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현장에서] 10년 넘게 표류하던 '악성' 재개발, 부활 날갯짓 비결은?
입력 2021-10-27 11:35  | 수정 2021-10-27 15:13
이교현 제기4구역 조합장과 사업부지 둘러보는 모습
요즘 서울 강북권, 그 중에도 동북 지역에서 '핫한' 곳을 꼽으라면 단연 청량리역 일대입니다.

역세권 재개발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집창촌과 청과시장 등이 있던 자리엔 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를 짓는 공사가 한창인데요.

지금은 전매제한으로 묶여 있지만, 아파트가 다 지어지면 전용84㎡이 20억 원은 넘을 것이라는 얘기가 중개업소에서 솔솔 나옵니다.

그런데 청량리역 큰길 건너편을 보면 완전히 다른 세상입니다.


역시 곳곳에서 재개발이 진행되고 있지만, 맞은 편과는 달리 사업 속도가 더뎌 여전히 낡은 구도심으로 남아 있습니다.

특히, 제가 찾아간 제기4구역은 외관상으론 재개발이 처음 추진됐던 20년 전 모습에서 멈춰 서 있는데요.

사업 부지가 평지인데다 청량리역을 걸어서 5분 정도면 갈 수 있어 눈에 띄는 지역인데, 왜 악성 재개발로 남아 있었던 걸까요?



◆ 부패·비리 '얼룩' 착공 앞두고 10년 표류


제기4구역 주택재개발 정비사업은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288번지 일대 33,485㎡를 재개발해 공동주택과 부대복리시설을 짓는 사업입니다.

1998년 추진위원회가 설립되면서 재개발이 시작됐지만, 사업 과정은 평탄치 않았습니다.

2006년 조합 설립에 이어 2009년 관리처분인가를 받아 이주가 70%까지 진행됐지만, 이후 사업은 올스톱됩니다.

주민들로부터 받은 동의서에 중대 하자가 발견돼 조합설립인가가 취소된 겁니다.

우여곡절 끝에 비상대책위 측 인사가 2015년 새로 조합을 설립했지만, 정비업체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 등으로 2018년 구속되면서 이마저도 무산됐습니다.

착공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10년에 가까운 세월을 날린 것이죠.

제기4구역 조감도 / 사진=조합


◆ 악성 재개발에서 2년 만에 우량 사업장으로


대표적인 악성 재개발로 남을 뻔했던 제기4구역은 이후 반전의 기회를 잡습니다.

이교현 조합장을 비롯한 2기 집행부를 중심으로 조합원들이 뭉치면서 사업 정상화의 실마리를 잡은 겁니다.

기존 집행부와의 단절을 위해 정비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19년 3월 사업시행인가, 20년 5월 시공사 선정에 이어 올해 4월 조합원 분양신청까지 마쳤습니다.

20년 넘게 멈춰 있던 사업장이 2년 만에 우량 사업장으로 탈바꿈한 겁니다.

이교현 제기4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 조합장


◆ 투명한 조합 운영…강북 재개발 모범 사례로


이교현 조합장은 빠른 정상화의 비결로 무엇보다 투명한 운영을 강조합니다.

책임감을 가지고 공정하고 깨끗하게 조합을 운영하면서 조합원들의 신뢰를 얻게 됐고, 그 힘으로 어려운 문제들을 하나씩 풀어나갔다는 겁니다.

이 조합장은 특히, 과거 서류 미비로 조합설립이 무효가 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정통 은행원 출신답게 모든 서류를 꼼꼼히 직접 살핀다고 합니다.

제기4구역 주택재개발 조합은 이르면 연말 관리처분인가 신청을 거쳐, 조합원 선호가 높은 전용84㎡ 물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설계를 변경한 뒤 2023년 말쯤 착공한다는 방침인데요.

부정과 비리로 얼룩진 '악성' 재개발이라는 오명을 벗어던지고, 강북 재개발의 모범이 되는 사업장으로 힘차게 부활의 날갯짓을 펴고 있습니다.

김경기 부동산 전문기자의 '현장에서'였습니다. [ goldgame@mbn.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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