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아이디만 봐도 어디 사는 누군줄 안다"…언니들과 매일 '영통'하는 라방 진행자 [인터뷰]
입력 2022-01-21 09:46  | 수정 2022-01-21 14:20

**TV방송을 통한 상품 판매에 주력했던 홈쇼핑업계가 달라지고 있다. 온라인과 모바일 채널 판매 비중을 늘려가는 한편 라이브커머스 콘텐츠 강화에 힘을 쓴다. 이에 각 사별로 선두를 달리는 쇼호스트 혹은 쇼핑 호스트들을 만나본다.
"어머, 크리스탈님 아픈 건 좀 괜찮아졌어요?"
CJ온스타일 이솔지(38·사진) 쇼호스트가 휴대전화 너머로 안부를 묻는다. 영상통화(영통)를 하는 듯한 화면에는 '괜찮다'는 댓글이 실시간으로 달린다. 이 쇼호스트는 곧장 '언니들'과 요즘 입을 옷이 마땅치 않다는 고민부터 '취준생' 딸을 둔 엄마의 사연까지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얘기를 나눈다. CJ온스타일이 평일 저녁 7시마다 운영하는 '더 엣지(THE AtG) 라이브쇼'에서다.
이 쇼호스트는 CJ온스타일에서 야심차게 선보인 모바일 라이브커머스 방송, 이른바 라방 '더 엣지 라이브쇼'의 간판 진행자다. 홈쇼핑 자체 패션 브랜드(PB)인 더엣지를 판매한다. 한 명의 쇼호스트가 매일 저녁 한 방송에 출연, 그것도 한 브랜드만 고정적으로 판매하는 것은 더엣지 라이브쇼가 업계에서 처음이다.
"대본은 전혀 없어요. 정말 언니들과 매일 영통(영상통화) 하듯, 이야기를 나누고 시청자들의 패션 고민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솔루션을 찾아주고 있죠."
지난해 8월 첫 방송을 시작했는데 벌써 시청자가 1만명에 육박하며 매출 역시 '억소리'가 난다. 성과가 빠르게 나고 있다. TV방송과 라방을 종횡무진하는 이 쇼호스트를 서울 서초구 CJ온스타일 본사에서 만나봤다.
철저한 고객 맞춤형 방송임을 강조하는 이 쇼호스트는 자신의 방송을 봐주는 시청자들을 '언니들'로 칭했다. 이들과의 에피소드를 얘기할 때마다 눈이 빛났다.
"제게 더엣지는 정말 특별해요. 매일 언니들과 옷 고민을 함께 하며 돈독한 사이가 됐어요. 채팅창 아이디만 봐도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백신 접종을 언제 했는지, 취준생인 딸이 무슨 시험을 준비하는지까지 다 알게 되더라고요(웃음)."
그는 월요일부터 금요일 저녁 7시마다 더엣지 라이브쇼를 진행하고 있다. 매일 같은 시간 방송을 하는 게 체력적으로 힘들 법 하지만 그는 "재밌으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더엣지에 푹 빠진 지금이 제 인생의 황금기"라고도 했다. 에너지가 넘쳤다.
타사에서는 라방에 주로 신입 쇼호스트들을 출연하게 한다. 아무래도 TV를 기반으로 한 홈쇼핑이다보니 여전히 무게의 추를 TV에 싣고 있기 때문이다. CJ온스타일은 다르다. 8년차 패션 전문 이 쇼호스트를 진행자로 내세웠다. 자칫 정신없고 산만해질 수 있는 라방일수록, 그 중심을 잡아주는 이가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
언니들 사이 '소통왕'으로 통하는 그는 단순히 소통만 잘 하는 게 아니다. CJ온스타일 내에서 알아주는 '매출왕'이기도 하다.
지난달 2일 더엣지의 가을과 겨울 신상품을 선보이는 21FW(가을겨울) 패션 신상품 방송은 역대 최고 매출을 기록했다. 방송 당일 주문 금액만 1억2000만원을 훌쩍 넘었고 당일 라방 시청자는 1만명에 육박했다.

TV홈쇼핑에서도 잘 나간다. 그는 패션 뿐 아니라 호텔 방송에 특화 돼 있다. 지난해 2월 이 쇼호스트가 진행한 제주신화월드 호텔 이용권 방송은 한 시간 동안 3500명 고객 주문이 몰리며 1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가 지난해 제주신화월드 방송으로만 기록한 매출이 약 70억원에 이를 정도다.
판매 비결은 뭘까. 이 쇼호스트는 역설적으로 "판매에 목숨 걸지 않는 것이 나만의 판매 비결이다"고 밝혔다.
"상품을 팔기 전 미팅을 하거나 제가 직접 써보며 확인한 문제점을 감추지 않아요. 처음부터 어떤 단점이 있다는 것을 말하죠. 대신 그 단점을 보완할 방법을 제시하면서요. "
상품에 대한 스토리텔링 역시 빠지지 않는다. 이를테면 스타일러를 판매할 때 과거라면 상품 설명서를 읽기에 급급했겠지만 지금은 '언니 실크 좋아하잖아요. 그럼 그거 여기에 돌리면 돼', '진도 밍크 샀다고 드라이클리닝 맡기면 비싸잖아요. 스타일러에 넣으면 식당 냄새 그냥 빼주죠' 등과 같이 시청자들의 수요를 정확히 파악해 상품 설명에 곁들인다.
그는 쇼호스트가 아닌 아나운서로 방송 생활을 시작했다.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지난 2009년 '63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CJ E&M의 정규직 아나운서가 됐다. 그러나 그는 "넘치는 끼를 주체하기가 힘들었다"고 회상했다.
"프리랜서여도 좋으니 나를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정규직 아나운서를 포기하고, CJ홈쇼핑 시험을 봐 당당히 합격했습니다."
그는 최근 홈쇼핑 방송을 둘러싼 환경이 TV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것을 체감하며 고민이 크다고 했다.
"요즘 모바일 커머스 시장은 비유컨대 크리스마스 때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이는 명동과 같아요. 생동감 넘치면서 정신은 없죠. 게다가 코로나19 사태 이후 각종 채널에서 라방을 하며 현재 포화 상태에요. 반면 TV 홈쇼핑은 수십년 된 백화점처럼 올드하다는 느낌이 있어요. 다만 오래됐다고 해서 백화점이 무너지진 않잖아요. TV시대가 저물었다고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여전히 TV를 트는 것 처럼요. 홈쇼핑을 어떻게 현대화할지를 고민해야하는데, 그 첫 걸음이 저는 라이브톡과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주문 등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홈쇼핑 업계에서 속속 도입 중인 가상 쇼호스트에 대해서는 부정적이었다. "가상 쇼호스트가 결코 사람을 대체할 순 없다"는 이유에서다.
"사실 CJ온스타일에서도 저를 기준으로 AI 모델링을 한 적이 있거든요. 녹음까지 다 했는데 결국 만드는 데에는 실패했어요. 제가 워낙 다이나믹하고 움직임이 많아서요(웃음). 뉴스 앵커까진 모르겠지만 저처럼 에너제틱하고 디테일한 소통을 즐기는 쇼호스트의 경우 그 깊이감을 가상 쇼호스트가 절대 따라올 수 없죠(웃음). "
30살에 쇼호스트 활동을 시작해 어느덧 8년차인 그는 "이대로 롱런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모바일 방송이 활성화하면서 실시간 소통 창구가 더 확대됐어요. 더엣지 방송도 그 덕에 승승장구하고 있고요. 이대로 롱런하고 싶어요. CJ온스타일의 합리적인 문화 안에서 확실히 가능할 것이라고 봐요."
[방영덕 매경닷컴 기자 / 이하린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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