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자살예방 상담전화는 누가 받아야 할까요…민간 봉사자? vs 정부 상담사?
입력 2021-12-23 17:12 
자살예방 상담전화를 받는 상담사를 정부가 고용해 운영하는 건 '시장 교란'이라는 비판이 제기됐습니다.

지난 21일 '자살예방 상담시스템 활성화 방안'을 논의하는 국회자살예방포럼 정책세미나에서 나온 주장입니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날 세미나에서 "정부가 자살예방 정책 속도를 굉장히 빨리 내다가 영역을 침범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자살예방 상담전화는 선한 의도를 가진 봉사자 중심의 민간 운동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정부가 직접 운영하면서 급여를 주면 봉사활동으로 참여하는 상담사에 대한 처우와 균형이 맞질 않아 결국 시장을 교란하게 된다는 지적입니다.

실제 정부가 운영하는 1393으로 자원 봉사자가 이탈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백 교수는 공공 모델과 민간의 자원봉사 모델이 공존하기는 어렵고, 역할 분담이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이화영 한국자살예방협회 사무총장(순천향대학교 부속 천안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의 주제 발표를 눈여겨 볼만했습니다.

이 교수는 자살예방 상담시스템을 세 가지 단계로 나눠 봐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자료1 PPT 53쪽 참고)

CASE1 : 1회 상담으로 종결 가능

CASE2 : 위기는 아니지만, 지속상담 및 추후 관리 필요

CASE3 : 자살 위기 상황 (출동 필요)

CASE1처럼 전화 상담만으로 종결할 수 있는 부분은 봉사로 참여하는 상담사, 즉 민간 영역에 맡겨야 하고, CASE3은 119 또는 112의 출동이 필요해 공공의 개입이 필요합니다.

CASE2는 상담사가 추후 관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정신건강복지센터를 연결해 사후관리와 치료로 연계할 수 있습니다. CASE2는 '민간+공공'의 영역인 셈입니다.

이 교수와 백 교수는 CASE2에 대한 공공 지원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이후 CASE2와 CASE3의 정책 효과를 연구해 추가 정책과 예산 확대를 고민하는 방향으로 가야 역할 구분을 명확히 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문제는 현 보건복지부의 자살예방 상담전화 정책 방향이 전문가들의 주장과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국내 대표적인 자살예방상담 시스템인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은 보건복지상담센터에서 담당합니다.

보건복지상담센터 자살예방상담팀과 위기대응팀이 자살예방 상담을 하고 있는데, 50여 명가량입니다.

정부는 상담사를 내년에 80명까지 확대할 방침입니다.

그동안 1393은 전화통화가 잘 안돼 질타를 받았고, 이후 상담사 고용을 늘려왔습니다.

한시적으로 내년 3월까지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에 위탁해 1393 자원봉사센터를 운영해 응대율을 높이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CASE1까지 공공에서 맡아 하겠다는 모양새입니다.

이에 토론에 참여한 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1588-9191) 원장은 민간과 공공이 협력하기 위한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한국생명의전화는 교육받은 자원봉사자 1,600여 명과 함께 자살예방 상담을 하는 우리나라 최초의 민간 운영 상담 기관입니다.

하 원장은 민·관 상담전화 번호를 1393으로 통일하고, '자살'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도록 '생명의전화'로 이름을 통일했으면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정부도 고민 중입니다.

원소윤 보건복지부 자살예방정책과장은 토론회에서 민관의 거버넌스를 어떻게 정리할지 내부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CASE1에 해당하는 일반적인 상담은 민간 자원봉사자로 하려고 논의 중인데, 1393의 10월 응답률이 아직 70% 초반 대입니다.

10통 중 3통은 아직 못 받는 수준입니다.

코로나19로 인한 생계 위협이 자영업자의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질 위험이 커지고 있어 당장 정책 방향을 바꾸기 쉽지 않습니다.

원 과장은 현재 번호가 더 많이 알려진 129를 통해 전화하는 사람이 많고, 이 가운데 자살 위험이 감지되면 1393으로 연계하고 있다고설명했습니다.

토론회에서는 자살예방 상담전화의 민관 역할 분담의 문제뿐 아니라, 다양한 현안이 거론됐습니다.

1393 자원봉사센터를 위탁받아 운영 중인 윤진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부장은 현재 4조 3교대 근무의 문제점을 지적했습니다.

상담사에게 신체적 무리가 와서 오래하지 못하는 구조라는 겁니다.

윤 부장은 야간에는 상담전화가 몰리고 위기 상황도 많은데, 4일 연속 밤샘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어, 5조 3교대를 제안했습니다.

이은진 수원과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상담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표준화된 전화상담 매뉴얼과 응급출동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 한국생명존중희망재단 등이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며, 중앙 차원에서 교육과 상담사의 소진 관련한 대안을 제시하고 예산을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습니다.

전주생명의전화를 운영 중인 김한주 이사장의 새로운 시도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김 이사장은 노인 일자리 사업을 통해 월 71만 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상담원으로 채용해 운영해보고 있습니다.

순수한 자원봉사 정신이 퇴색하지 않도록 71만 원 중 30만 원은 기부를 받는 걸로 협의했습니다.

이에 동의한 분들이 상담원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김 이사장은 전했습니다.

이에 대해 좌장을 맡은 기선완 한국자살예방협회장은 국가는 자원봉사자를 교육하고 봉사자를 잘 관리할 시스템을 지원해야 한다고 정리했습니다.

기 회장은 봉사자에게는 급여보다는 동기를 유발하고 자긍심을 높일 지원을 고민해달라고 주문했습니다.

이밖에 연령대별 자살 통계에서 80세 이상의 자살률이 가장 높은데, 요양보호사에게 자살예방 교육을 해 자살률을 낮추자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요양보호사 보수교육에 노인심리 교육을 강화하고 우울증과 자살 예방을 교육하자는 건데, 온라인으로 생명지킴이 교육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생명지킴이'는 자살 위험에 처한 주변인의 신호를 인식해 지속적 관심을 두고 그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기관 또는 전문가에게 연계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한국형 표준 자살 예방 교육은 고 임세원 교수가 개발한 '보고·듣고·말하기가 있습니다.

이번 토론회는 국회자살예방포럼이 주최했고, 한국자살예방협회와 안실련, 생명보험사회공헌위원회가 주관했습니다.

<자료1>
이화영 교수의 PPT 발표 자료입니다.

http:www.safelife.or.kr/bbs/board.php?bo_table=news&wr_id=137

<자료2>
자살예방 정책세미나 영상입니다.

https:youtu.be/keYPk-ekDc0


[이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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