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멸공'이라고 말하면 안되나 [핫이슈]
입력 2022-01-12 08:58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멸공'을 둘러싼 소동이 가관이다.
이게 애초에 논란거리가 될만한 일인지부터 묻지 않을 수 없다.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다.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는 국민의 기본권이다.
'멸공'을 외치던 '멸치'를 외치던 그건 개인의 자유다. 법의 선을 넘어서지만 않는다면 표현의 자유를 그 어느누구도 속박할수 없다.

더군다나 단지 내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듣기 불편하다는 이유로 상대방 입에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그런데 여당 정치인들과 강성 지지층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연일 마녀사냥하듯 정 부회장을 때리며 인격모독적 발언도 서슴지 않는다. 정상이 아니다.
윤호중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모 유통업체 대표의 철없는 멸공 놀이"라고 했다.
윤 원내대표에게 정 부회장을 철부지 대하듯 훈계하고 모독할 권리는 없다. 기업인을 우습게 보는 정치인 갑질 행태다.
정치권력을 쥐고 있으니 기업인들이 모두 발 밑에 있다고 착각하고 있는듯 하다.
기업인이 멸공을 말하면 안되는 법이라도 있는지 묻고 싶다.
김어준씨는 자신이 진행하는 방송에서 "자기(정 부회장)는 군대 빠지면서 무슨 멸공이냐"고 했다.
군대 안가면 멸공을 입에 올리지 말라는 법이 있나. 황당 궤변이다.
송영길 당대표는 "역사를 거꾸로 되돌리는 일" 이라고 했다. 이건 또 무슨말인가.
멸공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게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것이다.
이것도 성에 안찼는지 이젠 스타벅스, 이마트 등 신세계 계열사 불매운동을 선동하는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최강욱 열린민주당 대표는 "표현의 자유? 불매의 자유!"라고 SNS에 올렸다.
표현의 자유에 불매의 자유로 맞서겠다는거다. 둘을 엮는것 자체가 억지스럽다.
현근택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은 "앞으로 스타벅스 커피는 마시지 않겠습니다"고 했다.
진성준 민주당 의원은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스타벅스 가지 않을 생각"이라고 썼다.
입을 닫지 않으면 기업을 망가뜨리겠다는 찌질한 겁박이다.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인권과 표현의 자유를 더 신장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이기는 커녕 완력으로 입을 틀어막으려 한다.
멸공이 언제부터 신성불가침의 금기어가 됐나.
왜 이렇게까지 과민반응을 보이는지, 선뜻 이해하기 힘든 섬뜩한 적대감과 공격성이다.
이견을 허용치 않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는 잣대로 남을 재단하고 생각까지 통제하려는건 위험천만한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여권이 멸공에 발끈하고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건 중국과 북한에 대한 저자세 굴욕외교와도 맞닿아있다.
우리를 속국취급하는 중국이 툭하면 고압적 태도로 외교적 비례(非禮)를 저지르고, 중국 군용기가 영토와 영공을 방어하기 위한 우리의 방공식별구역(KADIZ)을 제집 드나들듯해도 여권 정치인과 정부는 항의 한번 제대로 한적이 없다.
북한에도 마찬가지다.
미사일을 쏴도 우리한테 안 쐈으니 도발이 아니라고 하고, 김여정이 우리 대통령을 '미국산 앵무새''소대가리'라고 모욕을 해도 입을 닫았다.
항의는 커녕 알아서 북한과 중국앞에 납작 엎드리니 중국과 북한이 우리를 함부로 막 대하는 것이다.
이번에도 멸공때문에 중국과 북한이 항의할까봐 더 난리를 치는것 아닌가.
실제로 여권 정치인 일부가 멸공이 외교결례와 국익훼손을 초래한다고 비판하고 나섰다. 너무 굴종적이어서 얼굴이 화끈거린다.
정말로 중국이나 북한이 예의 오만방자하고 고압적인 태도로 항의를 해오면 이렇게 말하면 된다.
"대한민국은 자유와 민주, 인권이 최우선인 나라다. 정치인도 아니고 공직자도 아닌, 일반 국민이 하는 말을 정부가 나서서 '하라, 하지 말라'할 권리가 없다"
북중처럼 개인의 자유의지와 이견을 허용치 않는 전체주의 국가에서는 권력이 국민과 인민 위에 군림하고 통제하지만 우리는 아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다 다르고 자유롭게 표현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 국민에게 있다. 이같은 다양성과 다원성이 민주주의 국가의 강점이다.
그런데도 정치권 겁박으로 정 부회장은 앞으로 멸공이라는 단어를 SNS에 올리지 않겠다고 했다.
한 사람의 표현의 자유가 사라진것이다. 이런 국민이 두명, 세명이 되고 나중에는 걷잡을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표현의 자유를 상실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인권 자유 민주라는 인류의 보편적 가치는 안중에도 없는 중국·북한과 뭐가 다른가.
[박봉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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