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경찰, '8개월 아들 폭행·뇌손상' 첫 학대 신고 당시 '부실 대응'
입력 2021-12-22 10:59  | 수정 2021-12-22 11:23
사진 = 연합뉴스
부모 휴대전화 미확보…피해아동 분리조치 안 해
'선천적 원인'이라던 의사 1명 오진 믿어

생후 8개월 아들을 때려 뇌 손상을 입힌 30대 아빠가 최근 중형을 선고받은 가운데 경찰이 첫 학대 의심 신고 당시 초동 수사를 부실하게 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습니다.

경찰이 내사 중인 상황에서 피혐의자 아빠는 뇌출혈 수술을 받고 퇴원한 아들을 다시 폭행하는 추가 범행을 저질렀습니다. 이에 결국 피해 아동은 뇌 병변 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22일 인천경찰청 등에 따르면, 지난해 1월 27일 112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가 접수됐습니다. 신고자는 생후 8개월인 A 군의 상태를 진찰한 인천의 한 종합병원 의사였습니다.

이 의사는 경찰과의 면담에서 "최근 생긴 것으로 보이는 뇌출혈 증상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뇌출혈뿐 아니라 A 군의 이마에는 멍 자국 3개가 있었습니다. 왼쪽 뺨과 좌우 팔에도 멍이 보이는 등 몸 곳곳에서 '다발성 좌상'이 관찰됐다고 전했습니다.


이에 경찰은 내사에 착수했고, A 군 아빠인 B 씨(34)와 그의 아내를 상대로 멍이 생긴 이유를 조사했습니다. B 씨는 피혐의자 신분으로 받은 경찰 조사에서 "팔에 든 멍은 목욕하다가, 이마에 든 멍은 흔들의자에 떨어드려 생겼다"며 학대 의혹을 전면 부인했습니다. B 씨 아내도 학대는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했습니다.

최초 신고를 한 병원의 또 다른 신경외과 의사도 "선천성 수두증에 의한 뇌출혈로 보인다"는 의견을 경찰에 밝혔습니다. 이에 경찰은 B 씨의 신병을 확보하지 않았고, 그 사이 뇌출혈 수술을 받은 A 군은 B 씨 부부에게 인계됐습니다. 결국 A 군은 아동학대 피혐의자인 B 씨와 분리되지 못한 채 함께 집으로 갔습니다.

이후 B 씨는 A 군이 병원에서 퇴원한 지 20일도 안 돼 다시 폭행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3월 초 기저귀를 갈다가 A 군이 울음을 멈추지 않자 손으로 팔과 다리를 강하게 움켜쥐어 대퇴골을 부러뜨린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같은 달 9일 다시 병원 응급실에 온 A 군을 본 의료진은 다시 경찰에 학대 의심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은 2차 신고가 접수돼서야 대한법의학회에 A 군의 진료기록을 감정해달라고 의뢰했습니다.

법의학회는 "뇌출혈은 외상에 의한 것으로 선천성 수두증이 뇌출혈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경찰이 첫 신고 때 참고한 신경외과 의사의 견해와 완전히 배치되는 의견을 밝혔습니다. 또 "이마와 좌측 볼에 생긴 멍은 색깔로 볼 때 형성된 시기가 다르다"며 "단 1차례 외부의 힘으로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뒤늦게 경찰은 지난해 8월 중순 아동복지법상 아동학대와 상해 혐의로 B 씨를 입건해 검찰에 송치했습니다. 하지만 구속영장조차 신청하지 않고 불구속 상태로 넘겼습니다. 이후 10개월간 보강수사를 한 검찰은 형량이 더 무거운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 아동학대 중상해죄를 추가하고 B 씨를 구속한 뒤 재판에 넘겼습니다.

B 씨는 첫 신고 전날인 지난해 1월 26일 오후 6시쯤 인천시 연수구 자택에서 당시 A군의 눈과 이마 등을 손으로 강하게 3차례 때려 뇌출혈로 중상을 입힌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의료진이 처음 아동학대 신고를 했을 때 경찰의 초동수사가 부실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역 법조계 한 변호사는 "경찰은 아동학대 혐의를 받는 아빠와 피해 아동을 분리 조치하지 않았다"며 "아동학대 신고가 들어왔다고 무조건 분리 조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A 군은 뇌출혈뿐 아니라 몸 곳곳에 멍 자국이 있던 상태였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경찰이 '선천성 수두증에 의한 뇌출혈'이라는 의료진 1명의 오진만 믿고 초동 수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며 "검찰 송치 때 학대에 의한 뇌출혈이 확인됐는데도 중상해 혐의를 적용하지 않고 구속도 하지 않은 것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라고 했습니다.

특히 경찰은 첫 신고를 접수하고 B 씨 부부 휴대전화도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통상 아동학대 사건의 가해자가 부모일 때는 말을 맞춰 거짓 진술을 하는 사례가 많아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은 결정적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수사 절차입니다. 실제로 B 씨 아내의 휴대전화에는 지난해 1월 27일 처음 A 군을 병원에 데려가기 전 상처 등을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있었습니다.

또 첫 신고 후 경찰 내사가 진행 중인 같은 해 2월 2일에는 "내가 죄인이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B 씨가 아내에게 보낸 사실도 재판 과정에서 확인됐습니다. B 씨는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인정하면서 "아내가 아들의 얼굴 멍에 대해 다른 아이들이 그렇게 한 거라고 하자고 해서 경찰 조사 때 거짓말을 했다"고 진술했습니다. B 씨 아내도 검찰에 "남편이 처벌받지 않게 하려고 사실대로 진술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A 군은 뇌출혈 진단을 받은 지 4개월 만인 지난해 6월 보행뿐 아니라 모든 일상생활 동작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정도의 '뇌 병변 중장애' 판정을 받았습니다.

경찰 관계자는 "1차 신고 접수 뒤 관련자 조사 등 내사를 계속했다"며 "당시 상황에서 분리 조치를 하기는 어려웠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2차 신고 당일 곧바로 피해자와 B 씨를 분리했다"며 "그때는 두 번째 학대 의심 신고여서 곧바로 조치했다"고 덧붙였습니다.

한편 인천지법 형사15부(이규훈 부장판사)는 이달 9일 B 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습니다. 그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최근 항소장을 법원에 제출했습니다.

[디지털뉴스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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