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종일 쪼그려 앉아 땅 파지만…도자기 조각 하나에도 기쁘죠"
입력 2022-01-15 09:16  | 수정 2022-01-15 18:34

"먼 과거의 사람들이 일상처럼 쓰던 물건들이 수십년 수백년이 흘러서 그 자리에 있는 상태로 눈 앞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의 희열감은 이루 말할 수 없죠"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에서 석촌동 고분군, 몽촌토성 등지의 발굴작업을 맡고 있는 윤정현 학예연구사는 발굴작업에는 "은행원과 같은 마음이 필요하다"고 재차 강조했다. 과거 사람들이 실제로 사용하던 토기, 청자의 조각조각을 찾아 이어붙이고 정리하는 작업에는 사람들이 맡긴 돈과 자산을 종류에 따라 나눠 정리하고 분류하는 작업을 하는 것과 같은 세심함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조사원의 일상은 조금 이른 오전 8시에 시작된다. 오전8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현장 발굴작업에 매진한다. 윤 연구사는 "발굴작업 자체는 즐겁지만, 하루 종일 밖에서 일을 하는 만큼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고 전했다. 한성백제박물관의 경우 동절기를 제외하고 4월부터 11월까지 조사를 실시하는데, 기온이 40도까지 치솟는 여름작업때는 땡볕을 그대로 받으며 작업을 이어나가야 한다. 발굴작업이 끝나면 그날 발굴한 유구(움직일 수 없는 유물)과 유물을 토대로 정리·조사 작업을 이어간다. 한여름에도 그늘 없는 야외에서 직업을 이어나가야 하지만 윤 연구사는 "지금까지 찾아냈던 유물, 유구들이 하나하나 다 의미가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작은 유물이든 큰 것이든 내 손으로 깨진 토기들을 복원하고 접합해서 나중에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모습을 보면 귀한것이든 아니든 상당한 보람이 있다"고 말했다.
윤 연구사는 과거와 달리 발굴조사원이 되기 위한 방법도 다양해졌다고 전했다. 일반적인 경우는 대학 혹은 대학원에서 고고학·사학·문화재학·국사학 등을 전공한 뒤 문화재청의 승인을 받아 보조원으로 경력을 쌓을 수 있다. 관련학과를 나오지 않아도 조사원이 될 수 있는 길은 있다. 윤 연구사는 "전국에 문화재 발굴 작업을 하는 비영리 발굴조사 법인만 110여개"라면서 "이들 기관에서 경력을 쌓고 조사원 경력을 인정받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밝혔다. 윤 연구사도 대학에서는 행정학을 전공했다. 어릴적부터 발굴조사 업무를 꿈꾸던 그는 행정학과 사무실과 붙어있는 사학과 사무실에서 발굴조사원을 구한다는 말을 듣고 지원하면서 발굴조사원의 길을 걸었다. 비영리법인에서 경력을 쌓은 그는 2016년부터 한성백제박물관 백제학연구소에서 본격적인 조사 연구 업무를 맡아오고 있다.
윤 연구사는 발굴조사의 빛과 그늘은 모두 현장에 있다고 말한다. 현장을 떠나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지방의 발굴현장을 다녀야 할때는 몇달동안 숙식을 타지에서 해결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는 "어릴적 동경의 대상이던 유물의 발굴과정을 직접 마주하는 기쁨은 현장이 아니라면 느낄 수 없다"면서 "기계와 인공지능이 발달해도 발굴작업은 대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자부심을 보였다. 실제로 지난 2017년 한국고용정보원 발표에 따르면 문화재보존원과 조사전문가는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어려운 직업"18위와 20위를 각각 차지했다.
[박제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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