어렵다고 봤기 때문이다. 예컨대 해외 백화점이 한국에 진출한다고 생각해보자. 한국 고객들의 미묘한 선호도 변화를 외국 기업이 쉽게 알아차리기 어렵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백화점이 프랑스에 진출하기는 너무 어렵다. 그러나 광물과 같은 원자재나 에너지 등 B2B 상품은 다르다. 국적에 관계없이 누구나 해당 상품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고, 수요 변화도 보다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농업 분야는 올해 공급처가 내년에 어떻게 될지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로 공급망이 가장 불안정한 만큼 사업 기회가 더 크다고 봤다.
-우리나라 농산물의 해외 수출에 기회가 있을까.
▷충분히 있다고 본다. 트릿지의 글로벌 공급망에 우리나라 농산물을 태울 수 있다. 작년에 샤인머스켓 100t을 중국으로 수출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우리나라에서 샤인머스켓에 대한 인기가 올라가면서 작년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많이 늘었다. 자칫 가격이 많이 떨어질 수 있었지만 우리가 중국 수출 길을 개척한 덕분에 가격 안정에 도움이 됐다. 다음은 딸기 수출을 생각하고 있다.
<신호식 대표 약력>
△77년 서울생 △서초고 △서울대 기계공학부 △미시건대 금융공학 석사 △도이치뱅크 △한국투자공사(KIC) △TP파트너스 △트릿지
[정혁훈 농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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