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호박도 예뻐야 팔린다"…'인큐애호박', 비닐 입은 이유는
입력 2022-01-21 07:02 
20일 서울 송파구 한 대형마트에서 판매 중인 인큐애호박. [이상현 기자]

미(美)에 대한 열망이 식품업계에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예쁘게 재배해야 한다는 이유로 과육에 비닐을 씌워 재배하는 것은 물론, 상품 가치가 충분한데도 모양 때문에 산지 폐기하는 일까지 빚어지고 있다. 전국 어느 마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인큐애호박' 얘기다.
'인큐애호박'은 애호박에 인큐베이터 비닐을 씌워 재배한 것을 말한다. 과육이 크기 전부터 비닐을 씌우는 까닭은 모양을 예쁘게 하고, 과육을 단단하게 하기 위함이다. 애호박이 자라면서 구부러지는 곡과(曲果)를 방지하려는 목적도 있다.
농촌진흥청이 지난 2019년 발간한 '호박 거래특성과 출하전략'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산 애호박은 대부분 인큐애호박이다.
하우스재배가 이뤄지는 경남 진주와 충북 청주·오송 지역의 경우 출하 물량의 99%, 70%를 인큐애호박이 각각 차지한다. 경기 북부(양주·연천·의정부·포천) 일대에서는 인큐애호박 비중이 90%다. 강원 화천·춘천은 노지재배 물량이 출하되는데 이 중 30%가 인큐애호박이다.

지역별로 차이가 있지만, 대체로 인큐애호박 비중이 높은 이유는 간단하다. 예쁘지 않으면 시장에서 상품 가치를 인정받지 못해서다.
농촌진흥청이 지난해 9월 조사한 인큐애호박과 일반 애호박의 도매상 평균가는 8kg 기준 2만2584원, 1만3093원으로 각각 나타났다. 8kg 기준으로 인큐애호박이 9491원(72.5%) 더 비싼 것이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애호박은 출하를 위해 상자에 담을 때 모양이 예쁘게 나와야 높은 가격을 받을 수 있다. 모양이 곧은 원통형 형태를 띠고 과육이 단단해야 비로소 시장에서 상품성을 인정받는다.
재배 과정에서 비닐이 벗겨져 모양이 예쁘지 않으면 낮은 등급 판정을 받는다. 시장이 인큐애호박을 선호하는 까닭에 못생긴 애호박은 산지에서 폐기되기도 한다. 맛과 영양에 거의 차이가 없어도 결과는 똑같다.
지난해 7월 25일 강원도 화천군에서 농민들이 애호박을 산지 폐기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마트에서는 애호박을 대부분 낱개로 판매한다. 그런데 낱개로 팔면 진열대에 있는 걸 소비자들이 손으로 만지는 경우가 있다"며 "애호박은 껍질이 약한 편이라 만지면 상처가 난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상처가 생긴 애호박은 소매점에서 손실로 이어진다"며 "결국 소매점들이 자신의 이윤을 극대화하려다 보니 인큐애호박 위주로 판매하게 된 것"이라고 부연했다.
농작물이 산지 폐기되는 점도 문제지만, 인큐 비닐도 골칫거리다. 통계청과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연평균 호박 생산량은 20만t이고, 이 중 90%(18만t)가 애호박이다. 인큐애호박이 대개 300g 남짓인 점을 고려하면 해마다 6억개가량 비닐이 사용되는 셈이다.
문제는 이 비닐은 복합 플라스틱인 '아더(other)' 재질이라 재활용이 어렵다는 점이다. 플라스틱과 비닐 폐기물 처리가 국제 관심사로 떠올랐지만, 국내에서는 자연 그대로의 애호박을 찾아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실제로 매경닷컴이 이달 17~19일 서울 강남·송파구와 경기도 성남·하남 일대 대형마트, 지역 할인마트 13곳을 확인한 결과, 무포장 애호박을 파는 매장은 단 2곳뿐이었다.
농촌진흥청은 애호박에서 비닐을 벗겨도 쉽게 부패하지 않는다며 자연 그대로의 식자재 소비가 필요하다고 추천했다.
농촌진흥청 관계자는 "곡과보다는 올곧은 모양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수요도 있으나, 마트 등에 판매하는 것이 대다수가 인큐애호박이다 보니 소비자의 선택권이 좁아진 측면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어 "비닐이 없다고 해서 흐물흐물해지고 부패가 된다고 볼 수는 없다. 외식업체에서 일반 애호박을 선호하는 게 그 방증"이라며 "마트나 소매점에서는 인큐애호박을 선호하지만, 외식업체에서는 비닐을 벗기는 데 노동력이 필요해 일반 애호박을 선호한다"고 덧붙였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 유서현 매경닷컴 인턴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MBN APP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