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신격화 통치 시동? 김정은, '수령' 등극…김일성·김정일 사진 없앴다
입력 2021-10-29 10:05  | 수정 2021-10-29 10:27
지난 11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수령', 김정일도 생전 사용 못한 존칭
'김정은주의', 北 독자적 사상 정립 시도

어제(28일) 북한 관영 매체들이 올해로 집권 10주년을 맞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 대해 처음으로 '수령'이란 호칭을 붙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북한에서 '수령'은 김 위원장의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에게만 허락된 호칭으로,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생전 이를 쓰지 못했습니다.

어제 국회 정보위원회 여야 간사인 김병기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국가정보원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보위 국감 중 브리핑을 통해 국정원의 보고 내용 일부를 전했습니다.

이들은 "김정은이 당 회의장 배경에서 김일성·김정일의 사진을 없앴다"며 "북한이 최근 '김정은주의'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독자적 사상 체계 정립도 시작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지난 22일 북한 매체 중 가장 권위 있는 것으로 알려진 노동신문 논설에는 김정은을 '수령'으로 지칭한 표현이 세 군데 등장했습니다.

사용된 표현은 '혁명의 걸출한 수령이시며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신 경애하는 김정은 동지', '또 한 분의 위대한 수령', '경애하는 총비서 동지를 혁명의 위대한 수령으로' 등입니다.

김정일도 생전 '장군님'으로 불렸고 사후에야 '선대 수령'이란 호칭을 받았습니다. 이를 두고 정교진 고려대 북한통일연구센터 연구위원은 "김정일이 생전에 수령 호칭을 쓰지 않은 것은 자칫 유훈 통치와 결별하고 김일성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김정은도 집권 초기엔 수령 등극을 미룬 측면이 있다"라고 했습니다.

김정은은 집권 초기 김일성의 옷차림과 행동을 흉내 내는 모습을 자주 노출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집권 10년 차를 맞으면서 '수령' 호칭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김일성·김정일 시대가 완전히 지나가고 '김정은 시대'가 열렸음을 과시하려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옵니다.

지난 2016년 열린 북한의 7차 당대회 모습과(아래 사진) 5년 뒤 8차 당대회(위 사진)의 회의장 모습. 김일성·김정일 초상이 부각된 7차 대회와 달리 8차 대회장에는 노동당 대형마크가 전면에 배치돼 있다. / 사진=연합뉴스

지난 1월 8차 당대회에서는 '온 사회의 김일성·김정일주의화'라는 표현이 사라지고 김정은의 '유일적 영도체계'가 강조됐으며 7차 당대회장 정면에 자리했던 김일성·김정일 초상화도 내려지고, 노동당의 대형마크가 자리했습니다. 김정은의 노동당 영도체제 중시 맥락이지만, 사실상 이때부터 '김정은주의' 독자노선화 움직임이 감지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하 의원은 "'김정은주의'를 북한의 새로운 독자적인 사상 체계로 정립하는 시도가 있는 것 같다"며 김정은이 신격화 통치에 시동을 걸었다는 견해를 밝혔습니다.

어제자 노동신문 논설에 '김정은 동지의 혁명 사상으로 무장'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아직 해당 사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으나 '김일성·김정일주의'를 잇는 노동당 지도 이념일 것으로 해석됩니다.

지난 12일 조선중앙TV가 보도한 전람회장을 둘러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 사진=연합뉴스

최진욱 전 통일연구원장은 "'수령' 호칭에 이어 '김정은주의', '김정은 혁명 사상'까지 등장한 것은 대북 제재와 코로나로 인한 봉쇄 장기화에 따른 경제난으로 실추된 김정은의 권위를 회복하려는 의도로 보인다"라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최근 북한 주민들의 생활고는 더욱 심각해진 상황입니다. 대북제재와 코로나 봉쇄로 북중무역은 전년 대비 3분의 1수준으로 급감했고, 현재 국가의 기본 기능인 화폐 발행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국정원은 김정은이 최근 "살얼음을 걷는 심정"이라면서 "낟알 한 톨까지 확보하고 밥 먹는 사람은 모두 농촌 지원에 나서라"라고 지시했다고 밝혔습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지난달 9일 모습(왼쪽), 지난해 10월 조선노동당 창건 75주년 경축 열병식에 참석한 모습 / 사진=연합뉴스

한편, 최근 미국·일본 일각에서 제기된 김정은 대역설과 관련해서는 "근거가 없고 사실이 아니라고 단정적으로 보고했다"라고 밝혔습니다. 앞서 외신들은 최근 김정은의 외모가 과거와 달리 체중이 많이 빠져 날렵해진 점을 '김정은 대역설'의 주된 근거로 제시한 바 있습니다.

[차유채 디지털뉴스 기자 jejuflower@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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