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여자 잡스→희대의 사기꾼…엘리자베스 홈즈, 결국 유죄 평결
입력 2022-01-04 19:21  | 수정 2022-01-04 19:22
유명 잡지의 표지를 장식했던 '여자 잡스' 엘리자베스 홈즈 / 사진=각 잡지사 홈페이지 캡처
"피 한 방울로 250개 질병 진단 가능"
美 혁신 기술, 사기 판명…4개 혐의 유죄

피 한 방울로 250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다던 '여자 잡스'의 혁신 기술이 결국 사기로 드러났습니다.

홈즈, 4건 유죄 평결…3개 혐의는 무죄

현지 시간으로 3일 법원에 들어서는 엘리자베스 홈즈 / 사진=연합뉴스

현지 시간으로 3일 CNN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호세 지방법원에서 12명의 배심원단은 바이오벤처 테라노스 창업자 겸 전 최고경영자(CEO) 엘리제베스 홈즈에게 적용된 11건의 기소 죄목 중 4건을 유죄로 인정했습니다.

유죄가 인정된 혐의는 ▲ 투자자 사기 공모 ▲ 브라이언 그로스먼 투자자에 대한 3천800만 달러(약 454억 원) 사기 ▲ 데보스 일가에 대한 490만 달러(약 59억 원) 사기 ▲전 투자자 댄 모슬리를 상대로 한 600만 달러(약 72억 원) 사기 등 입니다.

다만 환자 사기 공모 1건과 부정확한 검사 결과를 받은 환자와 관련된 2건 등 총 3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 선고를 받았습니다. 1개 혐의는 기각됐고, 나머지 3개 혐의에 대해서는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이번 배심원단의 평결을 토대로 추후 에드워드 다빌라 미국 지방법원 판사가 나머지 혐의에 대한 유죄 여부와 형량을 최종 선고할 예정입니다.

평결 이후 가족과 함께 법정을 나선 홈즈는 취재진의 질문에 침묵으로 일관했습니다.

'여자 잡스' 홈즈,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 오르기도

2015년 엘리자베스 홈즈 / 사진=연합뉴스

1984년생인 홈즈는 만 19세의 나이에 바이오 스타트업 '테라노스'를 설립해 실리콘밸리의 수퍼스타로 떠올랐습니다. 특히 그는 ▲ 스탠퍼드대를 중퇴한 점 ▲ 흔치 않은 여성 창업자인 데다가 화려한 외모인 백인인 점 ▲ 스티브 잡스를 연상케 하는 검은 터틀넥 스웨터를 착용한 점 등으로 주목받았습니다.

홈즈는 피 한 방울로 250개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기술을 내세워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 등 거물 투자자를 유치하고, 전설적인 외교관 헨리 키신저와 전 국무장관 조지 슐츠 등을 기업 이사로 뒀습니다.

이뿐 만 아니라 조 바이든 당시 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알리바바그룹의 마윈 회장 등의 극찬을 받으면서 '여자 잡스'라는 칭호와 함께 성공 신화의 주인공이 됐습니다.

한때 테라노스의 기업 가치는 90억 달러(약 10조8천억 원)에 달했으며 홈즈의 순자산 또한 45억 달러(5조4천억 원)에 이르러 2015년 포브스가 선정한 최연소 자수성가 여성 억만장자에 올랐습니다.

내부 고발자 폭로에 몰락…새벽 2시에 재판 방청석 티켓 줄도

지난해 11월 재판에 참석하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내부 고발자가 "혈액 질병 진단 기술은 사기에 가깝다"라고 폭로하면서 그의 성공 신화는 무너졌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15년 내부 고발자를 인용해 테라노스가 개발했다는 기기의 정확성에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실제로 테라노스 기술로 진단할 수 있는 질병은 16개에 불과했고, 나머지 200여 개 질병은 기존의 대규모 의학 장비로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더욱이 당시 홈즈가 "우리는 언젠가 그 많은 질병을 검사할 기술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말하면서 누리꾼들의 분노는 고조됐습니다.

이에 테라노스가 진행한 연구는 2016년 전부 무효 처분됐고, 2018년 미 검찰은 홈즈와 그의 전 남자친구이자 테라노스 최고운영책임자(COO)였던 라메시 서니 발와니 등을 사기 혐의로 기소했습니다.

이후 코로나19와 홈즈의 임신·출산 등으로 3년간 미뤄졌던 재판이 지난해 9월 재개됐습니다. 높은 관심에 34명만 들어갈 수 있는 방청석 티켓을 구하고자 법정 앞에 새벽 2시부터 줄을 서는 광경이 펼쳐지기도 했습니다.

홈즈 측 "당시 남자친구가 시킨 것" 주장

현지 시간으로 3일 유죄 평결 받은 뒤 법원을 떠나는 엘리자베스 홈즈 / 사진=연합뉴스

재판에서 홈즈 측은 당시 남자친구였던 서니에게 심리적·성적 학대를 당해 그가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며 책임을 떠넘겼습니다.

홈즈의 변호인단은 "사업에 실패한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며 "홈즈는 테라노스의 복잡한 기술적 단점을 이해하지 못한 채 선의에 의해 사업을 추진했을 뿐, 고의로 거짓말을 하거나 사기를 저지르지 않았다"라고 주장했습니다.

검찰은 29명의 증인으로부터 다량의 문서 증거와 증언을 확보해 홈즈가 고의로 혈액 검사 기술 효과를 과장하고 보고서를 조작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데 주력했습니다. 증인으로 출석한 테라노스의 전 연구소 소장은 "기술적 결함에 대한 우려와 지적이 제기됐지만 대체로 무시됐다"라고 증언하기도 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유죄 평결과 관련해 "투자자를 꾀려는 신생 기업의 속임수는 이따금 발생했지만 형사 기소로 이어지지는 않는 경우가 많았다"며 "바이든 정부의 법무부는 화이트칼라 범죄에 다시 초점을 맞추고 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한편, 애플 오리지널 필름은 홈즈의 사기극을 영화로 만들겠다고 밝혔습니다. 애플 측에 따르면 탐사 저널리스트인 존 케리로우가 집필한 '나쁜 피:실리콘 밸리의 비밀과 거짓말'(Bad Blood: Secrets and Lies in a Silicon Valley)를 기반으로 제작되며 배우 제니퍼 로렌스가 홈즈 역할로 출연할 예정입니다.

[차유채 디지털뉴스 기자 jejuflower@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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